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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솔 Mar 06. 2022

우울증 일기 51. 살아 있기



평소 삶의 의미를 스스로에게 질문했고 뭔가를 더 해야할 것 같다는 생각에 사로 잡혀 살아 있었다. 나는 그런 습관을 벗어버리고 그냥 살아 있기를 목표로 삼았다.

오늘 그냥 살아 있는 것으로 만족하자고, 그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려고 노력한지 약 일주일이 됐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이냐 라는 생각이라든가. 글을 좀 더 잘 쓰고 싶다 성공하고 싶다 라는 생각이 올라올때마다 스스로 “그냥 살아 있으면 된거야”라고 되새겼다. 맛좋은 음식을 먹지 않아도 ‘지금 살아 있으면 된거야.’ 라고 생각했다. 그냥 김치 한쪽에 밥한숟갈 먹는 저녁이었지만 만족스러웠다. 혼자 넷플릭스를 보고 먹는 저녁이었지만 외롭지 않았다. 나의 제일의 목표는 살아남기이니까.

살이 쪄서 예쁜 옷을 입지 못하는 지금 이 순간이 불편하다. 다른 사람들은 날씬하고 건강한 체격을 유지하고 있는데 나만 아닌 것 같다. 의기소침해지려고 했다. 그때마다 다시 되뇌였다. ‘그냥 살아 있으면 된거야.’

돈을 더 많이 벌고 싶었다.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벌 수 있을까 그런 생각으로 머리를 복잡하게 했다. 돈버는 방법에 관한 영상을 게속 돌려봤다.

현재 직업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전문성도 없고 연봉도 마음에 안들었다. 제대로된 기술이 없는 것 같아서 불안했다. 전문 지식도 나의 강점도 없는 것 같아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아니잖아. 내 제일의 목표는 살아남기잖아.”


원래 하던 생각 습관이 올라 올떄마다 생각을 정정했다.


카페에 가니 다정하게 손을 잡은 연인들이 있다. 서로 달콤하게 사랑을 속삭인다. 봄이 오는 것 같다. 날이 따뜻해지고 벌써 꽃망울을 터트린 나뭇가지도 있었다. 나에게도 봄이 왔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 들려고 했다.

“아냐, 난 살아있으면 되는거야.”

만족스러웠다.


주말에 바닷가에 산책하러 나갔다. 가족들이 나와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나에게는 가족이 허락되지 않은 것 같았다. 따뜻하게 감싸주는 가족이란 건 없었다. 가족을 만들려고해도 돈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정한 수준의 요건들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시대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나에게 허락된 것이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을 고쳐 먹기로 했다. 나는 살아 있으면 되는 것이다. 살아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그냥 살아 있으면 되는 것이다. 내 의무는 오늘 하루를 살아내는 것이다. 그러자 머릿속이 깨끗이 정리 됐다.


끊임 없는 자기 계발에 대한 생각. 무엇을 해야할지 어떤 능력을 키워야할 지.에 대한 혼란. 나는 혼자라는 지독한 외로움. 그런 것들이 내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는데, “그냥 살아 있으면 된다.” 라는 문구가 나오면 그 모든 것을 정리해버린다. 나는 잘하고 있다. 오늘 살아냈으니깐. 살아냈으니까 나는 할만큼 이상의 것을 하고 있는 것이다. 목표량 초과 달성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걸 보면, 누구는 게으른거 아닌가. 그러다가 도태되는 것 아닌가라고 나에게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 상황은 그 사람과 다르다. 나는 오늘을 의미 없어 하고, 살아내는 것을 버거워하고 싫어하고 불평하던 사람이니까. 나는 이것부터 해야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면 좋은 점이 있다.


바로 보잘 것 없어보이는 순간, 평범한 일상에도 만족스러워진다는 것이다. 그냥 키페에 가서 시켜놓은 한 잔의 아메리카노가 마음에 들었다. 창가에 쏟아지는 햇살이 따스해 보였다.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버겁지 않았다.즐거웠다.  어깨 스스로 짊어졌던 짐을 벗어버리고 스스로 발목에 채웠던 쇠사슬을 벗어버리니깐 편안했다. 살맛이 났다.


살아 있으면 되는 것이다. 나의 숙제는 살아 있기다. 삼시 세끼 잘먹는게 내가 해야할 일이고, 잠을 잘자는 게 내 할일이다. 건강하게 살아있기가 내 목표다. 그 이상의 것들은 겉치레에 불과하다.


나는 오늘 하루를 잘 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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