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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솔 Mar 08. 2022

우울증 일기 52. 불확실함에 대한 태도


  

나는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스타일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현재를 늘 망치고야 마는. 그리고 각종 보험에 들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미래를 위한 보험금을 납부하느라 현재를 다 쓰고 있다. 나는 늘 그랬다. 미래에 되고 싶은 ‘나’는 늘 멀리 있었고, ‘나’와는 다른 현실을 늘 비관해왔다. 


중학교 1학년 때, 성적이 떨어질 것에 대한 대비책은 ‘학원’이었다. 학원에 다니고 공부하고 학원 시험기간 일정에 맞춰서 공부할 때 ‘내가 시험 잘 칠 수 있을까?’ ‘이 정도 준비했다고 잘 할 수 있을까?’ 이런 불안에 휩싸이진 않았다. ‘고등학교는?’ ‘대학교는? 그 이후는?’ 뭐 그런 식의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단순했다. 시험 범위는 정해져 있었고 정해진 시험 범위 안에서만 달달달 외우면 됐다. 나는 똑똑했다기보다는 암기를 '많이' 하는 사람이었다. 그냥 평범한 기억력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노는 것 대신 공부에 투자했다는 것이 다른 아이들과 다른 점이었다. 그것은 사실 공부가 좋아서가 아니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하여 내가 세운 대비책이었다. 나는 가난이라는 불안한 상태에 놓여 있었고 늘 길거리에 나앉게 되는 끔찍한 상상을 하게 됐다. 내가 두려운 것은 그것이었다. 내가 생각한 최악의 상황은 그것이었다. 그래서 그러지 않기 위해서 공부를 했다. 공부를 하면 돈을 벌 줄 알았다.


반에서 1등, 전교 1등을 해보았던 내가 고등학교 1학년 1학기 중간고사 첫시험에서 받은 성적은 반에서 3등, 전교 32등. 나는 충격을 먹었다. 불안이 스멀스멀 기어올랐다. 곧 찬바닥에 나앉게 될 것 같았다. 시험 범위는 많아지고 국어 지문은 늘어났다. 영어는 모르는 단어들이 많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나를 공격해댔고 내 마음속에 각종 불안과 괴로움을 만들어냈다. 나는 이 상황을 대비하지 못했다. 어떠한 대비책도 없었다. 대비책을 마련하지 못한 나는 맨살로 겨울을 이겨내는 느낌이었다. 나는 고통스러웠다. 대비책은 없고 성적은 떨어지니, 나는 인생이 끝날 것 같은 느낌에 휩싸였다. 불안함은 너무 크게 다가왔고 책상 앞에 있지만 진도를 나가지 못했다. 진도를 나갔어도 불안해서 잠에 들지 못했다. 그냥 뭔가를 더 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내 스탠드 불은 항상 켜져 있었고, 나는 늘 선잠을 잤다. 



직장에 들어가 스스로 돈을 벌 무렵, 나는 인생에 대한 어떤 희망을 갖게 됐는지도 몰랐다. 삶에 대한 애착이 생겨났는 것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난 또 다시 불안해졌고 언제까지 지금 직장을 다닐 수 있을지 불안하기 시작했다. 불안했다. 평생 직장도 아니고, 언제 잘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나를 위협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끊임없이 자기개발의 필요성을 느낀다. 저작권 공부해야지 하면서 저작권 관리사를 기웃거리기도 하고, 디자인을 하면 좋을 것 같아서 디자인 영역을 살펴보기도 한다. 이 시대에는 메타버스와 NFT를 이해해야 도태도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유튜브를 이리저리 헤맨다. 


이렇게 전전긍긍하니 피곤할 수 밖에. 

나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 그 일을 하면서 , 또 다시 무언가를 대비해야할 것만 같은 느낌. 그것이 나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이것이 불안이다. 물론 삶에서 적절한 불안은 자기를 발전시키고 나아가게 하고, 업무역량을 기르고 자기개발을 하는 등 원동력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난 과도했다. 나는 필요 이상의 불안을 느끼고 있다. 항상 비상 사이렌이 켜져 있어서 매순간마다 시끄럽고 피곤한 상태다. 


이 알람을 꺼야한다. 나는 강제로 끄기로 했다. 삶의 목표를 그저 살아있기로 정한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사이렌 소리는 줄어들었다. 상관없다. 그냥 많이 벌고 많이 누리고 사는 것 모르겠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의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하자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 집착할 필요성이 사라졌다. 그래서 그냥 피곤하면 스탠드 불을 끄고 따뜻하게 이부자리를 만들어서 제대로 자려고 한다. 


사실 생각해보면 여태까지 나는 과잉대응을 해온 것이다. 일이 생겼을 때 야근을 하면 되지 일이 없는데도 회사 책상에 죽치고 앉아 자신을 괴롭히고 있는 꼴이었다. 당장의 문제가 없는데도 나는 야근을 하며 문제가 없는지 살펴보고 있었고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고안하고 있었다. 해결책이 마련되지 않아서 눈앞이 깜깜하고 좌절감까지 느껴가며. 해결책이 없는 이유는, 


애초에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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