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llust순정 Dec 01. 2019

참 잘했다 싶다

한국화 도전기

아크릴 물감, 수채화물감, 과슈, 오일파스텔. 마카, 색연필, 사인펜, 잉크.... 다양한 재료로 그림을 그리고 여러 가지 오브제와 꼴라쥬의 작업등을 26년 동안 해왔다

그런 중 새로운 재료와 작업에 도전해 보고 싶었다

다루어 보지 않은 재료를 생각해 보니 한국화 재료가 있었다. 새로운 재료의 탐색을 위해 겁 없이 대학원에 입학했다

가정일을 하며 아이를 돌보며 짬짬이 들어오는 일들을 하며 다닐 수 있는 학교... 등록금이 조금은 덜 부담되는 학교가 울진 집에서 통학할 수 있는 국립강릉원주대학교였다

그런데 막상 입학해 수업이 진행될수록 재료의 이질감이 힘들었다.

늘 속도감이 있는 재료에 익숙하다 보니 세월아 네월아 그 끝을 알 수 없는 재료와 작업이 너무나도 답답했다

합판을 짜고

풀을 쑤어 초배지를 2회 붙이고

갱지에 스케치를 하고

뜨거운 물에 아교와 백반을 넣어 반수 물을 만든 후

담요를 깔고 순지를 올려 반수 물을 바르고 말린 후

다시 반수 물을 발라 말리고

갱지 스케치 위에  반수한 순지를 올려

먹선을 따고

다시 풀을 쑤어  곱게곱게 풀물을 만들어

배접을 한 후 말리고

원하는 색의 분채 물감을 흰 접시에 담아 곱게 갈아 아교를 넣어 이겨 물을 부어 채색을 천천히 쌓아간다

벼락치기를 할 수 없다

칠하고 말리고 칠하고 말리고

누가 도를 닦고 수양을 하는 그림이 한국화 채색화라 했는데 그 말이 딱 맞다

1차시를 끝내고

2차시  등록을 하고 나서도 한참을 계속해야 하나 그만두어야 하나 끝없이 갈등하며 고민했다

새로움을 배우는 즐거움보다 새로움을 익히며 느끼는 어려움이 더 크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런 중 이삭이의 일본 행사가 있어 11월 중순에 도쿄에 갔다가 도쿄 국립현대미술관에 가서 히가시야마카이의 채색화 그림들을 보았다 태어나 처음으로 그림을 보는데 울컥 눈물이 났다  채색화 그 깊이의 감동의 울림은 참 크게 다가왔고 나는 모든 불편했던 생각을 다 내려놓았다

묵묵히 그렇게 묵묵히 천천히 가자

성실히  매일매일 한국화 재료 속으로 들어가 보자


한국화 재료의 길은 아직도 내게 미로와 같아

가다 막히고 또 가다 막힌다

하지만 이 마법과 같은 재료는 막히는데도 자꾸 길을 나서게 한다

4차시를 맞이 했다

할 수 없을 것 같던 석사 청구 전을 한다

많이 부끄럽지만 교수님께서 1년 반의 시간 속에 처음 배우고 익히며 이만큼 해 놓은 것은 대단한 것이라 격려해

주셔서 용기를 내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꼼꼼하게 챙기시며 섬세하게 지도해 주신 지도교수님이신 하연수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양정무 교수님 박경민 교수님께도 감사드린다

실기실 옆 짝꿍 인수 씨가 와서 디스플레이를  도와주었다. 수업시간 외 궁금한 것들은 늘 인수 씨가 알려 준 것 같다

고마운 인수 씨다

그리고 늘 내편인 남편과 이삭의 지지와 응원이 얼마나 컸던지... 그리고 열심을 다해 남편이 정성을 모아  합판을 짜주고 배접을 도와주고 액자를 다 만들어 주었다

감기 몸살이 와 아픈 중에도 액자 작업을 마무리해주며 전시의 차질이 없도록 해 주었다

늘 아내의 일이라면 제일 먼저 나서서 일등으로 챙기는 남편이 옆에 있음에 엄마를 자랑스러워해주는 아들이 있음에 언제나 든든하다

논문이 남아 있지만 커다란 숙제 하나 끝낸다

영어시험을 힘들게 통과하고 전공시험을 통과하고

이제 석사 청구 전을 통과한다

돌이켜보면 참 잘 입학했고 잘 배운듯하다

2016년 강원 아트페어 강릉전에 참여했을 때 사귀게 된 작가가 시원 작가인데 시원 작가는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대학원에서 한국화를 전공했다

시원 작가는 만날 때마다 내게 한국화를 해 볼 것을 권했다

잘 맞을듯하고 선생님의 그림을 풍성하게 해 줄 듯하다며 늘 권했다

돌이켜 보니 그 권유가 참 감사하다

덕분에 새로운 탐색을 하였고

그 재료를 조금씩 알아 갈수록 얼마나 훌륭한 교수님들의 지도를 받았는지 알게 되었고 내가 얼마나 멋진 재료를 다루는지를 알게 되었다

새로운 길을 열도록 그 길 앞에  손잡아준 시원 작가에게 고맙다

50살의 도전

참 잘했다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포레스트 아일랜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