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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 작가 Feb 25. 2019

한강 - 채식주의자

독서 중독자의 책 이야기


                 


* 영혜는 왜 채식주의자가 되었을까    -   폭력과 욕망의 숨겨진 추악함




1. 폭력에 대한 정당화는 타당한가


  많은 작품에서 폭력과 비틀린 욕망에 대해 다루고 있긴 하지만 이 작품은 유난히 잔인하다. 어느 날 채식주의자가 되어 버린 여자와 여자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의 갈등 속에서 우리는 잔인하고 비틀린 폭력의 이면을 볼 수 있게 된다.

 영혜가 채식주의자가 된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님에도 남편을 비롯하여 가족들은 그녀의 이론을 무참하게 말살한다. 영혜가 휴머니즘에 입각한 채식주의자는 절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녀에게 고기를 먹이려는 시도는 가정이라는 형태가 주는 또 다른 잔인함과 폭력일 것이다.

 어릴 적 죽어가는 강아지를 방관한 것이 하나의 상처 또는 트라우마로 성장하여 더 이상 고기를 먹지 못하고 가슴 속에 뭉쳐진 다양한 감정들이 그녀를 궁지로 몰아넣지만 끊임없이 자유를 갈망하는 모습을 통해 폭력이 얼마나 사람을 망가지게 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 더워서... 꿈을 꾸어서.."

 채식주의자에 대한 이유를 그녀는 단지 덥고 꿈을 꾸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 그녀를 이해할 수 없는 남편은 그저 그녀가 미쳤다고 이야기한다. 그녀를 괴롭히던 유년의 기억은 단순히 강아지에 대한 죄책감이 아니라 폭력에 의한 상처 또는 폭력이 가져다주는 잔인함과 그것을 방관하고 희생을 강요하며 그저 무덤덤하게 넘어가는 인간의 잔인성이 그리고 개의 죽음에 방관하고 말았던 자신의 죄책감에 그녀는 고기를 거부한다. 유년의 기억에서 등장하는 또 하나의 폭력은 아버지이다.

 소설을 보면 유독 아버지는 영혜에게 엄격하게 대했다고 나온다. 똑부러지고 자기 앞길 해나가는 형제들에 비해 순진하고 순종적인 영혜에게 아버지는 유독 거칠게 굴었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영혜는 조용하고 반항 하나 안 하는 존재인 것인데, 이런 존재 앞에서 폭력은 더욱 두드라진다는 것이다.

  적어도 자기 방어를 할 줄 아는 형제들과 다르게 자기 방어를 하지 못하는 이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점점 거세지고 거칠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 그러나 이것이 가정이기 때문에 아버지이기 때문에 당연하게 받아들이라는 것은 잔인하다. 특히 억지로 고기를 먹이고 뺨을 때리는 행동이 아버지로서 정당한 일이며 여자인 딸이 받아들이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을 넘어서 칼을 들고 방어적인 행동을 한 영혜에 대해서 그토록 착하고 순종적이고 나쁜 말 안 하는 그녀가 변해버린 것으로 치부하는 것은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서 이루어진 폭력의 이유없는 정당성의 한 부분을 보여주고 있다.

 수 많은 가정에서 아버지라는 이유로 또는 가부장적인 문화와 관습 또는 전통을 가장한 인습을 이유로 이루어지는 폭력 앞에서 채식주의자가 되고 고기를 먹지 못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참고 참아야 했던 영혜나 그런 영혜를 보고 같이 참아야 하는 영혜의 어머니의 입장과 이를 그저 불편한 기색으로 보는 남동생은 너무나 다르다. 가해자인 아버지 피해자인 어머니와 영혜 그리고 방관자인 여동생 마지막으로 그것이 당연해서 영혜의 행동을 절대 이해하지 못하고 불편하기만 한 남동생의 모습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폭력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며 남성과 여성 아버지와 가족이라는 구조를 떠나서 가족이라는 것 또는 사회 안에 포함되어있는 여러가지 일들 이는 동물에 대한 인간의 모습도 함께 포함되어 있을 것다. 결국 폭력이라는 것이 정당화 되어야 하는 사회에서 수 많은 약자가 수많은 동물이 수많인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고기를 거부하는 모습을 통해 우리는 얼마나 폭력을 당연히 받아들이는지 알 수 있을 지도 모른다.




   2.  비틀린 욕망이 가져다주는 또다른 폭력


소설에서 이루어진 결혼은 정상적이지 못하다. 여기서 정상적이지 못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영혜의 결혼은 사랑이라는 커다란 바탕이 없지만 우리가 받을 때 대부분 결혼이 그러하듯 당연한 일이며 여동생의 결혼 또한 마찬가지이다. 영혜를 선택한 이유는 사랑이 아닌 조용하게 자신의 삶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닐 것이다. 형부 또한 사랑이라는 감정이 있었나 라고 고민하기도 전에 이루어진 결혼이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결혼에 다 그러하듯 생각을 할 수 있지만 상대방을 내가 살아가는데 하나의 도구 또는 보조로 본다면 이 얼마나 잔인한 폭력일까? 결혼이 나쁘다가 아닌 결국 우리가 살면서 삶에 대해 특별한 이유나 목적 없이 그저 살아가기만 한다면 그 안에는 만족이란 결코 없을 것이다.

 메마른 감정과 특별한 이유 없이  순리대로 이루어진 결혼은 비틀린 욕망이라는 형태로 이루어진 폭력을 야기했다. 영혜에게 가하는 형부의 폭력은 예술이라는 이름아래 또는 인간이 당연히 가지는 욕망이라는 폭력 아래 이루어진다. 형부를 거절하지 않은 이유는 영혜 자신이 왜 고기를 먹지 못하는지에 대해 알기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결국 몸에 그려진 꽃과 새를 통해 자유를 갈망하는 그 이유 때문이라도 이 얼마나 잔인한가

 우리가 생각하는 욕망에 대해 본능이라는 정당화를 붙이면 안된다. 본능이란 생존과 관련되어 있다 배가 고파 죽을 것 같으면 음식을 탐하는 것, 위험한 상황에서 살기 위한 몸부림 즉 생존과 죽음 앞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본능이라면 욕망이란 개인마다 다 다르게 적용될 것이다. 그러나 행복하지 못하고 만족하지 못한 결혼 생할 때문에 영혜의 몽고반점이 가져다주는 또다른 욕망을 형부는 덥석 받아들인다해도 그 욕망이 정당화 될 수 는 있는 것일까




  3. 그럼에도 그들은 산다

 

 여동생은 남편을 잃고 언니도 잃고 가족을 잃어버렸다.

언니를 바라보는 시선 속에서 여동생은 언니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한다. 왜 그렇게 자신을 망가뜨렸는가에 대해 언니의 답을 듣고 싶어하고 언니가 살아가길 원하고 무너져버린 인생에서 언니가 자유를 갈망하는 것처럼 자신도 새로운 삶을 살고 싶어한다. 폭력과 욕망이 가져다준 가정의 해체와 비틀려져 버린 삶에 대해 영혜와 여동생이 선택한 것은 죽음이 아니라 자유롭게 날아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작품: 채식주의자

작가: 한강

출판사: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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