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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 작가 Feb 26. 2024

김인숙-[봉지]

※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에 대한 이야기.

전래 동화 [콩쥐팥쥐]에서 콩쥐가 항아리에 물을 채우는 장면이 나온다. 콩쥐는 새어머니의 말에 따라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기 위해 노력하지만, 항아리에는 구멍이 나서 채울 수가 없다.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봉지의 삶은 구멍난 항아리와 같은 삶이다. 상상으로 만든 가상 현실에서 현실 세계로 넘어오게 되면서 봉지는 삶에는 결코 채워지지 않는 것들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것이 첫사랑이든 우정이든 아니면 삶에 있어서 기록에 남길 수 있는 엄청난 업적이든 말이다.

  

1. 봉지, 찢어지다.

 봉지는 평범한 아이다. "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너무나 평범하다 못해 아예 있는 듯하지도 않는 " 그런 아이였다. 봉지는 봉희라는 이름보다 지랄병 나면 멈추지 않는 개봉팔 봉호의 동생으로만 기억된다. "어디 있겠지, 짐작하면 바로 그 자리"에 있던 아이, 허약하고 온순하며 친구 없이 항상 혼자였던 아이, 그래서 어딘지 모르게 어둡고 내성적인 분위기를 풍기던 아이. 봉지는 그런 아이였다.

 소설 [봉지]는 봉지의 성장 소설이다.  병약하고 온순하기만 햇던 봉지, "늘 거기에 있던" 그 자리에서 봉지는 자신을 감싸던 세계를 찢고 현실로 나온다. 그리고 봉지는 현실에서 냉혹하고 거칠고 외롭고 채워지지 않는 세계를 보게 된다. 

  봉지의 세계는 싸움판에 뛰어들면서 찢어진다. 봉지는 평소처럼 오빠를 찾으러 다녔고, 뉴스에 거론될 만큼 큰 싸움판으로 뛰어든다. 그리고 이마에 생긴 흉터와 함께 봉지를 감싸던 세계는 무참하게 찢어진다.  봉지에게는 상상력이 있었다.

 " 그렇더라도 봉지에겐 상상력이 있었다. 봉호의 자전거 뒷좌석에 매달려 마을의 둑길을 달리고 있을 때, 이미 중학생이 된 봉지의 상상력은 극단적으로 확장되었다. (...) "


 봉지의 상상력은 친구를 만들기에는 그닥 좋은 것은 아니었다. 봉지가 외톨이간 된 것은 단지 오빠 봉호 때문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 남자아이들은 봉지가 놀고 있는 고무줄은 끊을 엄두도 내지 못했고, 하물며 치마를 들치고 도망가는 짓같은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여자아이들끼리 소꿉놀이 같은 것을 할 때에도 봉호가 나타나면 그 놀이는 금방 흥을 잃게 되었다."

 봉호 때문에 봉지는 늘 공주가 되었다가 느닷없이 엄마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봉지의 무한한 상상력은 친구둘에게도 어울릴 수 없었다. 봉지의 세계는 그녀의 이마에 구멍이 뚫리면서 찢어지게 된다. 그리고 이로 인해 봉지는 상상력의 세계에서 현실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오빠 봉호를 찾아 시외 버스 터미널 근처를 서성거리고 있던 봉지는 그곳에서 벌어진 패싸움을 목격한다. 그곳에서 오빠를 발견하고는 겁도 없이 싸움판에 달려 들어가 자전거 체인에 맞아 이마가 찢어지게 된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 그녀의 세계는 물과 물 밖의 사이, 말하자면 수면이었다. 봉지의 삶은 상상력으로 가득 찼고 그것을 열고 나갈 문을 찾지 못해 폭우가 되었다가 폭염이 되고 했다.


 " 열일곱 살, 봉지의 머리에는 구멍이 뚫려버렸다. 그녀의 생각. 자신이 젖은 창호지에 뚫린 구멍 같다고 여겼던 상상은 그녀의 이마를 향해 날아오던 자전거의 체인을 비키지 못한 순간에 현실이 되어 버렸다. (...) 구멍은 그대로 남았다. 그리고 그 뚫린 구멍을 통해 무언가가 사라져버렸다. 자신의 조용한 삶을 이제까지 지켜왔던 안전한 껍질은 깨져버렸다는 것을 봉지는 알 수 있었다. "

 봉지에게 흉터란 찢어진 봉지의 구멍과 같았다. 그것은 평생 숨기고 살아야 할 상처이거나 남들에게 보이면 안 되는 약점은 아니었다. 이마의 상처는 텅 빈 봉지와 같았다. 이마에 생긴 구멍은 자신의 세계 한 부분이 찢어지면서 난 흔적이기 때문이다. 이제 그녀는 상상력으로만 이뤄졌단 유년의 세계에서 벗어나 거칠고 무섭고 결핍이 가득한 현실로 나오게 된다. 

 더 이상 푸슈킨의 시나 "시몬 너는 아느냐" 로 시작하는 시들이 위안이 되고 희망이 되고 꿈이 되었던 시절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

2. 결핍의 존재

 소설 [봉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채워지지 않는 무언갈 갈망한다. 그러나 언제나 밑 빠진 독처럼 채우면 사라지고 채우면 사라진다. 봉지가 현실로 나오면서 처음으로 사귄 친구는 순미다. 봉지는 현실로 나오면서 달라지기 시작한다.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셨고 읍내와 시내의 고고장에 뻔질나게 들락거렸다. 그것은 봉지에게 새로운 삶이었다. 멋지면 장땡인 삶, 그리고 매순간 극적인 삶 그것이 봉지가 현실로 나와 처음 느낀 삶에 대한 감정이었다.

 갈망은 채워지지 않아서 생긴다.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워봐야 사라지니까. 결핍은 외로움을 동반하고 외로움은 극적인 순간을 동반한다. 그리고 극적인 순간은 늘 충동적이다. 봉지에게 있어 결핍은 첫 사랑일 것이다. 봉지에게 첫사랑은 늘 아슬아슬 하다. 왜냐하면 봉지의 사랑은 풀려나거나 잡혀가거나 둘 중에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봉지는 묻는다. " 언제나 이 모든 일이 끝나게 될까요?" 라고.

 결핍은 봉지말고도 다른 인물들에게도 존재한다.  진영은 민주주의를, 수호는 봉지를, 순미는 리무진을 타는 삶을, 영주는 재미있고 신나는 삶을 꿈꾼다. 그러나 그것은 허상이다. 유토피아나 이상적인 것도 아니다. 애초부터 멋있는 깡패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것은 신기루와 같다. 하지만 아름답지 못한 신기루다.

 "남자는 피로하고 지친 얼굴로 서 있었다. 햇볕에 희게 비치는 피부 때문인지, 병약하다는 인상을 풍기는 남자였다. 그는 우울한 눈빛으로 길 건너에서 콜라를 마시고 있는 여고생들을 잠시 바라보았다. 정면을 향한 남자의 얼굴이 첫 느낌만큼 그리 잘생긴 것은 아니라는 걸 봉지는 곧 알아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그해 여름, 봉지에게는 무슨 일이든 일어나야만 했다. 중요한 것은 그 뿐이었다."

 소설 속에서 진영은 부유한 집안의 아들이면서 명문대에 다니는 엘리트로 표현된다. 봉지는 진영의 엘리트 적인 모습에 반하지는 않는다. 단지, 지루하고 재미없는 평범한 일상 속에 무언가가 일어나야만 했고 마침 그 때 진영을 보았을 뿐이었다.  이마의 흉터는 봉지가 현실로 나오는 동기가 되었다면 진영의 존재는 봉지가 현실의 거친 모습을 깨닫게 되는 동기가 된다. 봉지는 진영을 사랑하고 진영 역시 봉지에게 호감이 있지만 두 사람은 이어지지 못한다. 진영에게는 사랑보다 더 강력하게 갈망하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봉지는 진영이 갈망하는 무언가를 깨트릴 수 없다. 

 진영은 봉지에게 늘 풀려나거나 잡혀가는 사람이었다.  그 외에는 진영을 만날 수가 없다. 봉지는 늘 병원 앞을 서성이거나 진영의 학교를 찾아가지만 봉지가 진영을 마주하는 순간은 풀려나거나 잡혀가는 순간 뿐이었다. 그래서 진영은 봉지 옆에 있다가도 금방 떠나거나 사라진다. 봉지에게 진영은 절대로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였다. 

  " 세월이 그렇게 흘러갔다. 누구나 사는 만큼, 적당히 느리게, 적당히 낮은 물결로. 그러나 누구나 그러하듯, 그녀도 문득문득 가슴이 미어졌다. (...) 다만 봉지는 오래전의 가혹했던 혼란을, 달콤하게 기억할 뿐이다."

 봉지도 수호도 진영도 모두 적당하게 흘러갔다. 영주도 순미도 가현도 봉호도 모두가 그렇게 말이다. 

3. 어쩌면 생각보다 모두 그러할지도.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가끔 화가 날 때가 있다. 그것은 무심하면서도 배려가 없기 때문은 아니다. 무책임해 보이지만 그것이 진짜 현실이기 때문일 것이다. 모두가 그러하듯이 말이다.


 봉지의 삶은 특별할 것이 없다. 봉지의 삶은 아주 느리게 천천히 흘러간다. 그건 다른 인물들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언제쯤 끝이 나는" 지에 대한 과정일 것이다. 그러나 해답을 찾으러 가는 과정은 아니다. 봉지는 진영에게 자신이 절대로 뚫을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끝"이 나면 그 무언가는 자연스럽게 사라진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늘 물을 수 밖에 없다. "언제쯤 끝이 나는" 지 말이다. 

 그래서 봉지의 삶은 느리다. 진영을 따라가다보니 때론 지겹고 진저리가 난다. 결국 삶은 "끝"이 나길 바라는 절망의 과정일지도 모른다. 

 소설 속 인물들은 결코 행복하다고는 볼 수 없다. 동네의 천재로 불렸던 수호는 실연의 상처로 작은 출판사에 취직하고 영미는 이혼을 한 채 잠적한다. 순미는 리무진을 타는 삶보다 리무진을 만드는 삶을 택했고 가현은 미용실을 차렸다. 오빠 봉호는 멋있는 깡패는 되지 못했고 봉지 역시 이마의 흉터는 치유하지 못한다. 독자가 보기에 절대로 제대로 된 결말이 아닐뿐더러 그 과정 역시 순탄하지도 못하고 깨끗하지도 못하고 이해하지도 못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늘 걸어야 한다. 느리게 또는 빠르게 또는 잠시 멈추면서 말이다. 

 그리고 늘 묻는다.

 "언제즘 끝이 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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