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중독자의 책 이야기
★ 하나의 사건 속에 숨겨진 불편한 진실
1. 이성과 현실 사이에서 머무르기만 하는 사람들
집은 이중적인 공간이다. 많은 영화와 드라마 또는 문학 작품 속에서 집은 파괴를 상징하기도 하고 안전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는 집이 곧 가족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문학 작품 속에서 가족은 이중적인 의미를 가진다. 폭력과 억압을 의미하기도 하고 전통적인 가족을 의미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다양한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며 새로운 의미를 가지기도 했다. 그러나 호킨스의 작품 『걸 온 더 트레인』에서 가족은 사회적은 관념과 전통적은 편견에 의해 만들어진 억압과 폭력을 의미한다. 그리고 집 역시 그러한 의미를 지닌다.
이야기는 기차를 타고 가는 레이첼의 시점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레이첼에 이어 메건과 애나의 시점으로 옮겨 간다. 어느 날 메건이 실종되고 레이첼은 목격자에서 의심스러운 사람으로 바뀐다. 이 작품에서 재미있는 것은 기차와 집이라는 공간이다. 기차는 레이첼의 현실과 이상을 연결시켜주는 매개체이다. 레이첼은 톰과 이혼을 한 알콜 중독자이다. 직업도 없이 친구의 집에서 살고 있다. 레이첼의 삶은 엉망이다. 술을 끊지 못할뿐만 아니라 술에 취하면 톰에게 전화를 하거나 메일을 보낸다. 때로는 톰과 애나가 사는 집에 찾아가기도 한다.
여기서 레이첼이 살고 있는 친구 집은 자유롭지 못하고 벗어나고 싶은 공간이다. 친구의 배려로 편하게 살고 있지만 레이첼이 벗어나야만 하는 공간이다. 반면 톰이 사는 집은 레이첼이 톰과 살았던 집으로 이상적이고 평범한 가정집을 의미한다. 기차는 레이첼의 현실에서 레이첼이 바라는 이상의 집으로 매일 옮겨다준다. 레이첼은 자신이 해고당했다는 사실을 친구에게 숨기고 매일 출근하는 척을 한다. 그녀가 일했던 런던까지 매일 기차를 타고 가지만 진짜 목적은 톰을 보기 위해서이다.
여기서 재미있는 부분은 레이첼이 매일 만들어내는 환상부분이다. 레이첼은 매일 톰을 보러가면서 톰이 사는 옆집을 본다. 그 곳에 사는 부부를 보며 혼자 상상을 한다. 그녀는 집에 사는 부부의 이름을 추측하기도 하고 직업, 성격 등을 상상한다. 톰이 사는 집이 레이첼에게 아픔을 가져다준다면 메건이 사는 집은 레이첼에게 환상을 품게 한다. 결국 레이첼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환상 속에서 행복을 느끼게 된다.
이는 애나와 메건에게도 해당이 된다. 애나는 남자와 결혼해 아이를 낳고 집을 꾸미는 것을 최고의 인생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딸을 낳고 나서 고립감과 외로움 그리고 단절을 느끼면서 자신이 꿈꾸었던 이상에 금이 가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러나 애나는 균열을 모른척 한다. 행복을 연기하는 것이다. 매건 역시 마찬가지이다. 남편의 지나친 집착과 과거의 아픈 상처를 애써 외면하고 포장하려 한다. 남편의 집착을 정당방위 하기 위해 남편의 퇴근 시간을 기다리기도 한다. 그런 매건은 심리 상담을 받으면서 자신이 생각한 행복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게 된다.
이 세사람의 공통점은 바로 집이다. 그들에게 집은 그들의 행복을 가져다주는 공간이자 환상을 꿈꾸게 하는 공간이다. 소설은 기차를 통해 애나와 메건이 사는 집을 계속해서 보여준다. 그리고 사건이 일어나고 갈등이 시작되며 이야기의 진행상황을 집에서 이뤄지게 한다. 진짜 범인의 등장도 집에서 이뤄지며 환상이 일어나는 곳도 집이고 환상이 깨어지기 시작하는 것도 집이다.
집이란 공간은 안락함을 의미하지만 반대로 밀폐되어 있기 때문에 고립감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단절감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래서 작가는 집이 가지는 이중적인 상징을 통해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의 모습을 디테일하게 보여준다.
2. 세 명의 여자들 - 가스라이팅
이 작품의 재미있는 점은 서술하는 이들이 모두 여자라는 점이다. 특히 반동인물이라고 생각했던 애나 역시 레이첼과 다를 바가 없다는 점에서 독특하다고 볼 수 있다. 우선 세 명의 여자들에 대해 살펴보자.
레이첼은 알콜중독자이다. 톰과 이혼을 하게 된 원인으로 알콜 중독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잘못은 톰에게 있다. 톰은 외도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도의 원인에는 레이첼의 우울증과 알콜 의존증이라는 인식을 독자에게 각인시킨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독자들 역시 혼란에 빠진다.
처음에는 레이첼에게 잘못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독자들은 오히려 애나와 톰의 뻔뻔스러움에 분노를 느낄 것이다. 그러나 점점 레이첼의 행동을 보면서 레이첼에게도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다음 메건의 경우를 살펴보자. 메건은 스콧과 아이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다. 메건은 과거에 있었던 일 때문에 엄마가 되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며 스콧은 그런 메건을 못마땅해한다. 메건은 스콧에게 자신의 과거를 숨기려고 한다. 스콧은 메건의 우울증이 어릴 적 오빠의 죽음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스콧은 자상하고 멋진 남자이며 아내를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메건의 노트북을 몰래 훔쳐볼 정도로 그녀를 억압한다.
애나의 경우, 가정이 있는 남자를 꼬신 여자로 레이첼과 메건에 비해 악당으로 비춰진다. 그러나 애나 역시 톰에게 가스라이팅 당한 존재로서 레이첼과 함께 피해자로 볼 수 있다. 애나는 레이첼 때문에 항상 불안해한다. 그리고 자신의 외도를 정당하하기 위해 레이첼의 문제점을 스스로에게 각인시킨다. 애나는 자신이 바라던 집과 아이 그리고 남편에 대한 환상이 있다. 아이를 키우면서 사람들과 만나지 못하고 여자들과 아이 이야기만 하는 자기 자신이 외롭다고 느낀다.
이 세사람의 경우 관계가 독특하다. 애나와 레이첼이 적대 관계라면 레이첼과 매건은 만난 적이 없다. 반면 애나는 메건을 잘 안다. 자신의 아이를 돌봐주는 보모였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 여자들은 무엇을 상징하고 있는 것일까? 이 세사람은 사회적인 관습과 남자(집)에 의해 가스라이팅 당한 사람들이다.
여기서 이 작품이 재미있는 점은 주제를 숨기고 다른 이야기로 주제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스릴러처럼 보인다. 실종사건이 일어나고 수사를 하는 도중 실종된 메건이 시체로 발견되면서 범인을 찾아간다. 또한 알콜중독자인 레이첼은 수시로 기억을 잃어버린다. 중간 중간에 메건이 찾아가는 인물이 다른 인물인 것처럼 보여 독자들에게 혼란을 주며 책에 빠져들게 한다. 그런데 여기서 그 잃어버린 기억이라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 된다.
정확하게 말하면 레이첼은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가스라팅 당한 것이다. 레이첼이 하지 않은 일을 톰은 레이첼에게 한 것처럼 가스라이팅 시킨다. 폭력을 휘두른 것도 톰이며 스콧인데 사회는 레이첼에게 잘못을 전가시킨다.
여기서 여형사 라일리 역이 바로 그러한 역할을 한다. 그녀는 스콧에게 죽을뻔했다는 레이첼의 말을 믿지 않는다. 남편과 이혼하고 알콜중독자인 여자의 말을 미친 사람으로 믿어버린다. 애나와 메건을 보자. 애나는 결혼해서 아이를 가지는 것이 행복이라 여긴다. 그리고 자신과 다르게 뚱뚱한 레이첼을 실패한 인생으로 본다. 그러나 메건의 죽음으로 자신이 얼마나 환상 속에서 살았는지 깨닫는다. 메건 역시 마찬가지이다.
여기서 톰과 스콧에 대해 설명해보자. 톰은 잔인무도한 남자이지만 겉으로는 신사로 연기하고 다닌다. 그는 끊임없이 모든 책임을 레이첼에게 전가시킨다. 그리고 메건에게도 가스라이팅을 시도하고 애나에게 자신만을 믿도록 만든다. 스콧 역시 마찬가지이다. 메건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그녀의 모든 것을 감시한다. 그러나 메건은 그것에 대해 의구심조차 가지지 않는다. 어느 날 스콧에 메건을 때리는 순간 메건은 환상에서 깨어나게 된다.
스릴러라는 장르 속에 사건을 중심으로 심어 놓고 작가는 여자를 바라보는 시선 그리고 피해자에게 가스라이팅을 하는 사회와 범인의 모습을 통해 진짜 피해자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세 명의 여성의 이름을 통해서면 이뤄지고 중간에 기억 조작을 통해 진실을 숨겨버린다. 그리고 이야기를 끌고 가면서 독자들에게 그 진실을 찾고자 한다. 이 책에서 진실은 메건을 누가 죽였느냐도 있지만 메건은 왜 죽었느냐? 레이첼은 왜 행복하지 못한 삶을 사는가에 대한 대답일 지도 모른다.
걸 온 더 트레인
폴라 호킨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