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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 작가 Dec 29. 2020

당신의 집은 안전한가 -[안전한 나의 집]

독서중독자의 책 이야기

 안전한 나의 집,안전하지 못한 당신들의 집



1.  무너진 나의 집, 안전하지 못한 나의 집에 생긴 균열

 『안전한 나의 집』은 집이 가지는 의미를 완전하게 비틀어 놓는다.  문화에 따라 가족에 대한 의미와 가족이 지니는 관습은 다르지만 보편적으로 집이 가지는 의미는 같다. 집이 가지는 의미는 단순히 사람이 살 수 있는 공간을 지칭하지 않는다. 집이란 가족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우리를 지켜주는 방패막이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집이 무너지면 내 삶도 무너질 수 밖에 없다. 집이 없다는 것 그리고 갈 곳이 없다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다.

 제목처럼 안전한 나의 집은 강도가 들어가면서부터 일그러진다.  이 작품에서는 경이 사는 집과 아버지가 사는 집을 언덕이라는 경계를 통해 나누고 있다. 언덕 위에 사는 아버지의 저택은 대 저택이며 강도가 침입하는 것이 큰 사건이 될 정도로 똑똑하고 교양있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반대로 경이 사는 언덕 아래 집은 일반적인 서민들이 산다. 손자에게 비싼 자전거를 사줄 만큼 넉넉하고 인정받는 아버지의 삶과 대출을 갚지 못해 집을 팔아야 할지도 모르는 경의 삶은 대조적으로 비춰진다. 그러나 극명하게 나뉘는 두 사람의 집이 책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전혀 다르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것은 그들의 집이 더 이상 안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작품 초반과 중반에 등장하는 거티의 등장은 집에 대한 표면적인 의미를 보여주며 우리가 생각하는 집이라는 공간이 얼마나 무의미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따뜻하고 안전한 보금자리인 집이 부동산 중개업자에겐 그저 돈으로 가치를 매길 수 있는 공간으로 전략하는 모습은 우리가 자기고 있는 집의 의미를 한 순간에 무너뜨린다. 

  작가는 초반에 거티의 등장으로 집의 상징성을 무너뜨렸다면 중반에 가면 또 다른 모습으로 집의 상징성을 무너뜨린다. 언덕이라는 경계를 중심으로 부자와 가난한 사람을 나누는 이중성은 강도의 침입으로 허무하게 되어버린다. 두 강도의 등장으로 안전하고 탄탄하고 부를 상징하는 부모님의 집은 순시간에 공포의 공간으로 변해버리고 따뜻하고 가족의 포근한 보금자리인 경의 집은 부모님이 들어오게 되면서 시끄럽고 불편한 공간으로 전략해버린다. 그럼에도 집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은 집이 곧 삶의 생존과 관련되기 떄문이다. 한 순간의 사건으로 대저택과 평범한 집의 경계는 무너지고 일상을 살아갈 수 있게 된 공간이 무너짐으로서 안전하던 나의 집이 이제 더 이상 안전하지 못한 공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작가는 그러면 왜 이렇게 무참하게 집을 무너뜨려야만 했을까? 거기에는 아버지 진이 있었다. 그리고 집이 무너지는 순간 그동안 그들을 지지하던 가정이라는 하나의 제도가 무너져버린 것이다. 작가는 집을 무너뜨리면서 가부장적인 가정의 모순도 함께 무너뜨린것이다. 그리고 하나의 의문을 던진다. 가정의 붕괴는 폭력적인 아버지 진으로부터 시작되었다면 과연 그 모든 원인은 정말 진에게만 있는 것인가?



2. 모든 원인은 아버지인 진으로부터 왔을까? 집이 무너져야 하는 이유

 아버지 진은 폭력적이다. 또한 여자를 억압하는 가부장적인 모습을 대변한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인 상장적인 이미지가 많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폭력적인 아버지를 대변하고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 밑에서 억압받는 여성을 대변한다. 반대로 경은 그런 가정에서 상처를 받고 자란아이를 대변하며 질리언은 그 모든 문화를 한 순간에 무너뜨리는 현재 우리들의 모습을 대변한다. 그리고 미국이라는 사회 안에서 경의 부모님의 세계와 질리언의 부모님의 세계는 또 다시 나누어진다.  경의 부모님은 이민자이지만 한국의 가부장적인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면 질리언의 세계는 이를 거부하는 모습을 보인다. 또한 이민자의 힘들고 어려운 모습과 그러한 이민자를 거부하는 또 다른 미국의 세계까지 고스란히 담고 있다.

  폭력적인 아버지와 그런 억압 속에서 자식에게 화풀이 했던 어머니 매로 인해 경은 트라우마를 겪지만 자신은 부모님과 다르다고 생각하면서도 결국 아내인 질리언과 아들인 이산에게 아버지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게 된다. 작품 전체에서 드러나는 여성에 대한 억압은 아버지인 진에게만 있다고 생각되어지지만 나중에 질리언의 모습을 통해 경 역시 아버지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당신의 아픔을 이해하고 그것이 부모의 탓이지만 나와 이산의 탓은 아니지 않느냐는 질리언의 이야기는 결국 경이 가정 안에서 어떻게 행동했는지 알게 해준다. 빚을 지고 집안에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며 아내가 홀로 아이를 키우며 집안을 지키는 모습에 대해서 경이 얼마나 집에 대해 무책임했는지 보여준다. 

  매는 가부장 제도에서 희생당하는 존재이다. 매와 진이 사는 집은 철저하게 진의 취향대로 꾸며져 있다. 음악을 좋아하고 인테리어에 재능이 있는 매지만 철저하기 진의 취향과 진의 사고방식에 따라가야만 했다. 그러지 못했을 때는 폭력이 기다린다. 결국 매는 새로운 삶 즉 오로지 자신을 위한 삶을 위해 독립을 하려고 하지만 이 역시 무산된다. 결국 매에게는 희망이 없다.

  그럼 경은 어떤가? 어머니인 매에게 폭력을 당하고 어머니를 때리는 아버지 진을 보면서 불안에 떠는 모습은 마치 경을 희생자처럼 보이게 한다. 그러나 빚을 지고 집안에 대해 무관심한 모습이나 부모님이 자신의 집에 들어오면서 한국의 관습을 강요하고 부모님 앞에서 여자 즉 아내와 며느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규칙을 정하고 그것을 강요하는 것은 과연 경이 희생자로만 볼수 있는가?

 경이 피해자로만 볼 수 없는 것은 몰리를 통해 드러난다. 경의 기억 속에 몰리는 문란하다. 반항적이고 세탁소라는 별명을 가질만큼 남자들 사이에서는 쉬운 여자로 보여진다. 그러나 몰리가 기독교로 개종하며서 목사님의 아내로서 그리고 착하고 아름다운 여성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자 경은 가식적으로만 생각한다. 그는 언제든지 몰리가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여기며 몰리에게 예전의 문란한 여자인 모습이 더 좋았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남성인 경이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떤지 보여준다. 어머니 매와 결혼한 이유가 부자라는 이유, 질리언가 결혼한 이유가 다른 여자와 다르게 솔직하다는 이유는 결국 경과 진에게 결혼이란 조건일 뿐인 것이다. 

 결국 이 작품에서 희생자는 매와 질리언이다. 트라우마로 힘들어하는 경은 결국 자신의 상처만 볼 줄 안다. 아버지의 모습과 경의 모습은 전혀 다를 바가 없다. 매는 떠나려고 했고 질리언도 경과 갈라서고자 한다. 매는 실패했지만 질리언은 성공했다.  아버지의 이기적인 모습과 아들에 대해 사과하는 장면을 통해 부자 지간에 오해는 풀려도 결국 그들이 두 여성에게 준 상처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집을 무너뜨리고나자 그 안에 이기적이고 모순덩어리인 가정의 진짜 모습이 드러난다. 그리고 그 속에 상처받은 사람들이 울고 있다. 모든 근원은 아버지인 진이라고 한다면 경은 피해자이기만 할까? 우리는 내가 살고 있는 집이 정말 안전한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당신의 집은 안전한가?






안전한 나의 집/정윤/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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