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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 작가 Jan 07. 2021

[서평]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

독서중독자의 책 이야기

★ 낯섬과 익숙함 사이의 경계에 머무를 때 우리는 또다른 공포를 느낀다.

1. 환상 문학의 낯섬과 익숙함 사이의 경계

 공포는 익숙한 공간이 낯설게 느껴지면서 나타난다. 평소와 다름 없던 사람이 낯설게 느껴지고 아늑했던 집이 낯선 곳으로 변하는 순간 우리는 공포와 마주하게 된다. 심너울의 단편 소설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 는 사람들에게 익숙한 공간을 뒤틀고 변형함으로써 새로운 공포를 보여준다.

환상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낯선 세계와 익숙한 세계 사이의 경계다. 그리고 경계 사이에 서 있는 등장인물이 혼란을 경험하면서 새로운 공포를 느낀다. 여기서 공포라는 것은 오컬트적인 요소를 말하지 않는다. 죽은 사람과의 이야기나 외계인과 같은 존재와의 만남을 통핸 공포가 아니다. 여기서 공포는 익숙한 공간이 주는 낯설음이다.

심너울의 작품이 특별한 이유는 SF적인 요소나 환상문학에서 볼 수 있는 초자연적인 배경이 아닌 현실적인 공간을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작품 「정적」, 「경의중앙선에서 마주치다」 등에서 배경은 우주같은 초월적인 공간이 아닌 대한민국의 한 도시 또는 지하철 역이라는 현실적인 공간이다. 그리고 작가는 현실적이 공간에 환상적인 소스 하나만 뿌린다.

작품 「정적」에서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설정이 들어갔고 「경의중앙선에서 마주치다」에서는 지하철역에 좀비와도 같은 존재가 산다는 설정이 들어갔다. 또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는 금요일이 반복된되며 「신화의 해방자」에서는 마법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설정이 들어간다.

그러나 심너울의 작품에서 환상적인 요소는 중요하지 않다. 「정적」에서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설정은 귀가 들리지 않는 이들에게는 일상이다. 「신화의 해방자」에서 마법이란 요소 또한 작품안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경의중앙선에서 마주치다」에서 주인공이 좀비와 같은 인물들을 보고 경악을 하게 되지만 결국 이 역시 받아들이면서 이야기가 진행이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환상적인 요소가 아닌 그 환상에 대한 인물들의 반응이다.

작가는 일상생활에서 불편할 수 있는 사실 또는 우리가 간과하고 넘어가버렸던 사실을 환상적인 요소를 통해 부각시킨다. 「정적」에서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설정은 한 카페에서 주인공이 수화를 배우는 장면과 대비시킨다. 소리가 들리지 않자 땅값은 하락하고 사람들은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지만 귀가 들리지 않은 이들에게는 편안한 공간이 되어버린다. 수화를 배우로 오는 사람이 없고 귀에 낀 보조장치를 장난삼아 건드리는 사람들이 사라지자 귀가 들리지 않는 이들은 자유롭게 길거리를 활보할 수 있게 된다. 특정 지역에서만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환상적인 요소를 통해 우리가 귀가 들리지 않는 이들에 대해 얼마나 무자비하게 대했는지를 보여준다.

반대로 「경의중앙선에서 마주치다」는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불편함을 공포로 극대화 시킨다. 서울 지하철 역의 배차시간이 비정상적으로 길고 그로인해 지하철을 이용하는 승객들이 불편함을 느끼지만 아무도 그 불편함에 대해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결국 지하철을 기다리던 승객들은 지박령이 되어 그 곳을 떠나지 못하게 된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의 직업이 기자라는 것은 의미가 있다. 기자는 소리를 내는 직업이다. 우리가 불편하다고 느꼈던 생활이 환상적인 요소로 인해 공포로 변하고 이를 기자가 목격한다는 것은 특별하다.

「신화의 해방자」 에서는 동물 실험과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이의 모습을 보여주며 현실의 모습을 비판한다. 용으로 변한 쥐는 동물실험의 피해자이며 주인공은 지금 젊은 청년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 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게 아니라 주변의 환경과 취업과 여러가지 이유로 휘둘리다가 결국 어디에도 가지 못하는 백수로 남는다. 유일하게 들어간 회사에서 주인공은 회사에 남느냐 아니면 용을 풀어주느냐에 대한 갈등이 생긴다.

낯설게하기 위해서는 익숙한 공간이 무너져야 한다. 매일 출근하면서 이용하던 지하철역, 회사, 카페, 동네 그리고 매일 만나던 사람들이 사소한 요소 하나로 비틀리고 어긋나게 되면서 낯설게 되면 우리는 공포를 느낀다. 그리고 그 공포는 아주 먼 곳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당연하다고 여겼던 일 또는 우리가 무시하고 듣지 않았던 불편함에서 오는 공포다. 그 불편함이 비틀림으로 인해 수면 위로 드러나는 순간 우리는 또 다른 공포를 느끼게 된다.

2. 공포에서 희망으로. 어쩌면 작가는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심너울의 단편들은 다른 문학과는 다르게 비극적으로 끝이 나지 않는다. 어쩌면 지나치게 희망적인 결말이 또 다른 공포를 유발할 수 있지만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조금더 사람들이 불편함에 대해 생각하길 바라고 있을 지도 모른다.

「정적」에서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들이 이야기가 등장한 것과 수화를 배우는 이가 없어 강의가 사라졌다는 이야기는 독자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준다. 그러나 도시에 다시 소리가 들리면서 소설의 내용이 비극적으로 갈 듯 하지만 카페 안에서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결말은 그래도 괜찮다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열린 결말인셈이다.

「경의중앙선에서 마주치다」 역시 열차 배차시간이 점차 짧아지고 불편했던 점들이 개선되는 결말을 통해 목소리를 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야기한다. 「신화의 해방자」 ,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 의 경우 조금 비극적인 결말을 가지는 작품이지만 결국 그 속에서도 독자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남겨둔다.

환상이라는 요소는 낯설게 하기와 공포를 유발한다. 그렇지만 그 공포는 일상에서 시작된다. 우리가 무심코 넘겼던 일들 또는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경험하게 함으로써 우리가 얼마나 안일하게 생각했는지 보여주며 때로는 공포는 사실 현실에서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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