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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 작가 Jan 11. 2021

[서평] 아몬드

독서중독자의 책 이이갸

◆ 평범함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

1.  평범하게 산다는 것은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말을 해주는 것.

 손원평 작가의 『아몬드』는 독특하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윤재는 감저을 느끼지 못한다. 태어나면서 감정을 잃어버렸다. 언제 슬퍼해야 하는지 언제 웃어야 하는지 모른다. 미안해라는 말과 사랑해라는 말을 언제 해야 하는지 모르며 사람이 가지는 감정과 언어가 연결되어 있음을 알지 못한다.

 윤재가 하는 모든 말들은 철저하게 학습으로 이루어져 있다. 엄마와 할머니가 붙여준 쪽지를 보고 외웠고 엄마가 이야기해준 말들을 듣고 따라 한다. 윤재는 감정과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아이이다. 

 이 소설이 특별한 이유는 윤재 때문이다. 영화와 드라마 그리고 소설에 이르기까지 감정이 부재한 인물이 등장하는 작품은 많다. 그러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들은 악당이 되어버린다. 누군가를 쉽게 죽이고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죄채감을 느끼지 못하는 존재로 말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윤재는 부정적인 면이 전혀 없다. 흔히 싸이코패스라고 불리는 인물하고는 전혀 다른 존재이다. 평범하게 살고 튀면 안된다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상태와 어머니의 말을 수용한다. 

 감정을 못 느끼는 윤재는 악당이 되기 보다 호기심 많은 학생으로 자라난다. 왜 사람들은 미안하다 말을 하는지 왜 사람들은 상황에 따라 다른 말을 하는지 모르지만 윤재는 그 세상속에서 묵묵하게 살아간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윤재를 이해할 수 없다. 감정이 없으니 웃지를 않고 웃지를 않으니 같이 감정을 공유할 수 없다. 윤재도 이 사실을 알고 있지만 때로는 언어 영역의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고 싶은 것처럼 다른 사람의 감정을 공유하고 싶어한다. 이런 윤재를 받아주는 것이 도라와 곤이다.

 도라와 곤이는 또 다른 면에서 독특하다. 도라는 꿈을 이루고 싶어하지만 부모님의 반대에 꿈을 포기한 학생이며 곤이는 어릴 적 부모님을 잃고 삐뚤어진 아이다. 두 사람은 윤재의 감정부재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세 사람은 친구가 된다.

 작가는 작품 속에서 평범하다라는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한다. 감정을 못 느끼는 윤재가 살아가면서 감정의 의미를 알아가는 이 작품은 성장 소설에 가깝다. 그러나 특별한 사건이나 갈등이 없이 담담하게 이어가는 이 작품은 감정을 되찾는 과정이 아니라 평범하다는 의미를 다시 한 번더 생각하게 만든다.

 튀지 말고 평범하게 살라는 말에는 다른 사람의 감정을 같이 공유하고 적절한 상황에서 해야 할 말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언어에는 감정이 들어가 있다. 안녕하세요라는 말이 단순히 인사를 의미하는 언어로 본다면 윤재는 좀 더 편하게 살 것이다. 그러나 안녕하세요가 가끔은 비꼬는 말이 되기도 한다는 것 그것이 윤재에게는 어렵고 힘든 일인 것이다.

 작가가 평범하다라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한 이유는 감정이 부재한 우리와 윤재가 그렇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이야기 하기 위해서이다. 이는 나중에 언급하겠지만 할멈과 엄마가 죽을 때 왜 사람들은 가만히 있었는가에 대한 윤재의 의문은 우리가 평범하다는 그 의미를 얼마나 잘지키고 있는지에 대해 던지는 질문과도 같다. 평범하다는 것 감정을 느끼고 감정을 표현하는 것 인간이라면 당연히 가져야 할 이 문제에 대해 한 번더 생각하게 만들어준다.

2. 왜 사람들은 도와주지 않았을까?

 윤재에게 있어서 엄마와 할멈의 죽음은 오랫동안 각인되어졌다. 흔히 말하는 트라우마는 절대 아니다. 슬픔과 절망감을 느끼지 못하는 윤재에게 이 사건은 트라우마로 자리 잡히지는 않는다. 단지 이 사건은 윤재에게 또 다른 의문점을 가지게 한다. 왜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는가? 그리고 왜 할멈은 나에게 가라고 외쳤는가?

 할멈이 나에게 가라고 외쳤을 때 윤재는 가다라는 언어의 이중적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나중에 곤이를 구하러 가면서 이 언어의 의미를 이해하게 된다. 멀리 있는 불행은 나에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엄마의 말과 바로 앞에서 보여지는 다른 이의 불행에 도망친다면 이것은 거짓이다. 윤재가 그동안 배워왔던 평범함과 감정의 표현은 거짓말이 되어버린다. 

  엄마와 할멈의 존재는 윤재에게 특별하다. 엄마는 윤재가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사람이며 할멈은 엄마와 윤재를 아무 이유없이 보듬어주는 존재이다. 윤재가 아무런 사건 없이 자랐다면 아마 엄마와 할멈 덕분이지 않았을까? 엄마가 의식 불명이 되자 윤재는 이제 어떻게 사람들과 대화를 해야 고민을 하게 된다. 그러나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다. 이 때 곤과 도라가 등장한다.

 이 작품에서 두 사람은 또 다른 의미에서 윤재이기도 하고 엄마이기도 하고 할멈이기도하다. 도라는 평범한 여학생이다. 엄마처럼 평범함에 속하는 존재이다. 반대로 곤은 괴물이다. 윤재가 괴물이라면 곤 역시 또다른 의미에서 괴몰이다. 거칠고 반항적인 문제아 그것이 곤이다. 윤재와 곤은 사회에서 괴물로 판정받았기 때문에 흡수될 수 없다. 그러나 곤은 윤재를 통해 세상과 흡수되고 윤재는 도라를 통해 세상과 흡수된다. 도라를 통해 윤재는 사람이 왜 살아가는가에 대한 의미를 배우고 곤을 통해 미안하다와 사랑한다는 감정을 배우게 된다.

 태어나면서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윤재가 살아가면서 나중에 감정에 대해 배우게 된다는 것은 커다란 의미를 가진다. 왜냐하면 그 과정이 독특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작품이 커다란 사건이 없이 무덤덤하게 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곤을 구하기 위해 철사형을 찾아가는 장면을 제외하고는 일반적인 청소년 소설과 다를바가 없다. 또한 윤재라는 독특한 캐릭터에 비해 소설의 내용은 고요하다. 그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윤재의 시선에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왜? 라는 의문점을 통해 윤재는 진짜 미안해와 사랑해. 친구 . 누군가를 지켜야 하는 것에 대해 배워간다. 엄마에게 배운 감정은 학습된 것이라면 곤과 도라에게 배운 감정은 스스로 진짜 의미를 터득한 것이다. 

 어쩌면 작가는 감정이 부재한 윤재를 통해 우리가 잊고 살았던 평범함과 감정에 대한 진짜 의미를 이야기해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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