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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 작가 Jan 25. 2021

[서평]게스트

독서중독자의 책 이야기

◈ " 너 없이는 살 수 없어." - 우리는 왜 숨어야만 하는 걸까요?

▣ 섬세한 심리 묘사와 디테일한 구성이 주는 긴장감과 욕망에 대한 시선

세라 워터스의 『게스트』는 쉽게 읽기 힘들다. 사랑에 대한 욕망과 간절함이 지나칠정도로 적나라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적나라하다라고 했을 때 작가가 묘사나 디테일함 없이 있는 그대로 표현한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물의 심리묘사가 무척 섬세하고 전반적인 구성이 치밀하기 때문에 더 적나라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시기는 옛날이다. 아직까지 계급이 남아있고 그 영향력이 강하게 남아 있는 시기이며 큰 전쟁이 일어난 후이다.

작품 속에서 전쟁은 인물들을 피폐하게 만든다. 프랜시스 역시 전쟁으로 아버지와 남자형제를 잃고 어머니와 낡은 집에서 가난하게 살아간다. 프랜시스는 전쟁 이전에는 활발하게 인권운동가로서 살았던 인물이지만 전쟁이 일어난 후에 활발함을 잃고 현재의 삶에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하며 살아간다. 딸이라는 역할과 여성으로서의 역할을 말이다.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무섭고 잔인하고 적나라하다. 소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두 인물의 심리가 섬세하게 표현이 된다. 또한 릴리안과 프랜시스의 관계가 점차 발전하는 과정 역시 섬세하다. 어느 날 갑자기 사건이 발생한 것이 아니라 천천히 이어나간다. 프랜시스와 릴리안이 만나는 장면만으로 초반부의 반이 소비가 된다. 그리고 두 사람이 연인으로 발전하고 레너드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아주 천천히 그러나 디테일하게 이어진다. 그 과정에서 감정의 변화는 아주 격하게 진행된다. 그래서 더욱 잔인하고 적나라하다.

이 작품은 동성애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래서 두 사람의 사랑은 굉장히 욕망으로 가득찬다. 여기서 욕망이란 부정적인 의미가 아닌 사랑을 하면 가지게 되는 자연스러운 감정을 의미한다. 서로가 서로를 탐닉하는 과정에서 불안을 느끼면서 점차 그 욕망이 어긋나게 되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여성이고 동성애이기 때문이다.

▣ 릴리안과 프랜시스의 이야기

릴리안과 프랜시스는 사랑하는 사이이다. 그러나 이 둘은 언제나 숨어서 사랑을 나누어야 했다. 프랜시스에게는 과거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지만 주변사람들에 의해 연인과 잔인하게 헤어져야 했다. 이러한 과거 때문에 프랜시스는 이 사랑을 지켜나갈 필요가 있다. 그러나 남녀의 불륜보다 더 숨겨야 하는 것이 동성애이다. 그리고 릴리안은 유부녀였다.

작가는 왜 이렇게 섬세하고 잔인하게 사건을 연결시켜 나갔을까? 이 책에서 우리가 봐야할 핵심은 동성애와 여성이다. 이 소설의 시대는 아직까지 계급이 존재하고 영향력을 끼치는 시대이다. 여성에 대한 의무가 출산과 자녀 양육에 한정되어 있고 여성의 투표권이 아직 없을 때이다.

프랜시스와 릴리안은 당시의 여성을 대표하는 인물로 볼 수 있다. 프랜시스는 당당하고 자신의 의견을 거침없이 말할 수 있는 인물이다. 의원에게 구두를 던지고 여성 인권운동에 거침없이 뛰어들며 남성에게 자신의 의견을 뚜렷하게 말할 수 있는 인물이다. 그리고 같은 동성을 사랑한다. 반대로 릴리안은 전형적인 여성이다. 사랑하지도 않는 남성과 결혼을 하고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기보다 순종적으로 지내야 하는 그 시대의 전형적인 여성이다.

여성에 대한 편견은 작품 속 시대와 지금과 다를 바가 없다. 래너드의 죽음 이후 모든 시선은 릴리안에게 향한다. 릴리안이 집안 파티에서 다른 남성들과 춤을 추었다는 이유로, 래너드의 친구가 거짓 증언을 했다는 이유로 릴리안을 문란한 여자로 만들어버린다. 그러나 찰리의 거짓 증언이 래너드와 찰리의 불륜 때문이라는 것을 알지만 아무도 릴리안에게 사과를 하지 않는다.

남편의 죽음으로 릴리안을 보는 사회적인 시선과 당시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이 얼마나 편협되어 있는지 보여준다. 그러나 이 시대의 이야기가 지금도 유효한가. 여기에 대해서 답은 그렇다이다. 그것은 프랜시스의 주변인물을 통해 드러난다.

이 작품은 분량이 많다. 시간도 순차적이고 주변인물도 많다. 그렇지만 사건은 많지 않다. 그리고 700페이지 가까이 되는 많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소설의 시선은 오로지 프랜시스의 시선으로만 이루어진다. 주변인물의 생각이나 외형묘사 그리고 그들의 행동은 프랜시스에 의해 표현이 된다. 실제로 레너드가 프랜시스한테 작업을 걸었는지 알 수 없고 프랜시스의 어머니가 진실을 알고 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과거의 경험과 현재의 상황에서 프랜시스는 불안한 감정으로 주변인들을 살핀다. 릴리안 또한 마찬가지다. 릴리안을 바라보는 시선 모두 프랜시스의 눈으로 관찰된다. 릴리안의 직접적인 감정은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섬세한 묘사에도 불구하고 적나라하게 느껴진다.

프랜시스의 시선에는 불안감이 가장 크다. 주변인들에 대한 프랜시스의 묘사는 항상 아슬하게만 이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주변인물들의 시선은 프랜시스가 그동안 받아왔던 편견과 동일하다.

릴리안은 정상적으로 결혼을 한 것이 아니다. 결혼 전 임신을 하게 되었고 유산을 하고 시댁에서 구박을 당한다. 프랜시스 눈에는 이 모든 것들이 정확하게 보이지만 프랜시스의 어머니는 그저 바비씨가 불쌍하게만 여겨진다. 릴리안이 집안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이유때문이다.

레너드는 전형적인 남성을 의미한다. 여기서 전형적이란 그 당시의 남성을 의미하며 여성을 성적인 도구 또는 자신의 집안에서 순종적인 아내의 역할을 강요하는 남성을 의미한다. 릴리안은 더 이상 아이를 가지고 싶지 않고 성관계도 가지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러나 래너드는 관계를 요구하고 릴리안은 그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한다. 흡사 강간과 비슷하게 여겨지는 이 행동은 여성에 대한 남성의 시선 그리고 결혼한 여성에 대한 사회적인 시선이 어떠한지 보여준다.

사회에서 고립되어 있는 두 여성이 동성애가 되었을 때는 가장 친한 부모님조차도 편을 들어주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몰린다. 그리고 릴리안과 프랜시스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사랑을 나누면서 지금 두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이 시대가 얼마나 불공정한지 보여준다.

오빠의 약혼녀가 매해 집으로 찾아올 때마다 프랜시스는 자신이 이 약혼녀를 과부처럼 대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면서 여성에 대한 시선이 얼마나 편협한지 보여준다.

래너드의 죽음 이후 릴리안과 프랜시스의 사랑이 점차 어긋나면서 프랜시스는 자신의 사랑이 정말 제대로 된 것인지 의문점을 가지게 되고 자신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잘못이 없는 사람들을 희생하게 만들면서 점차 릴리안의 사랑마저 한낮 지저분한 욕구로만 보이게 된다. 그러나 모든 것이 해결된 후 두 사람은 다시 일어설 것이라는 문장처럼 프랜시스도 릴리안도 이제는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여성과 동성애라는 두 가지 코드와 적나라하게 느껴질 정도로 디테일하고 섬세한 표현은 여성에 대한 시선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이며 남녀간에 사랑이 동성애라는 코드로 왔을 때 사랑의 표현에서 욕망의 표현으로 변해버리는 것을 통해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과연 얼마나 한계가 있는지 알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래너드의 죽음으로 인해 그들의 사랑 역시 이기적이라고 느껴지는 것은 그들로 인해 누명을 쓴 소년 역시 가난하고 낮은 신분의 아이라는 설정을 통해 삐뚤어진 욕망이 얼마나 잔인한지 보여준다.

그릇된 욕망, 벗어나고자 하는 집착, 여성으로서의 차별 이 모든 것들을 프랜시스라는 한 사람의 시선으로 풀어내는 이 작품은 읽기 힘들고 받아들이기 힘들정도로 적나라하지만 독자들에게 많은 것을 던져준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다 읽었을 때 깊은 고뇌와 번민과 생각에 잠기게 만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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