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 다른 각자의 방식으로

초기 치매 환자들

by 탐구와여정

지난 번에 방문한 중증 치매 노인들이 있는 네이버후드 외에 단계별로 총 4개의 네이버후드가 있는 이곳 치매 시설은 가장 초기 단계의 노인들이 머무는 네이버후드에 특히나 공을 들이고 있었다. 치매가 초기에 발견되면 일상 생활에는 지장이 없을 정도인데 굳이 치매 센터에 들어갈 필요가 있는지 궁금했다. 이에 대해 이 치매 시설은 단계별 치료와 적응에 초점을 맞춰 강조한다. 초기부터 관리를 잘 하면 진행을 최대한 늦출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치매는 치료 약물이 아직까지 개발되어 있지 않다. 치매의 진전을 늦추는 약물이 있다고 하지만 너무 비싸다. 심지어 길면 십년이 넘는 동안 서서히 진행되는 질환인 치매에 대해 이러한 고가의 약은 현실성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치매는 단순히 약물이 아닌 신체와 정신 활동, 심리, 사회적인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다방면에서의 접근이 필요하고 그에 따른 활동들이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전문성과 쾌적함, 이에서 더 나아가 고급스러움을 내세우는 치매 전문 시설인 경우 치매 노인과 그 가족들에게는 집보다도 나은 대안으로 생각이 될 수도 있다. 바로 이 부분을 내세우는 치매 시설이다 보니 이곳에는 아주 초기 단계의 치매 노인들도 꽤나 있었다.

이 노인들은 혼자 또는 둘이 쓰는 꽤나 널찍한 방에서 지낸다. 거실과 식당, 야외 정원 등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고 이에서 더 나아가 시설의 어디든 마음대로 다닐 수 있다. 약속을 잡아 가족이나 친구를 만나거나 가끔씩 시설의 직원과 함께 쇼핑이나 외식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 이 노인들은 자신이 치매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애써 이를 부인하고 싶어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치매를 늦추려는 이런저런 노력을 하는 노인도 있고 반대로 공동 생활보다는 독립적인 생활을 하면서 가끔씩 산책이나 게임만 같이 할 뿐 그외 다양한 특별 활동에는 굳이 참여하지 않으려는 노인도 있다.

정상인과 거의 다를 바가 없이 살아가는 초기 단계 노인들이 있는 곳에 가니 이곳은 그저 평범한 노인 시설처럼 여겨졌다. 이들에게는 어떠한 도움이 필요한지 궁금했다. 워낙에 다양한 활동들이 있으니 자연스럽게 참여하면서 그들과 대화를 하거나 지켜보기로 했다. 아침 식사를 마친 뒤 활동을 시작하기 전이라 노인들은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대부분 방에 있었고 두 세명 정도만 공용 공간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활동 준비가 되자 직원들이 방을 방문해 참여를 안내하면서 독려했고 결국 네 다섯명 정도가 활동에 참여했다. 미술, 공연 등 특별 활동이나 야외 스케줄이 없으면 운동 등 신체 활동이나 게임 등 두뇌 활동이 주를 이뤘다.

거실처럼 꾸며놓은 곳에서 벽걸이 스마트 TV를 통해 운동 영상을 보고 직원의 안내에 따라 간단한 운동을 마친 뒤 서재처럼 꾸며놓은 곳으로 가서 단어 게임을 즐겼다. 중간에 하나 둘씩 참가하는 노인들이 늘어났다. 특정 스펠링이 들어간 단어들을 떠올려 리스트를 만들어나가는 게임이었는데 그렇게 한 시간 정도 쉬엄쉬엄 진행하다가 잠깐 휴식을 취하고나니 어느새 점심 식사 시간이 되었다.

이런 식으로 잘 짜여진 스케줄에 따라 활동들에 참여하다보면 하루가 지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독려는 하되 강요는 하지 않으므로 모든 것이 자율에 맡겨지는 편이다. 참여를 하든 안하든 모든 노인들의 상태와 동정을 놓치지 않고 계속 살피는 기본적인 케어는 물론 자율에 맡기되 최대한 시설에 잘 적응하고 즐거움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이 시설의 목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각각의 노인들마다 저마다의 사연과 취향이 있기에 한마디로 그들을 정의하기는 쉽지가 않다. 각각의 뚜렷한 개성이 있고 그에 따라 그들만의 루틴이 있는데 이것이 때로는 굉장히 미묘하기도 하고 복잡하기도 한 것 같았다. 예를 들면 자신이 치매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서인지 서로 잘 어울리지도 않고 활동에 잘 참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노인도 있다. 이런 경우는 대부분 가족과 의사의 제안으로 이곳에서 살아보기로 한 것이기에 언제든 나갈 준비가 되어 있다. 따라서 시설에 대한 평가가 상당히 까다로운 편이다. 자신이 치매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집에서와 같은 평범한 삶을 즐기고 싶어하는데 그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아 불만이 많았다.

예를 들면, L할머니는 밖으로 나가 쇼핑하고 외식하고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데 가족이나 친구, 직원과 대동하지 않으면 외출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러한 부분들이 충족되지 않는 듯했다. 또한 모든 것이 느리다고 불평했다. 활동을 한다고 공지하길래 나가보면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경우가 많고 모든 것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교사와 부동산 에이전트를 하며 활발하게 살다 이제 은퇴를 해서 이곳에서 살고 있다는 L할머니는 자신이 치매 때문에 이곳에서 지내는 것이 아니라고 강하게 말했다. 다른 시설들과 비교를 하면서 이곳이 더 이상 맘에 들지 않으면 다른 곳으로 갈 것이라고 했다.

반면 한 노인은 자신이 치매를 겪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J할아버지는 자신의 의지로 이곳에 오지는 않았지만 이성적으로는 왜 이곳에 왔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곳에 머물러야 한다는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감정적으로는 그렇지 않았다. 치매를 앓고 있는 자신에 대해 인지를 하기는 하지만 자신의 악화되는 상태와 어둡고 불확실한 미래, 마음대로 되지 않는 자신의 상태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의료진과 가족 등 외부에 의해 결정되는 여러 상황과 처지에 대해 누구보다도 견디기 어려워했다. 치매라는 병에 대해서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오히려 더욱 힘든 경우였다. 그 누구보다도 치매, 특히 뇌의 작용에 대해 잘 알고 있는 J할아버지, 그의 직업은 바로 신경과학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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