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내가 왜 불안한지 모르겠어

불안증세를 치료하던 심리학지 C할머니의 불안증세

by 탐구와여정

치매 초기 단계 네이버후드에서 만난 C할머니는 손을 떨고 걷는 것이 약간 불편해보였지만 표정이나 말하는 것은 일반인의 모습이었다. 오히려 심리학자 및 전문상담가로 오래 일한 C할머니는 무척이나 지적이고 밝아보였다. 단어를 맞추는 게임에서 누구보다도 잘 맞추었고 단어의 뜻을 물으면 대답도 아주 잘 했다. 대신 금방 피곤해했고 가끔씩 불안증세를 보인다고 했다. 하지만 평상시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다.

몇주 뒤 C할머니를 다시 만난 건 놀랍게도 세번째 단계 네이버후드에서였다. 아마도 걷는 데 문제가 있다보니 거동이 불편한 경우가 발생하고 불안증세도 자주 일어나는 탓에 그에 따른 보호가 더 필요하기에 그리 결정이 된 것 같았다. 오랜만에 만나 반갑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할머니에게 다가가 이런저런 안부를 물었다. 한번 만난 나를 알아보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꽤나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았다.

그러고나서 며칠 만에 다시 만난 C할머니는 어딘가 많이 불안해보였다.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고 손을 떨면서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지를 못했다. 일어나 다리를 동동 구르다가 얼마 못 가 또 다시 의자에 앉기를 반복했다. 지금이 바로 말로만 전해들은 C할머니의 불안증세 같았다. 나는 조용히 다가가 할머니의 손을 잡았다. 괜찮으시냐고 묻자 할머니는 "너무 불안하고 초조해 가만히 있지를 못하겠어" 나는 할머니에게 괜찮다고 말해주면서 등등 토닥여주었다. 왜 불안하고 초조하시냐고 묻자 자신도 모르겠다고 했다. "나도 내가 왜 불안하지 모르겠어. 근데 가만히 있지를 못하겠어. 우리 엄마아빠한테 연락 좀 해줘. 내가 여기 있다고 알려주고 나를 좀 데려가라고 해줘. 엄마아빠는 내가 여기에 있는지 모른단말야." 할머니는 불안증세 뿐 아니라 망상증세까지 보였다. 빨리 가족에게 전화를 하게 해달라고 했다. 보호사들은 흔히 겪는 일이라는 듯 별로 동요하지 않고 가족이 지금 바빠 전화가 되지 않으니 나중에 알리겠다고 하고는 넘어갔다.

할머니는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모르겠다며 여기에서 나가고 싶다고 했다. 일단은 할머니를 진정시키는 것이 우선이기에 할머니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끄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할머니 심호흡을 한번 크게 해보세요. 근데 여기가 싫으세요?"했더니 "여기가 도대체 어디야?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거야? 난 집에 가고 싶어. 빨리 가족에게 연락 좀 해줘."라고 연신 이야기를 했다. "할머니, 이곳에 얼마나 계셨어요?" "모르겠어. 얼마 안됐어. " "집에는 누가 있어요?" "엄마랑 아빠가 있어." "아이들은요?" "없어." "엄마아빠는 어디에 살고 계세요?" "하와이" "할머니, 이곳에 친구들도 있고 할머니를 도와주는 사람들도 많이 있어요. 이곳에서 애착을 느낄 만한 무엇을 만드시는 것이 어떠세요?" "여기 사람들은 좋아. 하지만 친구를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야. 모두가 다 다르고 그런 것들을 다 맞춰줄 수가 없어. 미묘하고 복잡한 심리가 다이나믹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그들과 깊고 안정적인 관계를 맺는 게 쉬운 일이 아니야."

할머니는 역시나 심리학자답게 사람들의 관계에 대해 유려하게 풀어냈다. 여기에 착안해서 나는 할머니의 전문분야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는 사람들 심리 상담도 많이 해주셨잖아요. 지금 이 순간 할머니 자신의 심리에 대해서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불안하고 초조해 어쩔 줄을 모르겠어. 땀도 너무 많이 나고 가만히 있지를 못하겠어." "이럴 때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방에 가서 좀 누워있어야겠어. 나좀 방에 데려다줘."

나는 할머니를 모시고 방으로 갔다. 가서 할머니를 눕혀드린 뒤 방을 둘러보았다. 가족 사진들이 있었고 벽에는 수채화와 데생 등 그림이 붙어있었다. "이 그림들은 누가 그린 거예요?" "내가 그렸어. 취미로 그린 거야." "여기 이 커다란 동그라미는 뭐예요? 색 표현을 참 잘하셨네요." "딱히 뭘 그린 건 아니고 그냥 구도와 모양을 잡고 그에 맞게 어울리는 색을 찾아서 칠한 거야. 그 당시 내 마음 상태를 표현한거지." 나는 할머니의 그림들이 훌륭하다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리고 사진들을 보았다. 사진 속에는 할머니가 말한 대로 엄마아빠로 보이는 분들이 계셨다. 할머니의 나이를 생각할 때 아마도 오래 전에 돌아가셨을 것이다. 그리고 그 옆에는 할머니의 딸과 손주들로 보이는 사진들이 있었다. 할머니에게 물었다. "이 사진 속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에요?" "내 딸이랑 손주들이야. " "자녀는 몇 명이나 있으세요?" "아들 하나, 딸 하나야. 아들은 하와이에 살고 있고 딸은 캘리포니아에 살고 있어."

할머니의 상태는 많이 좋아졌다. 할머니에게 더 누워계실 거냐고 묻자 조금 더 누워있겠다고 했다. 나는 그럼 조금 더 쉬시라고 하고 이만 가보겠다고 하고 방을 나왔다. 방을 나오면 문 바로 옆에 유리문으로 된 선반이 있었고 그곳에는 그 방에 거주하는 노인들의 사진 등 개인적인 추억이 담긴 물건들이 놓여있었다. 그곳에는 손주들과 나란히 서서 웃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이러한 아름다운 순간들로 이루어진 할머니의 기억들은 이제는 촘촘히 짜여지기보다는 느슨하게 풀어져 조각조각 머릿속을 떠돌고 있겠지 싶었다. 그러다 특정 순간 갑자기 하나의 조각이 튀어나와 할머니의 머릿속을 온통 지배하곤 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또다시 다른 기억의 조각으로 넘어가 또 다른 삶의 기억을 떠올리기를 반복하시리라. 가끔씩 느닷없이 찾아오는 기억과 낯설기만한 현재의 상황이 괴리되면서 갑작스러운 불안감에 휩싸이기도 하는 것이리라. 부디 좋은 기억들이 많이많이 떠오르기를, 불안한 마음이 들 때면 자신만의 루틴으로 다시 안정을 되찾기를, 무엇보다도 이곳에서의 모든 순간들이 아름답고 고요하고 평안하기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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