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듦과 죽음, 그리고 삶에 대하여

왜 노인학인가

by 탐구와여정

노인학을 공부한다고 하면 '그게 뭐예요?'라고 직접적으로 묻지는 않더라도 설명이 더 필요한 듯한 반응을 흔하지 않게 경험한다. 나 자신에게는 나이듦과 죽음에 대해 더 알고 싶고 더 나은 노년을 맞이하고 싶어서 하는 공부이고, 노인들에게는 그들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돕기 위한 공부라고 하면 아 그런 것이 다 있구나 하는 표정이다. 하지만 이내 나이가 들어 늙고 노인이 되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고 유쾌한 일이라고 별로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것을 굳이 공부까지 한다고? 하면서 더 이상의 호기심을 보이기는 커녕 흥미가 확 떨어진 것처럼 굴곤 한다. 거기에 대고 무슨 말을 하겠는가. 그저 웃을 뿐이다.

우리는 가족 중 누군가가 나이가 들어 아프고 돌아가시는 것을 직접 경험하거나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 닥치기 전까지는 노년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는다. 막상 자신에게 닥쳐도 반갑지 않은 손님 맞듯이 떨떠름해하고 가능하다면 떠나주기를, 다시는 오지 않기를 바란다. 온전한 내것이 아닌 마치 짐을 떠 안은 양 너무 싫고 부담스러운 그 무엇, 왠만하면 숨기고 싶고 없애고 싶고 늦추고 싶은 그 무엇이 나이듦, 노년인 것이다.

사실 나이듦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닌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그 무엇이다. 당연하게 하던 것들이 점차 하기 힘들어지고 주변의 시선도 달라지는 것이 느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마치 없는 사람 취급을 하거나 충분히 할 수 있는 일도 못할 사람처럼 대하기도 한다. 무슨 특별한 대접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예전과 다름없는 삶을 살고 싶은데 그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그래도 여전히 자기가 주도적인 삶을 살면 괜찮은데 그마저도 안될 때 우리는 흔히 절망을 하거나 분노를 하거나 포기를 한다. 그리고 가까운 가족들은 한숨을 쉬거나 측은해 하거나 회피를 한다. 우리는 모두 나이듦을 당연한 것이 아닌, 나의 것이 아닌 남의 것, 축복이 아닌 불운으로 생각하고 최대한 피하고자 한다. 그리고 막상 닥치면 모든 것이 끝난 듯 군다. 나이를 먹는 것을 피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나이와 함께 오는 것들은 어떨까. 그 중 몇몇은 의학이나 의술, 과학과 돈의 힘으로 어느 정도 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피하지 못했다고 했을 때 그것이 과연 우리 삶의 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죽지도 않고 살아있는 데 말이다. 아직 살아있고 삶은 지속된다고 했을 때 그 삶은 여전히 의미있고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더 이상은 내가 아닌 것 같고, 나 자신이 스스로도 낯설고, 내가 지워지고 사라지는 것만 같고,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절망과 실망에 가득찬 나머지 그저 무기력하게 있어야만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아있는 나, 그러한 나를 찾아야하지 않을까. 여전히 내 안에 있는 나, 그러한 내가 나일 수 있도록 나 자신을 더욱 붙들어야 하지 않을까.

이러한 고민에서 나의 노인학 공부는 시작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진행 중이다. 아마도 죽을 때까지 계속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