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노인의 한마디

1일차

by 탐구와여정

나이듦과 죽음에 대해 고민하고, 나이들어 더 나은 삶에 대해 공부하면서도 치매에 대해서는 사뭇 다른 생각이 들었다. 기억을 잃는다는 것, 나 자신을 잃는다는 것, 더 이상 나 자신이 아니라는 것은 신체적인 병과는 달리 자기주도성에 있어 한계가 있다고 느꼈다. 따라서 할 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다고 여겼던 것 같다. 물론, 치매를 다른 병과 함께 앓기도 하고 치매라는 것이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며 여러 단계가 있기 때문에 섣불리 재단해서는 안되지만 치매에 대해서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막연한 알 수 없음과 막연함에서 우리의 두려움과 선입견이 시작되는 것이 사실이다. 죽음이라는 것도 이러한 범주에 들기는 하지만 치매는 살아있으면서 경험하게 되는 상실이고, 심지어 그 상실을 스스로가 자각하지도 못한다는 사실에서 치매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두려움을 넘어 거부감과 선입견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인지 인턴십을 어디에서 할 것인지 고민했을 때 호스피스가 주로 생각이 들었고 치매요양시설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하지만 여러 한계와 사정 상 나의 인턴십은 바닷바람이 기분좋게 불어오는 조용하고 부유한 동네에 위치한 치매요양시설로 정해졌다. 사실 나의 인턴십은 발러티어로 시작되었다. 전문적인 시설이어서 왠지 특별한 기술이나 지식이 필요한 것처럼 생각이 되었고 나의 노인학 공부가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되겠지 싶었다. 하지만 치매에 대해서는 별다른 지식과 경험이 없어서 과연 어떨지 막막하기만 했다.

아무리 좋은 동네에 위치해 있어도 치매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거부감으로 인해 언제나 발런티어가 부족한 탓이었는지 발런티어 기회는 생각보다 훨씬 쉽게 찾아왔다. 바로 연락이 왔고 범죄기록조사를 마친 뒤 간단하게 온라인으로 지식을 습득한 다음 곧바로 현장에 투입되었다. 액티비티 활동을 진행하는 직원이 있어서 옆에서 간단히 활동 준비나 진행을 돕거나 대부분은 치매 노인들을 직접 돕는 역할이었다.

이 시설은 단계별로 치매 노인들을 관리하고 그에 따라 다양한 액티비티를 준비해서 진행하는데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빽빽하게 일정이 짜여져 있었다. 보통 하나의 활동이 1시간에서 1시간30분 정도 이어지고 중간중간 쉬는 시간이 있었다. 활동은 앉아서 할 수 있는 요가, 필라테스, 호흡, 명상, 스포츠 등 신체를 단련하는 활동에서부터 미술, 음악, 공연, 요리, 게임, 꽃, 식물, 동물 등 예술과 감성을 자극하는 활동, 시청각 자료를 활용한 지식과 정보, 서로간의 교류를 위한 토크와 산책, 드라이브 등 다양했다.

발런티어 활동을 시작할 때 어느 그룹의 어느 활동에 참여할지에 대해 정하게 되는데 나는 어디든 도움이 가장 필요한 곳으로 가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가장 중증의 치매노인들이 있는 곳으로 가라고 했다. 실제 어디로 가는 것이 나을지 전혀 감이 잡히지도 않았기에 크게 상관은 없었지만 막상 그곳에 가려니 치매에 대한 경험이 없는 상태이기에 가장 경증인 곳부터 시작하는 거이 낫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중증 치매노인들의 경우 방문객들이 많지 않고 거동이 불편해 도움이 더 많이 필요한 곳이라고 말을 들으니 그리로 일단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음번에는 얼마든지 다른 곳에 가도 되고 어차피 발런티어를 하는 동안 모든 단계의 치매노인들을 상대할 계획이었으니 사실 어디든 크게 상관은 없었다.

공간 배치를 보니 최대한 집과 같은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돋보였다. 1인 또는 2인이 함께 사용하는 방이 줄지어 있는 복도를 지나면서 선반에 배치된 사진들과 개인적인 물건들을 보니 건강하고 행복하고 온전했던 그들의 삶이 새삼 강렬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복도 끝에 다다르자 거실과 식당이 좌우로 자리하고 있었다. 아직 아침 식사를 마치지 못한 노인들은 여전히 식탁에 앉아 있었고 식사를 마친 노인들은 거실같은 공간에 빙 둘러 앉아 있었다.

대부분 휠체어에 앉아 있었는데 나의 첫번째 충격이라면 인사를 하기가 무색할 정도로 많은 노인들이 졸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상태가 심한 경우도 많아 눈을 감고 자는 중임에도 그들의 얼굴에는 고통이 선연했다. 아무리 TV를 크게 틀어놓았어도 졸고 있는 노인들은 어제밤 한숨도 못잔 사람들처럼 아랑곳하지 않고 자고 있었다. 그나마 눈을 뜨고 있는 노인들이라고 하더라도 인사를 나눌 수 있을 정도의 상태는 한두명에 불과했다. 눈에 초점이 없이 허공을 바라보고 있거나 반응 없는 굳은 얼굴을 하고 있거나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있는 노인들이 대부분이었다. 한사람씩 다가가 인사를 해보았지만 많은 노인들이 반응을 하지 않았다. 가끔 관심을 주는 노인들도 있었지만 인사를 해도 받아주지 않고 얼굴을 돌리거나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심지어는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거나 침입자를 대하듯 노려보고 쌩한 기운을 보내는 경우도 있었다. 그 와중에 계속 돌아다니거나 울거나 소리를 지르는 노인들이 있어 그야말로 그곳은 아수라장처럼 어수선하고 정신이 없었다.

요양보호사들이 밥을 먹이거나 부축을 하거나 씻어주거나 하면서 돕고 있었다. 혼자서 밥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은 몇몇에 불과했는데 혼자서 먹더라도 손의 움직임이 불편하거나 음식을 흘리거나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도 인사를 받아주는 노인과 웃어주는 노인들이 더러 있었다. 인사를 먼저 해주는 노인, 의자에 앉아 웃어주는 노인을 보니 반가운 마음이 들어 나도 모르게 덥석 손을 잡았다.

복도 건너편에 위치한 액티비티 룸에서는 직원이 활동에 필요한 물건들을 정리하고 배치하느라 한창이었다. 준비를 마친 뒤 이동할 시간이 되어 노인들을 액티비티 룸으로 이동시키면서 유리 선반 안에 놓인 사진들을 또 다시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사진 속 그들의 모습과 휠체어에 앉거나 부축을 받으며 걷고 있는 노인들의 모습을 연결시키기가 쉽지 않았다. 모습도 많이 달라져있었고 무엇보다도 거울 속 그들의 모습은 너무도 행복하고 충만해보였다. 그들은 이러한 자신의 앞날을 상상이나 헀을까, 지금 이들은 사진 속 자신을 보며 무슨 생각이 들까, 과연 알아볼 수는 있으려나. 지금 이들의 얼굴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사진 속의 찬란한 웃음과 넘치는 만족은 지금은 완전히 사라져버린 것일까. 이후로도 나는 복도를 지날 때면 언제나 선반 안에 놓인 과거의 사진들을 한번이고 두번이고 계속해서 들여다보고 눈에 담아두려고 노력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시설 안에서 만난 노인들의 모습에 익숙해지다보니 그들을 사진 속 모집과 하나하나 연결시킬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의 모습을 떠올리며 사진 속 그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어느새 그들의 온전했던 과거가 재생되는 듯했고 지금의 모습을 보면서도 사진 속 과거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 되자 노인들을 조금 더 온전하게 바라보게 되는 듯도 했다. 여전히 아름다운 미소를 띠는 분들도 많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라도 사진 속 미소와 웃음을 떠올리다보면 조금 더 친숙함을 느낄 수 있었다.

준비해놓은 테이블에 자리를 잡은 노인들은 액티비티에 관심도 없고 직원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도 않았다. 말을 걸어도 그 때 뿐이고 행동을 지속적으로 할 수도 없었다. 금새 흥미를 잃거나 졸거나 자신의 세계에서 중얼거리거나 했다. 하지만 나의 두번째 충격은 바로 그 때 찾아왔다. 서로 대화가 띄엄띄엄이라도 되는 한 노인에게 너무 잘했다, 무엇이 좋으냐고 물었다. 그러나 대답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길래 대화를 마무리하려던 그 때 "시내에서 일한 적이 있어. 옷을 만들어 판 적이 있어. 옷 만드는 일과 정원 일을 잘했지" 어느 정도 정확한지는 알 수 없지만 꽤나 자세하게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는 할머니의 말을 듣고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중증 치매 노인들의 첫인상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고 그 무엇도 의미가 없을 것만 같았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 할머니의 말을 듣자 이 노인들은 모두 다 자신의 삶을 살아왔고 그 기억의 일부를 간직하고 있는, 여전히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중이었던 것이다.

자신의 집도 아니고 가족들도 곁에 없지만 옆에 있는 누군가와 무언가를 하면서 자신의 삶을 기억할 수 있다는 것, 무엇을 보고 무엇을 하든 그리고 그것이 무엇이든 말할 수 있는 자신의 경험이 있다는 것, 비록 모든 것이 완벽하지는 않아도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웃을 수 있다는 것...생각지도 않았던 대답을 듣고 너무나 놀라고 신기해 나는 웃음이 났다. 그러자 그녀도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삶이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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