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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령 Nov 25. 2022

좀 독하게 살아도 되죠?

독이 들어있는 것들에 매력을 느끼는 게 잘못은 아니잖아요

"독한 년이야. 나 살면서 저런 년은 진짜 처음 봤어."



언젠가 티브이에서 드라마를 보다가 들은 대사였다. 드라마 제목은 생각나지 않는데, 저 대사를 듣는 순간 왠지 모를 쾌감을 느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좀 독하면 어때서? 독하게 사는 게 잘못은 아니잖아? 독하다는 것에 대하여 사전은 어떤 정의를 내렸을까. 네이버 국어사전에서는 [독하다]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독하다 (毒하다) 


[형용사]
1. 독기가 있다.
2. 맛, 냄새 따위의 정도가 지나치게 심하고 자극적이다.
3. 마음이나 성격 따위가 모질다.
[유의어] 매섭다, 맵다, 모질다



우리는 대게 독하다는 말을 들으면 곧바로 부정적인 생각부터 한다. 어딘가 사납고 못된 성질이 있으면서 피도 눈물도 없을 것 같은 사람, 눈빛이 매섭고 독사처럼 무서운 사람, 한 번 잘못 걸리면 크게 데일 것 같은 사람, 냉정하다 못해 냉소적인 사람을 떠올리기 십상이다. 독하면 일단 피하고 싶어 진다. 내 몸에 해로운 영향을 끼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나의 면역체계를 파괴시키는 독한 성질을 가졌기에 나의 건강을 위해서 독한 것은 무조건 피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독소 배출을 하려고 무진장 안간힘을 쓰기도 한다. 몸 안에 있는 독소를 빼는 온갖 민간요법, 다이어트 식품을 먹으면서 노력하기도 한다. 몸에 독소가 많아서 만성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것이며, 여기저기 원인모를 뾰루지가 계속 나고, 소화불량, 면역력 저하, 과체중, 통제 불가능한 식탐에 이르기까지 독소는 말 그대로 우리의 건강을 위협하는 큰 요소라는 것이다.






몸 안에 독이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지금 우리 몸에 독이 많다는 것은 한마디로 우리가 그동안 수많은 독을 먹으면서 살아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 독한 사람들은 도대체 몸 안에 독이 얼마나 많은 것일까? 나는 매일 운동을 하면서 많은 양의 땀을 배출한다. 이러한 과정에는 분명 독소 배출도 포함될 것이다. 운동을 하면 자연스럽게 독소가 배출돼서 혈색이 맑아지고 심장이 튼튼해지면서 자연스럽게 몸이 건강해지는 것이다. 근데 이런 나를 보고 누군가 이렇게 말을 했다. 



"왜 그렇게 독하게 운동을 해? 좀 살살하면서 살아."



독소를 배출하려고, 그래서 건강해지려고 운동을 하는 나에게 독하다고 하다니,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건가 싶었다. "제가 좀 독하게 보이나요?"라고 묻자, "좀 그렇게 보이긴 해."라는 것이다. 그 순간 나는 본의 아니게 독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항상 무엇인가를 할 때마다 주변 사람들은 나한테 비슷한 말을 하곤 했다. "독하다. 정말, 나 같으면 벌써 포기했을 거야." 이쯤 되면 나도 생각하게 된다. 내가 독한 사람이었구나. 근데 독하면 좀 어때서? 독한 게 죄야? 내가 부러워?








글의 서두에서 쓴 드라마 대사는 어쩌면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인지도 모른다. 근데 독한 마음으로 살았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렇게 살지 않았다면 아마도 난 지금 이 세상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겪은 수많은 일들이 나에게는 참 쉽지 않은 것이었기에, 그러한 과정 속에서 나는 나 스스로를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독을 품었는지도 모른다. 독이 있는 동식물을 함부로 만지거나 먹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인정하듯이, 독한 사람도 함부로 건들면 안 된다는 것을 은연중에 알리기 위함이었을까. 그것은 나의 생존법칙이기도 했다. 좀 독하게 살아도 되지 않겠느냐고.



너무 착하면 사는 게 힘들다고 한다. 적당히 착하게 살아야 나도 좋고 너도 좋은 법이라고. 난 사람들이 우유부단하게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다고 정확하게 표현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남 눈치 보지 말고 하고 싶은 거 하고, 먹고 싶은 거 먹으면서 그렇게 살았으면 참 좋겠다. 그리고 좀 독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남을 위협하고 아프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어느 정도의 독은 품고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나를 지키기 위한 무기 하나 정도는 지니고 다녀야 하지 않을까. 속수무책으로 마냥 당하고 살 순 없으니까. 저한테 이런 독이 있으니까 함부로 하지 마세요.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너무 가까이 오면 다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어야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어느 정도 안전거리는 유지가 되어야지.






결론을 내려보자. 결국 독이 있는 사람은 자기만의 무기가 있다는 뜻이 된다. 독은 누구에게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성질이 달라진다. 똑같은 독이라도 누군가에는 약이 되고 누군가에는 진짜 독이 된다. 독은 독으로 다스린다고 했던가. 자꾸만 착한 것보다 독한 것이 나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독한 년이라는 소리도 살면서 한 번쯤 들어봐도 괜찮지 않나 싶다. 그만큼 내가 깡다구가 있고 약해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니까. 나이를 한 살 또 한 살 먹을 때마다 인생살이 참 만만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자주 든다. 만만하지 않아서 그 수준에 대응할 수 있는 나만의 힘이 필요하다는 깨달음을 얻었고, 그래서 나는 나만의 독을 만들기 시작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는 저마다 자기만의 무기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이렇게 만만치 않은 인생이란 전쟁터에 기꺼이 뛰어들 수 있는 용기를 얻고 싶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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