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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령 Nov 24. 2022

우리 딸, 잘 먹고 잘 웃고 잘 자면 되는 거야

사춘기에 접어든 큰아이에게 전하는 엄마 마음

부모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이 세상을 보는 눈이 선명해졌음을 매일 매 순간 느끼고 있다. 갓 태어난 어린아이에게 그저 바라는 것이 있다면 잘 먹고 잘 자고 잘 커줬으면 좋겠다는 오직 그 마음만이 간절했다. 그러다 아이가 서서히 자라면서 조금씩 내 안에 욕심이 생기기 시작한다. 바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부모로서의 욕심 말이다.


얼른 걸었으면 좋겠고, 빨리 말문이 트였으면 좋겠고, 낯가림 없이 누구에게나 잘 웃었으면 좋겠고, 또래 아이들과 잘 어울렸으면 좋겠고, 내가 사주는 책을 잘 읽어줬으면 좋겠고, 지금 보여주는 것, 들려주는 것, 경험하는 모든 것을 다 받아들였으면, 해주는 만큼 다 너의 것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그런 욕심이 가득했던 초보맘 시절이 있었다. 부모라면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음을. 참 바라는 것도 많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난 여전히 초보맘이다. 아이의 성장 속도를 따라가기 벅찬 엄마. 아이가 점점 세상을 넓고 깊게 알아갈수록 그 과정에서 느낄 환희와 감동 그리고 슬픔과 좌절, 분노라는 감정까지 나 역시 똑같이 마주해야 하는, 매 순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는 이등병과 같은 엄마. 언젠가 전투 육아라는 말이 유행했었다. 전투적으로 육아에 임하는 초보 엄마들의 현실적인 고민, 일상, 육아 경험담을 그렇게 표현한 것 같은데, 글쎄 모르겠다.


얼마나 비장한 각오로 아이를 키워야 하길래 마치 갓 입대한 이등병의 마음가짐으로 육아에 임해야 한다는 것인지! 그만큼 육아는 고되고 힘들다. 애를 낳고 직접 키워본 사람만이 안다는 육아라는 커다란 산, 아직 나는 한참 그 산을 오르고 또 오르는 중이다. 산은 해마다 나에게 마치 사계절의 아름다움을 선물하는 듯하다. 봄에는 꽃이 피고 여름에는 뜨거운 사랑을, 그리고 가을에는 울긋불긋 불꽃이 피어나듯 세상 모든 것이 화려해지고 다시 겨울에는 마치 그 모든 것을 겸손하게 내려놓듯이 나에게 부모라는 위치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든다.





때 되면 걷고, 말하고, 때 되면 알아서 책도 읽을 것이고 혼자 알아서 친구도 사귈 것이며, 또 때가 되면 제 외모에 점점 관심도 가지고 저 스스로 예쁘게 꾸미고 관리하겠지. 묻지 않아도 때가 되면 배고프다 할 것이고 굳이 말 안 해도 피곤하면 알아서 자겠지. 엄마, 아빠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면 언젠가는 스스로 깨닫고 느끼는 게 있겠지. 굳이 이렇게 해야 행복하고, 즐겁고, 앞으로 좋은 일만 생긴다고, 성공한다고, 아이들한테 그런 말은 가급적 아끼고 싶다. 그저 잘 자고, 잘 먹고, 잘 움직이고, 잘 놀고, 잘 웃으면 오늘 하루를 보내라고 나 그렇게 말해주고 싶다. 그게 잘 사는 거라고.


사춘기에 접어든 큰아이를 생각하면서 두서없이 뒤죽박죽 써 내려간 글이 점점 마침표를 찍으려 하는 지금, 나의 사춘기 시절을 떠올려본다. 나는 그때 어떤 생각을 많이 했었는지, 나는 그때 뭐가 제일 힘들었는지, 내가 그때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뭐였고, 내가 그때 가장 듣고 싶은 말이 뭐였는지. 그리고 내 아이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조금이나마 토닥토닥 위로해주고 싶다. 성숙해지려고 애쓰는 나의 아이를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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