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글
난 무엇에 흥미를 가지게 된 계기를 잘 기억하지 못한다. 그냥 어느 순간 좋아진 행위, 느낌으로 기억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난 내가 언제 글쓰기가 좋아졌는지 정확하게 회고할 수 있다. 지난 겨울 방학 찬 바람이 불던 날, 마음까지 얼어있던 날 어느 밤이었다.
내어놓지 못했던 이야기들, 감정들을 주체하지 못할 때, 이리저리 방황할 때. 난 키보드 위에 열 손가락을 얹었다. 탁.. 타닥.. 한 글자 한 글자씩 무언가를 써내려갔다. 자음과 모음이 쌓여 단어로, 또 문장으로 문단으로. 어느새 하나의 글이 모니터를 채웠다. 몇 번의 심호흡 후에야 깨달았다. 거기 있는 철자들의 조합은 내 마음에 놓여있던 비가시적인, 비물질적인 ‘어떠한’ 것이라는 것을.
글쓰기는 감정을, 보이지 않는 영혼을 시각화하는 작업이다. 떠도는 것들을 붙잡아 글로써 배치하는 것. 그래서 진짜 내 감정을 눈으로 마주하는 것. 그 순간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을 알았다. 영화를 하겠다는 내가, 일년에 책 두어권을 읽었던 내가 글을 사랑하게 된 정확한 ‘순간’이었다.
타인은 나를 절대, 절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나를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나 뿐인 것이다. 나의 글을 마주한다는 건 결국 나를 마주한다는 것이다.
귀가 닮도록 들었던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진짜 아는 것이 아니다' 라는 격언. 참 좋은 말이다. (진리까지지는 아니지만.) 글을 쓴다는 것도 그랬던 것 같다. 동아리 시간에 글쓰기를 했던 것도 진짜를 알아가기 위한 노력의 연속이었다. (어느 부분에는 약간의 허세와 어디서 본 듯한 문장이 들어갔지만 그 또한 나의 부분이었다고 생각한다. 하나의 글을 완성하고 밀려오는 성취감이 또 다른 글을 쓰게 해줄 동력이었기에…….)
글은 또 다른 의미로, 또 다른 정의로 내게 다가올 것이다. 글이 싫어지고, 글의 의미를 되뇌일 때가 되면 2017년의 겨울, 2018년의 겨울, 오늘 내가 정립한 글의 진정한 의미를 복기해야겠다.
분명한 것은 글은 나고, 나는 글이기에.
-2018.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