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감상
터벅 터벅 계단을 오르는 발걸음에는 설렘이 묻어있다. 백 번이고 올랐을 계단을 넘어 철문을 연다. 장사가 되긴 하는지 걱정되는 닭갈비 집에는 신기하게도 몇 명의 손님들이 음식을 기다리고 있다.
옆으로 걸어가니 익숙한 우퍼 소리가 둥둥거리는 것이 느껴진다.
무대에 오르는 기분이다. 그렇게 생각하려 애쓴다. 자아 도취다.
허벅지까지 내려오는 검은 가디건에 검은 코트를 입은 나는 코인노래방 문을 연다. 나를 알아보시는 주인 아저씨는 내가 만 원을 천 원으로 나누는 동안 나의 근황을 물어보신다. 매일 비슷한 일상이지만 웃음이 버무려진 대화는 내 일상들이 대단했던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좁은 복도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자 좌, 우에서 사람들의 흥과 한이 들려온다. 가끔 기가막히게 노래를 하는 사람을 발견하면 발걸음을 멈추고 감상하기도 한다. 괜한 객기에 남의 방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린다)
노래방은 한결같다. TV모니터는 새로 올라온 곡들을 알려주고 양 옆에 꽂힌 두개의 마이크는 어서 자신을 잡아 달라는 듯 매력적인 몸매를 뽐낸다.특유의 뜨듯한 공기가 가득하다. 조용하면서도 시끄러운 공간이다.
가방을 내려놓고 코트를 벗는다. 일종의 경건한 의식이다.
큼.. 큼.. 목에 얹힌 가래를 삼키고 들어오면서 뽑았던 500ml 생수를 들이킨다. 1000원을 납작한 투입구에 들이밀자 기다렸다는 듯 빨아들인다. 이상하게도 정감이 느껴진다. 고무로 감싸져 있는 노래방 리모컨을 잡는 것은 께름칙하지만 백과사전만한 책을 뒤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재현한 싸구려 반주가 흘러나오고 나는 눈을 감는다.
노래방에 들어왔을 때 처럼 상상 혹은 망상을 시작한다.
나는 무대에 서 있고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나의 첫 노래마디를 기다리고 있다. 정적을 깨고 내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나도, 가상의 관객도 노래에 빠져든다. 전문적인 세션의 반주도 중저음을 완벽하게 수음하는 젠하이져 마이크도 필요없다. 나의 가슴은 울렁거리고, 희열이 올라온다. 목에 핏대가 서고 호흡이 가빠온다. 때로는 눈물이 흐르기도 한다. 차곡차곡 쌓여있던 출신 다른 감정들이 빠져나오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