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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담쟁이 Nov 26. 2015

언제나 봄날

어머니의 생신즈음에

 

 마침내 완성. 무려 두 달간에 걸친 대장정. 초보자의 작품치고는 꽤 마음에 든다. 서툰 작품이지만 직접 만든 것이니 의미가 있다. 우리 공방에서는 누구도 이런 식으로 서각을 하는 사람이 없다. 아무려면 어때. 작품을 만드는 내내 사람들은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꽃과 새를 나무에 조각하여 화려하게 채색을 한 이 작품은 사실 나의 취향은 아니다. 그러나 이 작품을 보면서 마음속에 있는 근심 걱정을 훌훌 털어 버렸으면 하는 마음에서 지금까지의 내 스타일을 과감하게 벗어 던지고 만든 작품이다. 오늘은 어머니의 생신을 맞이하여 형제자매가 대구 친정집에서 모이기로 한 날. 작품을 예쁘게 포장하여 차에 싣고 우리는 대구를 향해 출발하였다.

 아버지의 다급한 전화에 잠이 깬 것은 6년 전 어느 겨울 날 아침이었다. 전날 어머니가 김장을 하다가 넘어졌는데 정신이 오락가락 한다는 것이다. 어제까지 멀쩡하던 분이 그럴 리가 있느냐고, 만약 그렇다면 빨리 병원으로 모셔야 한다고 말씀드린 후 동생들하고 연락을 취하면서 바로 대구로 달려갔다.


 “아줌마는 누군데 날 보고 엄마라 합니까?”


 “엄마”하고 외치며 들어간 병실에서 나를 보고 하신 어머니의 첫마디는 청천벽력이었다. 나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옆에 서 있던 아버지와 여동생들도 고개를 가로 저었다. 어머니는 하루 만에 남편도 딸들도 알아보지 못하는 상태가 된 것이었다. 다음 순간 갑자기 어머니가 활짝 웃으시며 “동철아”하고 이름을 부르셨다. 뒤를 돌아보니 남동생이 병실로 들어서고 있었다. 어머니의 기억 속에 아들만큼은 유일하게 남아있는 존재였나 보다. 다행히도 남동생은 어머니와 우리를 연결해주는 다리가 될 수 있었다.

 어머니는 ‘약물 오남용으로 인한 뇌손상’이라는 의사의 진단을 받았다. 평소에 이런저런 약들을 복용하고 있었는데 김장을 한다고 뛰어다니다가 감기에 걸리게 되자 가까운 약국에서 감기몸살약을 처방받아 함께 드셨던 모양이었다. 어머니는 ‘비교적 오래된 옛날 일’과 ‘아들’의 존재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셨다. 우리는 매시간 마다 우리가 어머니의 딸임을 반복적으로 가르쳐드려야 했다.


 이후 어머니는 조금씩 기억을 회복하셨다. 이제는 딸들의 이름도 기억해내고 어머니 곁에서 병간호를 하시는 아버지에 대한 고마움을 전달하기도 하신다. 어머니는 딸들한테 받은 용돈을 모아서 아들에게 주시기도 한다. 벌써부터 어엿한 직장인이 된 아들이건만 어머니의 기억 속에는 여전히 옛날의 어린 자식으로 남아 있나보다. 남동생은 화를 내기도 하면서 번번이 거부를 하지만 어머니는 늘 더 주지 못함을 미안하게 생각하신다. 이런 어머니를 보는 딸들의 마음도 편치는 않다. 서운한 마음의 끝에 딸들이 “엄마, 우리 걱정도 좀 해 주세요.”라고 하면 “너거는 시집가면 그만이다.” 하면서 웃을 뿐이다.


 사실 어머니의 인생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고 서글픔이 앞선다. 즉흥적이고 감정이 앞서는 아버지에게 직장생활은 맞지 않았고 병마까지 겹치면서 집안의 가장은 늘 어머니였다. 돈을 번다고 객지에 나가서는 소식도 없이 지내다가 빈손으로 집에 들어오곤 했던 아버지였으니 젊은 시절 어머니의 고생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그래도 어머니가 이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누가 뭐라 해도 아들이라는 존재가 있었기 때문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친정에 도착해서 대문을 열고 들어가니 어머니는 벽에 걸린 그림을 보고 계시다가 우리를 맞이하셨다. 내가 처음으로 그렸던 ‘유화’ 그림이었다. 지극히도 사실적인 그림 속에는 어릴 적 우리가 살던 집, 수돗가에 앉아 채소를 다듬고 있는 어머니와 딸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친정에 올 때면 어머니는 늘 똑같은 자세로 앉아 그림속의 추억을 떠올리고 계셨다.


“옛날 우리 집과 똑같아.”


그토록 힘든 시절이었건만 어머니에게는 추억이 되었나보다. 그러나 나는 집에 올 때마다 어두운 방 안에서 초라한 집이 그려져 있는 옛날 그림을 보며 궁상맞게 앉아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싫었다. 바깥에 나가서 동네 친구들도 만나고 밝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서 남은 인생을 살아가면 좋으련만 이제는 그마저도 어려운 현실이 되어버렸다.

 

“엄마. 이제 저 그림 오랫동안 봤으니까 이제 이 그림으로 바꿔 걸어요. 외갓집 뒷산이에요.”


나는 선물을 내 놓으면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설득하기 시작했다. 혹시나 싫어하면 어떻게 하나. 그러나 어머니는 외갓집 뒷산이라는 말에 작품을 하나씩 뜯어보기 시작하셨다. 그리고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 말씀하셨다.


“똑같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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