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포에서
이름이 예뻐서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던 자그마한 포구, 청사포를 찾았다. 울산에서 해운대 방향으로 국도를 따라가면 달맞이 고개를 지나게 되는데 고개를 올라가기 전부터 해송 사이로 살짝 살짝 내려다보이는 곳이 바로 청사포다. 달맞이 고개와 해운대, 송정 해수욕장 등 주변의 명성에 가려진 탓에 가 봐야지 하면서도 늘 그냥 지나치는 곳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목적지를 아예 그곳에 두고 작심하고 찾았다. 포구는 넓게 펼쳐진 짙은 회색의 바위들로 인해 화산섬 제주의 남쪽 해안을 떠오르게 했다. 청사포라는 지명은 푸른 모래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하는데 아마도 짙은 회색 바위가 날씨나 빛의 반사 때문에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 청사포 해안가에 차를 세워놓고 뒤를 바라보니 달맞이고개 뒤쪽으로 펼쳐진 마천루가 높다. 도시와 어촌이 묘하게 어우러진 모습이다. 발길을 해안으로 돌려 멀리서부터 밀려오는 파도를 눈으로 쫓고 있는데 바위에 부딪혀 쏟아지는 하얀 포말이 발등을 적신다. 이 곳이 동해와 남해가 만나는 곳이리라 생각하니 감동이 밀려온다. 원래 바닷물이 만나는 지점은 다양한 어종이 잡힌다고 하는데 여기서 회라도 먹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바다 특유의 비릿한 내음을 맡으며 서 있는데 갑자기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세찬 빗줄기가 되어 쏟아진다. 얼른 차안으로 들어와 비를 피하고 앉아 있는데 빗줄기는 차창이며 차 지붕을 세차게 때린다. 이내 시동을 켜고 떠날 준비를 하는 남편을 제지하고 한동안 빗소리를 들으며 그렇게 앉아있었다.
우리 집에 펌프식 수도가 설치된 건 내가 국민학교에 입학하고 난 후에도 한참 뒤의 일이었다. 그때까지 우리는 상수도가 설치되어 있는 이웃집에 가서 물을 길러와 식수로 사용했다. 물이 풍족하지 않았기 때문에 비가 내리는 날이면 지붕에서 떨어지는 빗물을 받기 위해 양철대야며 양동이를 처마밑에 받쳐 두었다. 물이 새는 쪽 지붕위에는 함석판을 얹어 고정시켜둔 탓에 비가 오는 날이면 빗소리가 요란하게 집 전체를 울렸다. 나의 감각기관이 모두 살아나는 때가 바로 그때였다. 마루에 팔을 괴고 엎드린 채 귀로는 처마나 대야에 부딪히는 빗소리를 듣고, 코로는 빗물의 비릿한 내음을 맡으며, 눈으로는 빗줄기가 만들어내는 지면의 조그만 웅덩이를 바라보곤 했었다.
지금 나는 마당이 있는 집을 꿈꾼다. 내가 꿈꾸는 집은 사람들이 으레 생각하는 멋진 전원주택하고는 거리가 멀다. 자연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는 작은 시골집 하나 있으면 족하다. 그 집의 마루에 앉아 나뭇잎들이 바람에 부딪혀 사각거리는 소리, 지면에 마찰음을 내면서 떨어지는 빗소리 같은 자연이 만들어내는 작은 변화와 움직임을 느끼고 싶다.
세상은 좋아졌다고 하지만 자연과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고 사람들의 마음은 더욱 삭막해져 간다. 위로 위로만 올라가는 요즘의 도시는 비가 오는지 눈이 내리는지 좀처럼 알 수가 없다. 평상위에 누워 밤하늘을 바라보곤 하던 평범한 일상들이 이제는 체험학습 혹은 캠핑이라는 근사한 이름으로 전 국민이 민족 대이동을 해야 얻을 수 있는 귀한 일이 되었다. 사람들은 길을 떠나지만 서로의 공감대는 좁은 차안, 작은 텐트 안이 전부다.
어른들은 과거에 비축된 경험이나 추억들로 현재를 살아간다. 과거를 회상하며 순간순간 행복감에 젖기도 하면서 말이다. 오죽하면 추억을 먹고사는 동물이라고까지 말하겠는가. 그러나 요즘의 아이들은 어디에서 어떤 추억들을 만들고 있을까. 눈부신 문명 속에 이처럼 장래가 불확실한 세대가 어디 있을까. 아이들은 점점 병들어 가는데 어른들은 이렇게 방관만 하고 있어도 괜찮은 것일까.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빗소리에 내가 지나치게 감상적이 된 탓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가고 있는 방향만큼은 재점검해야 할 때가 된 것이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