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소강상태였던 비가 퇴근길에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차내에 습기가 가득차 창문을 열고 속도를 늦추었다. 어디선가 새소리가 들려왔다. 언제 들어도 새소리는 마음을 깨끗이 정화시켜 준다. 밖에 나가서 직접 들어봐야겠다.
들꽃학습원 옆을 지나다가 차를 세웠다. 지금은 그 연구회의 명칭조차 가물가물하다. 들꽃 연구회였지 아마. 학습원의 연구사가 들려주는 들꽃이야기를 듣기 위해 가끔씩 이곳에 오곤 했었는데 벌써 옛일이 되고 말았다. 어쨌든 울산 시내에서 몇 분 거리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다.
오늘은 비가 내리니까 풀잎에 맺히는 물방울, 연못의 수면을 건드리는 빗방울을 볼 수 있겠다. 수면과 함께 흔들리는 하늘은 또 얼마나 아름다울까.
예전에 창포가 있던 연못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전과 달리 다양한 수중식물들이 연못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미끄러질까 봐 바위를 조심스럽게 내디디며 징검다리를 건넜다. 편평한 곳을 골라 앉아서 연못을 바라보았다. 비는 조금씩 잦아들고 있었다. 한 바퀴 빙 돌았지만 못을 가득 채운 식물들로 인해 물속에 담긴 하늘을 보기는 어려웠다.
수중식물을 키우는 화분 쪽으로 걸어갔다. 손을 넣어 물 위에 뜬 작은 부초들을 한쪽으로 밀어냈다. 언제 날이 개었는지 파란 하늘이 그곳에 담겨 있었다. 각도를 달리하며 수십 장의 하늘을 찍었다. 나중에 화폭에 담아봐야겠다.
마을 안쪽에 오래된 집들이 몇 채 보였다. 돌보지 않은 채 방치된 탓인지 담쟁이 덩굴을 비롯해 다양한 풀들이 담을 덮고 있었다. 잡초에 불과하지만 적어도 이 순간 지나가는 나그네에게는 잊지 못할 추억을 불러 일으킨다. 햇빛에 투명하게 비치는 잎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어 마음은 부자가 된 것 같았다.
마을을 돌아 나오면서 보니 어느 집 앞에 살구가 가득 떨어져 있었다. 그 중 싱싱한 살구 하나를 주워 손으로 쓱쓱 닦아 입에 넣었다. 달콤한 즙이 입안 가득 퍼진다. 맛에 집중하다가 사진 찍는 것을 깜빡했다.
새소리가 들려 하늘을 보았다. 아참, 새소리에 이끌려 이곳에 오게 되었지. 자세히 귀를 기울이고 들어보니 마을 가득 새소리가 가득하다. 이런 곳에 살면 나도 분명 아름다운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언젠가 그 꿈을 이룰 수 있으리라. 깨끗해진 몸과 마음으로 순결을 찾은 나는 부푼 마음으로 다시 시동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