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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담쟁이 Oct 25. 2015

시인과 백숙

토함산에서


  석굴암에서 감포 넘어가는 토함산 등성이에는 우리 가족이 자주 가는 단골식당이 하나 있다. 최근 감포로 가는 일직선 도로가 뚫려 차량통행이 현저히 줄기는 했어도 석굴암뿐만 아니라 인근에 들어선 풍력 발전소를 보기위해 산을 찾는 사람들도 제법 되기 때문에 식당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발전소 앞에 있는 넓은 평원은 이국적인 정취가 물씬 풍기는데 발전기가 있는 언덕에서 바람이 불어오는 날이면 평원의 풀들이 일제히 몸을 눕히는 장관을 볼 수도 있다. 식당은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토함산의 이 멋진 풍경을 정원으로 하고 서 있다.
 


  식당에 들어가 주문을 넣은 후 기다리고 있노라면 닭을 잡으려는 주인아저씨의 발자국 소리와 잡히지 않으려는 닭의 푸다닥 거리는 소리에 토함산이 한동안 시끄럽다. 이쯤 되면 아무리 인정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닭에 대해 미안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깃털을 뽑힌 불쌍한 닭은 이내 가마솥 안으로 들어가지만 무정한 사람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가마솥과 밥솥의 치직거리는 이중주를 들으며 인내심이 바닥을 칠 때까지 식사시간을 기다리게 된다.
 
  기다림에 지친 나는 숲 속을 탐방하기 시작한다. 햇살 한 가닥이 키 큰 전나무 사이로 길게 내려오고 빛의 끝자락에 있는 나뭇잎들은 투명한 연두 빛으로 밝게 빛난다.



 삼나무 길을 따라 평원 쪽으로 발길을 돌리면 보라색 엉겅퀴들이 초록의 물결 속에 도도히 서 있다. 가을이 되면 더욱 멋진 모습을 드러낼 푸른 풀들이 불어오는 바람에 일렁이는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그 누구라도 시인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다시 걸음을 옮기는데 발의 감촉이 폭신하다. 가만히 내려다보니 산천에 너무 흔해서 쑥 캐는 할머니들도 찾지 않는다는 질경이다. 그래도 나는 저녁 반찬으로 올릴 요량으로 잎을 따기 시작하는데 질경이가 모자 안에 가득 채워질 무렵에서야 식사가 준비되었다고 알리는 연락이 온다.  



 방으로 들어가 백숙을 맞이하니 그리 반가울 수 없는데 모락모락 피어나는 김을 보고 있노라니 긴 인내의 시간이 조금도 아깝지 않다. 닭다리 하나를 국물 속에서 건져내 접시에 놓은 후 쫄깃쫄깃한 다리 살을 뜯어 새콤하게 무친 미나리와 함께 입안에 넣으면 세상 그 무엇도 부럽지 않다. 조금 전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던 시인의 머릿속에는 잠시 동안 잊고 있었던 닭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도 하지만 이내 잊기로 한다. 시인은 제 한 몸 아끼지 않고 희생하여 자신의 살점을 기꺼이 내어준 토종닭에게 무한한 감사의 마음을 보내며 본격적으로 맛있는 식사를 시작한다.


닭이여, 부디 좋은 곳에 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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