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른 담쟁이 Oct 24. 2015

가을 산책

교정에서



점심식사후 식당문을 나서니 햇살이 나를 보고 손짓합니다. 가을볕은 건강에도 좋다잖아요? 날이 추워지기전까지는 조금씩이라도 볕을 쪼여야겠습니다. 운동장을 중심으로 될 수 있는 한 바깥쪽으로 돌면서 가을을 느껴 봐야겠어요.


가을화단을 아름답게 물들이고 있는 꽃들은 바늘꽃. 만다벨라, 포체리카, 천일홍, 구절초, 소국, 쑥부쟁이, 메리골드, 체리 세이지 등입니다. 그런데 수선화나 튤립, 수국 등이 가득 채우고 있던 봄의 화단과는 달리 가을 화단은 대체로 소박하군요. 주황색의 메리골드만 해도 자기 몸값을 올리는데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몇 송이 심지 않았는데도 번식력 하나는 어찌나 왕성한지 교정 여기 저기에 불쑥불쑥 나와 있네요. 언제 저 먼곳까지 영역을 확대했는지 원.


그 다음 나타나는 것은 앵두나무입니다. 언제 누가 심은 것인지, 어디서 뚝 떨어진 것인지 모르지만 알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곳에 조용히 숨어 있답니다. 봄이면 열매가 열리지만 아이들은 저 열매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을 모르지요. 굳이 가르쳐주지는 않습니다. 아주 작은 나무거든요. 덕분에 오며가며 한두 알씩 따먹는 즐거움을 조금씩 누린답니다. 이 계절에 보는 앵두나무는 그저 이름모를 키큰 들풀 정도로만 보이네요.


다음으로 나타나는 것은 개잎갈 나무입니다. 우리에겐  히말라야 시이다라고 더 많이 알려진 나무. 사시사철 푸른 저 큰나무 위에 눈이 내려와 앉으면 작은 초가집 여러채가 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린 것 같답니다. 하지만 지금은 초록의 눈빛으로 운동장을 내려다 보고 있네요.


찔레나무가 눈에 띕니다. 하얀 찔레꽃이 피는 계절이면 찔레순을 따먹지요. 그 풋내가 입안 가득 퍼지면 절로 흥얼거리게 되는 노래가 있지요. '엄마 일 가는데 하얀 찔레꽃, 찔레꽃 하얀잎은 맛도 좋지...' 이 가을에 봄꽃 노래가 생각나다니.


철길 옆에는 석류나무가 서 있습니다. 빨간 열매가 자태를 자랑하며 주렁주렁 매달려 있네요. 나무가 작아선지 열매도 조그맣습니다. 좀 더 기다려 봐야겠어요. 이러다가 작년처럼 사람들이 먼저 따가면 어쩌지 하는 조바심이 일어납니다. 그래도 아직은 좀더 기다려야 할 듯 합니다. 또 어릴적 우리집에 있던 석류나무가 생각나는군요.


석류나무 옆에는 모과나무가 나란히 서 있습니다. 아이구, 이런! 모과는 벌레가 많이 먹어 버렸네요. 작년 이맘때만 해도 크고 튼실해서 교실에 놔두고 한동안 향기를 음미하곤 했었는데, 올해는 비가 많이 내려서 그럴까요?  아직도 열매는 작고 풋내가 납니다. 좀 더 기다려야 할까요?


그리고 주목나무, 주목나무 열매를 본적 있으신가요? 빨간 열매가 초록의 잎과 어울려 얼마나 예쁜지 모르겠습니다. 카메라를 갖다대어 봅니다. 그렇지만 실물의 저 예쁜 분위기를 전혀 살리지 못하는군요.


그 다음 벚나무. 벚나무는 짙은 초록입니다. 아직은 단풍이 들려면 멀었나봐요. 좀 더 걸어봅니다. 늘푸른 사철나무가 깨끗하게 이발을 했네요. 직각으로 자른 머리가 외국 어느 정원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 다음으로 잣나무. 많은 사람들이 저 열매를 맛보려고 가을을 기다립니다. 이 나무 아래를 지날때면 절로 위를 쳐다보게 되지요. 그래도 열매가 알차게 익으려면 좀 더 기다려야겠습니다.


마을로 가는 오솔길로 접어듭니다. 길 양쪽으로는 대부분 소나무와 참나무들입니다. 예전에 왔던 태풍으로 많은 나무가 쓰러졌지만 아직도 여전히 숲은 숲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참나무를 찾아다니며 장수 풍뎅이랑 사슴벌레를 잡으러 오는 곳이기도 하지요.


아주 큰 뽕나무 한 그루가 이 숲의 뒷쪽을 지키고 있는 곳. 오늘 가을 산책길의 마지막 지점입니다. 봄이면 오디가 나무 아래 흐드러지게 떨어져 있지요. 아이들과 떨어진 오디를 주워 먹다가 까맣게 된 입을 보며 서로 놀리기도 하는 곳이지요.


이런! 신선놀음에 아이들 수업시간 늦겠어요. 교정으로 들어서니 아이들도 화단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고 야단입니다. 저 아이들은 작은 풀꽃을 닮았네요. 나는 어떤 나무, 어떤 꽃을 닮았을까요. 문득 궁금해지는 가을 산책길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시인과 백숙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