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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아이 이지샘 Jan 28. 2024

나를 채우는 단어, #1. 단어

01. 단어



#단어

: 자립성과 분리성을 가진 말의 최소단위




오늘날 나는 언어치료사다.

이십 대 때, 나는 취미 생활로 독서모임을 했다.

십 대 시절, 나는 학교 도서부로 활동하며 점심시간마다 도서관에서 바코드를 찍었고 토요일에는 여러 고등학교를 다니며 독서토론회에 참여하곤 했다.

중학생시절, 학교 앞에서 전집을 파는 아저씨를 보고 집으로 와서는 엄마를 졸라 다음 날 그 전집을 샀던 기억이 있다.    

초등학생 때는 300원을 들고 동네 책방에 가서 만화책을 빌려와 깔깔대며 보던 기억.

거기서 조금 더 거슬러 책, 언어와 관련된 가장 어릴 적의 기억은 아마도 엄마가 사주셨을 집에 있던 전래동화집을 여러 번 꺼내 읽던 내 모습이다.


나이가 들면서 어릴 적 기억들이 많이 희미해지곤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릿속에 각인된 몇 어린 시절의 '나'는 있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그 전래동화집을 읽던 내 모습이다. 그때 읽었던 전래동화집의 표지와 색깔, 그리고 그 코팅되어 매끈했던 책의 느낌이 선명하다. 이 글을 만난 여러분은 지금 이 순간 어린 시절의 어떤 기억이 떠오르시는지?


형편이 넉넉했던 집은 아니었기에 책이 많지는 않았다. 어느덧 어른이 되 한 아이의 엄마가 된 내가 책에 대한 첫 기억을 떠올린 것은 우리 집 책장에 꽂힌 책들 중 유독 전래동화에 관심을 많이 보이던 아들의 모습을 보던 순간이었다. 몇십 권짜리 전래동화전집을 읽고 또 읽었던 어적  언젠가의 나. 그때부터 책이 좋았던 것 같다.


   




나는 책이 좋았다.

책이 좋았던 이유는 여러 가지인데 책 속 세상이 재미있었기 때문도 있지만 가장 좋았던 이유는 책이 '신기했다'. 글자가, 단어가 내게 신비로운 경험을 주었다.


어느 날 어린 내가 책을 보는데

내가 보는 이 책은 단지 '종이'이고, 거기 '글자'들이 주르륵 적혀있을 뿐이지 않은가? 그런데 그 활자를 보면 내가 무엇인가가 상상된다는 것을 문득 알아차렸다. 그리고는 그 사실이 너무 신기했다.  단지 텍스트일 뿐인, 검은 잉크들이 어떻게 내 머릿속에 이런 의미와 개념들을 형상화시킬 수 있는 건가. 이 사실을 알아차리고 난 뒤 어린 나에게 있어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마치 내가 마법사가 된 것 같은 느낌을 가져다주었다.


책 속에 있는 '사과'라는 글자를 읽으면 내 머릿속에 빨갛고, 동그랗고, 과일이면서 먹으면 새콤달콤한 그것이 떠올랐고 그 옆에 '돼지'라는 글자를 읽으면 내 머릿속에는 금세 동물이면서 뚱뚱하고, 꿀꿀 소리를 내는 그것이 떠올랐다.


난 이게 정말이지 신기했다.

어떻게 내가 읽은 '글자'가 머릿속에서 '그림'으로 표현이 될까?


언어치료사가 된 지금은 '단어'의 정의와 언어라는 것의 개념을 알게 되어 이 질문의 해답을 찾았다.

한 개인의 머릿속에 있는 많은 개념들을 그 사람이 속한 단체마다 일정한 규칙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언어'이고 그걸 소리로 표현하면 ''이며  손으로 써서 표현하는 방식이 그 단체 고유의 '글자'다.


이런 걸 몰랐던 어린 시절의 꼬맹이는 그저 신기했다. 그래서 어떤 글을 읽을 때는 엄청나게 생생하게 그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라서 재밌어 죽겠는 것이다.

  

어쩌면 그때부터였다.

내가 '단어'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어릴 적,

모르는 단어가 있으면 항상 찾아봤다.

그 습관은 지금도 남아있는데 나는 심심할 때 한 번씩 내가 떠오르거나 이미 알고 있는, 혹은 '알고 있다'고 자만하는 단어들을 한 번씩 어학사전에 찾아본다. 어떠한 단어들은 내가 평소 사용하던 의미와 비슷한 것 같지만 생각보다 다르거나, 생각보나 많은 의미로 쓰인다는 것에 놀랄 때가 있다.


나의 경우 그런 의미에서 나는 '사랑하다'와 '좋아하다'를 자주 혼용해서 쓰곤 했다. 궁금한 분이 있다면 지금 바로 어학사전에 두 단어를 검색해서 뜻을 찾아보길.


나는 나도 모르게 자리 잡힌 이 습관들과 어릴 적 기억에서 내가 '단어'를 굉장히 좋아한다는 것을 알아챘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과 스치듯 의사소통을 한다. 우리는 우리의 소통을 채우는 수많은 단어어떻게 머릿속에서 정의하는가? 그리고 의사소통 상황에서 수 천 개의 단어를 쓰면서, 내가 생각한 그 단어의 정의와 상대가 생각한 정의가 일치한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면 우리는 모두 한국어를 알 지라도 이 관점에서 우리의 의사소통은 온전하지 못할 수밖에 없다.


온전하지 못한 의사소통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이기에 우리는 더욱더 나를 알아가고, 상대를 알아가려는 시도를 하며 소통에 목을 매는지도 모르겠다.  






단어의 사전적 정의는

'자립성'과 '분리성'을 가진 말의 최소단위이다.

'사과'나 '돼지'처럼 홀로 쓸 수 있고, 그 스스로 뜻을 지닌 것들을 뜻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예외적으로 홀로 쓸 수는 없지만 문법적 뜻을 지닌 '-가', '-는'등의 조사도 단어로 취급한다.


나에게 있어 '단어'의 또 다른 정의는


소통의 출발점이자
상대방, 그리고 세상을 보다 이해하기 위한 작은 노력의 발걸음이다.

단어는 상대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고, 나 자신을 위한 노력이기도 하다.


지금부터 내가 마주하는 여러 가지 단어들을 통해 나 자신을 알아가고, 또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과 소통을 해 보고자 한다. 우리의 이해가 온전하진 못할지라도, 이해를 향한 걸음은 더없이 소중하다.  


여러분은 이 글을 읽기 전까지 '단어'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이 글을 읽고 난 뒤의 '단어'를 바라보는 시각은 어떻게 되었는지도.


이 글과 함께 어릴 적 국어시간에 있었던 학교에서 배우기 위한 '어휘력 증진'시간이 아닌 나를 들여다보기 위한 '즐거운 단어여행'을 떠나보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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