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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남 Jul 31. 2020

어떻게 선생이 그런 상스러운 말을 쓸 수 있나요?

"어떻게 선생이라는 사람이 그런 상스러운 말을 쓸 수 있나요?"


"어머님, 그건 이런 상황과 맥락에서..."


"아니, 그건 둘째치고 선생으로서 그런 단어를 써도 되는 거예요? 다른 학부모님들이 선생님 하도 좋다고 칭찬을 해서 저도 그동안 좋게 봐왔는데 이건 좀 아닌 거 같네요."


"아... 그런 단어를 쓴 부분은 제가 정말 잘못한 거 같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학부모님께 연신 죄송하다는 말만 하고 있었다. 학부모님은 화가 나셨는지, 중간에 얘기를 하다가 전화를 툭 끊으셨다. 불과 30분 전까지만 했어도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다. 너무 억울하고 속상했다.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나는 당시에 영상 촬영 동아리를 운영하고 있었다. 학생들의 바람으로 영상 공모전에 나가기로 했고, 이번에 선생님인 나는 조력자의 역할만 하기로 했다. 각각의 학생들에게 감독, 시나리오 작성, 카메라, 배우 등의 역할을 맡겼다.


어느 날, 한 학생에게서 우리 영상 동아리 내에서 불화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얼마 전에, 감독 역할을 맡은 지영(가명)이와 시나리오 작성을 맡은 예린(가명)이가 영상 촬영 준비 문제로 충돌했다고 했다. SNS에서 서로 비방도 했다고 한다.


그 둘을 따로 교실에 불러서 상담을 했다. 지영이는 평소 예린이의 차가워 보이는 겉모습과 거친 말투, 그리고 주변 친구들의 예린이에 대한 안 좋은 평판 때문에 예린이가 마음에 안 들었다고 한다. 반면, 예린이는 시나리오 작성에 사사건건 간섭하고 자신에게 자주 불만을 표출하는 지영이가 못 마땅했다고 한다.


"예린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너는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는 지영이한테 '감독이 되어서 아무것도 하는 게 없다. 뭐라도 좀 해.'라고 말한 건 좀 심하지 않니?"

"네... 죄송합니다."


"그리고 지영아, 너는 예린이에 대해서 얼마나 안다고 친구들의 말과 예린이의 겉모습만 보고 예린이를 판단하니?"

"네... 죄송합니다."


예린이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임의로 판단한 지영이의 잘못이 좀 더 크다고 생각했기에, 지영이에게 앞으로 다시는 겉모습만으로 친구를 함부로 판단하지 않도록 따끔하게 지도를 하고 있었다.



갑자기 예린이가 울었다. 평소에 자기는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차가워 보이는 인상 때문에 오해를 받는 것이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난다고 했다.


예린이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이 되었다. 나도 차갑게 생긴 외모로 인해서, '저 사람은 차갑고 예의가 없을 것이다.'라는 오해를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에는 차갑게 생긴 나의 외모로 인해, 이유 없이 나를 싫어한 친구들도 여럿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차갑게 생긴 외모가 오히려 플러스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알았다. 내 외모만 보고 '싸가지 없을 거 같다. 딱딱할 거 같다.'는 편견을 가지고 다가왔던 사람들에게 따뜻한 말투로 예의 바르게 행동하니, 그 사람들은 오히려 나에게서 반전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차가운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엄청 따뜻한 사람이더라.', '생긴 것만 보고는 나쁜 놈인 줄 알았는데, 진짜 좋은 놈이더라.'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되었다. 때문에 그냥 예의 바르고 착한 사람들보다 훨씬 더 임팩트 있는 인상을 심어줄 수 있었다. 나의 단점이라고 생각한 것을 인식을 바꾸어 최대 장점으로 만든 것이다.


단점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관점만 바꾸면 장점으로 충분히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예린이에게도 알려주고 싶었다.


"예린아, 선생님도 학창 시절에 차갑게 생긴 외모 때문에 '싸가지 없을 것 같다. 성격이 차가울 것 같다.' 같은 소리를 많이 들었어... 예린이도 싸가지 없다는 소리 많이 들었었지? 선생님은 네 기분 이해해...    (중략)    예린이 네가 조금만 관점을 바꿔보는 건 어때? 사람들이 너의 외모를 보고 너의 성격을 오해한다고 해서 그들한테 화를 내고 같이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에게 진짜 너의 매력을 보여주는 거지. 선생님은 네가 겉모습은 차가워 보여도, 속마음은 따뜻하고 착한 친구라는 것을 알아! 너의 따뜻한 모습을 보여주면, 사람들은 너를 전보다 훨씬 더 매력적으로 여길 거야."


"네... 알겠습니다."


난 정말 진심으로 예린이에게 조언을 했고, 예린이는 나의 말을 이해하는 듯했다.

 



무려 1시간 반의 상담이 끝나고 나는 녹초가 되어 있었다.


'후... 예린이는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잘 이해했겠지? 잘 됐으면 좋겠다.'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모르는 휴대폰 번호였다.


"네. 누구세요?"


"예린이 엄마입니다. 영상 동아리 선생님 되세요?"


"네. 맞습니다."


"하... 이건 도저히 아닌 거 같아서 선생님한테 지금 전화합니다. 방금 예린이가 울면서 집에 들어왔어요. 선생님이 자기 보고 '싸가지 없다.'고 했다고... 생긴 것도 '싸가지 없다.'고 했다고... 아니, 어떻게 선생이라는 사람이 그런 상스러운 말을 쓸 수 있나요?"


"어머니, 제가 싸가지 없게 생겼다고 얘기를 한 게 아니라... 이런 상황과 맥락에서..."


"아니, 그건 둘째치고 선생으로서 그런 단어를 써도 되는 거예요? 다른 학부모님들이 선생님 하도 좋다고 칭찬을 해서 저도 그동안 좋게 봐왔는데 이건 좀 아닌 거 같네요."


"아... 그런 단어를 쓴 부분은 제가 정말 잘못한 거 같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앞으로 저희 애 동아리 안 할 테니깐 그렇게 알고 계세요. 안 그래도 선생님이 애들한테만 시나리오 작성을 맡기고, 아무것도 안 하는 걸 보고(?) 이건 좀 아니다 싶었어요."


"네? 아무것도 안 하다니요? 그리고 갑자기 동아리를 그만둔다니요?"


"애도 너무 스트레스받고 힘들어하니깐 안 하는 게 좋을 거 같아요. 그리고 다음부터 언행 조심해주세요."


어머니는 얘기하는 중간에 전화를 끊으셨다. 나는 제대로 해명할 기회도 못 얻은 채, 졸지에 막말 교사, 학생 지도도 똑바로 하지 않는 교사가 되어 있었다.




몇 시간을 벙찐 상태로 있었다.


'난 분명 좋은 의도로 예린이에게 말을 했는데... 그냥 그 둘이 싸울 때 가만 놔둘 걸 그랬나? 아... 선배 교사분들이 항상 조심하라고 한 게 이런 부분을 말하는 거였구나...'


'아니... 그래도 그렇지, 상황과 맥락은 쏙 빼먹고 엄마한테 그렇게 말한 건 너무 섭섭하다... 아니야. 그래. 내 잘못도 있지. 그래. 학생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려고 '싸가지'라는 말을 썼다지만, 선생님으로서 그런 말을 쓰면 안 되는 거였어. 그래 내가 너무 오버를 한 것 같아. 앞으로는 학생이 상처 받을 수 있으니 언행에 조심하자!'


'그래.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그런 말을 들으면 기분 나쁠 수도 있겠다. 나의 조언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잖아! 학부모님도 얼마나 놀라셨겠어!'


한참을 고민하다 나를 내려놓고, 예린이 어머니에게 진심을 담은 장문의 사과 문자를 보냈다. 예린이가 그동안 동아리에서 계속 스트레스를 받은 것을 신경 못 쓴 것에 대한 미안함, 그래도 반년을 고생했는데 바로 동아리를 나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 아까 상담을 할 때 '싸가지'라는 단어를 써서 예린이에게 상처를 준 것, 그리고 어머니를 놀라게 한 것에 대한 죄송함을 담았다.


문자를 보낸 뒤 한참을 기다렸지만, 예린 어머니의 답장은 오지 않았다...




결국 예린이는 동아리를 탈퇴했다.


그날 이후 예린이는 나를 만나도 인사를 하지 않았다. 아예 시선을 마주치려고 하지 않았다. 그 반에 보결 수업을 들어가도 선생님을 없는 사람 취급했다. 그래도 반년간 같이 동아리 활동했던 선생님인데... 섭섭함과 아쉬움이 있었지만, 어쩔 수 없는 결과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였다. 더 큰 일로 번지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기로 했다.



그렇게 싸가지 사건(?)은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예린이의 담임 선생님에게서 충격적인 쪽지를 받게 되는데...


그 쪽지의 내용은 바로...


두둥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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