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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남 Aug 01. 2020

착하고 예쁜 모범생의 두 얼굴

그렇게 싸가지 사건(?)은 일단락되는 듯했다.


https://brunch.co.kr/@lk4471/124


그러던 어느 날 예린(가명)이의 담임 선생님(선배 교사)에게서 충격적인 쪽지를 받게 되는데...

2주 전에 선생님반 학생(민정, 주연)이 저희 반 학생(예린, 000)한테 학교 뒤뜰에서 욕설을 했다고 하네요. 저희 반 여학생 두 명이 그때 그 말을 듣고, 기분이 나빴다고 아직까지 정신적으로 힘들다고 하네요. 점심시간에 6학년 연구실에서 만나서 선배들한테 욕한 것에 대해서 사과를 했으면 좋겠네요.


쪽지의 내용은 바로 5학년인 우리 반 여학생 두 명이 예린이를 포함한 2명의 6학년 여학생들에게 욕을 했다는 것이었다.


'평소 모습을 봤을 때, 우리 반 애들이 그런 행동을 저지를 애들은 아닌데...'


뭔가 오해가 있는 듯했다. 그리고 상식적으로 5학년 여학생이 6학년 여학생한테 대놓고 욕을 했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가? 그것도 2주 전에 일을 이제 와서 꺼낸다고?


우리 반 아이들을 불러서 자초지종을 물어보았다. 아이들은 전혀 그 사건을 기억 못 하는 듯했다. 자기들이 어떻게 6학년한테 욕을 하겠냐고, 그런 적 없다고 한다. 한참을 고민하더니, 민정(가명)이가 말했다.


"아! 2주 전에 주연(가명)이랑 같이 뒤뜰에서 잡기 놀이하면서 '닥쳐!'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설마 그것 때문에 그런가? 근데 저는 그 언니들한테 그렇게 말한 적은 없는데요?"


"음... 그래? 그럼 일단 가서 저쪽 얘기도 들어보고, 오해를 풀어보자!"




점심시간이 되었다. 우리 반 아이들과 함께 약속 장소로 갔다. 이미 예린이 반 선생님과 학생 두 명은 와있었다.


예린이 담임 선생님이 말했다.

"선생님 반 학생들이 저희 반 학생들한테 욕을 했다고 하던데, 그것 때문에 애들이 많이 힘들어해요. 욕을 한 부분에 대해서 진심으로 사과했으면 좋겠네요."


"음... 제 생각에는 뭔가 오해가 있는 듯한데, 서로 얘기 좀 들어보는 게 어떨까요?"


예린이를 포함한 두 명의 학생에게 어떤 부분에서 기분이 나빴는지 물어보았다.


"(웃으면서)아... 저희들이 뒤뜰에서 놀고 있는데, 갑자기 쟤들이 와서 '닥쳐!'라고 욕을 하고 도망갔어요.ㅋㅋ"


"(억울한 표정으로) 언니... 그건 언니한테 한 게 아니라, 우리들끼리 놀면서 얘기한 거야..."


예린이 담임 선생님이 말했다.

"그래도 상대방이 기분이 나빴으니깐 사과하는 게 맞겠지?"


우리 반 학생인 민정이와 주연이가 '선생님 어떻게 할까요?' 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순간 갈등을 느꼈다. 아무리 봐도 우리 반 애들이 크게 잘못한 건 없는데... 그렇다고 해서 사과를 안 한다면 더 큰 문제가 생길 거 같았다. 상대방 담임 선생님(선배 교사)과도 갈등이 생길 거 같고 부모님들 간에 싸움으로도 번질 거 같았다. 예전에 화난 목소리로 전화 온 예린 어머니의 전화가 떠올랐다.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기가 싫었다. 우리 반 여학생 두 명에게 눈빛과 표정으로 '그냥 피하자!'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언니, 내가 언니한테 '닥쳐'라고 한 것은 아니었는데... 오해하게 해서 미안해. 혹시라도 기분이 나빴다면 미안해."


문제는 사과를 받는 예린이들의 태도였다. 정신적 피해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아이들이 대화를 하는 내내, 대화에 집중 안 하고 자기들끼리 웃고 떠들고 있었다. 이 친구들은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듯했다. 예린이 담임 선생님이 앞에서 말하고 있는 동안에도, 뒤에서 계속 장난을 쳤다. 이들의 모습은 전혀 피해자의 모습이 아니었다.


'아니, 예린이 담임 선생님은 이게 안 보이는 건가? 하... 이게 무슨 상황이지?'


우리 반 아이들이 사과를 하고 있는 와중에도 팔짱을 끼고 담임 선생님 뒤에서 웃으면서 지켜보았다. 순간 예린이와 나의 눈이 마주쳤다. 예린이는 웃고 있었다.


기분이 확 나빠졌지만, 참았다. 더 이상 엮이기가 싫었다. 담임 선생님이 되어서 뭐라고 항의하지도 못해서, 우리 반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이렇게 닥쳐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최근에 그 선배교사에게 지나가는 얘기로 말했다.


"형, 저번에 그 사건 기억나요? 형 반에 예린이랑 한 학생이랑 저희 반 애들이랑 있었던 사건."


"어어어, 기억나지!"


"그때 형이 얘기하는데 뒤에서 둘이 계속 장난치고, 누가 봐도 정신적 피해를 받아서 힘든 모습이 아니었는데... 사실 저 그때 엄청 짜증 났어요. 형은 그 친구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음... 이게 진짜 좀 애매하다. 예린이는 누가 봐도 착실한 모범생이거든. 공부도 잘하고, 얼굴도 예쁘고, 수업태도도 좋고... 이런 친구들은 엄마들한테 아이의 잘못된 점들을 말해도 잘 안 믿으셔. 누가 봐도 학교생활을 잘하고 있는데, 착한 우리 딸을 왜 그렇게 보냐고... 사실 이런 경우에 교사가 개입해서 아이를 변화시킬 수 있을 확률은 거의 없는 거 같다."


뭔가 씁쓸해졌다.


가끔씩 선생님이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극히 미미하다고 느낄 때, 무기력함과 선생님이라는 직업에 회의감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그날이 딱 그런 날이었다.





#교육 #회의감 #학생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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