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2. ~ 2018. 2 군에 복무하는 동안 난 200권의 책을 읽었다. 장르 불문하고 닥치는 대로 읽었다. 생활관 동기들이 TV를 볼 때, 혼자 독서실에 가서 독서를 했고, 일하는 도중에도 짬짬이 독서를 했다. 심지어 아픈 훈련병들을 항의전대(군대 병원)에 인솔하러 가서도, 훈련병들이 잠시 진료받는 그 짧은 시간에도 독서를 했다. 언제나 나의 손에는 책이 있었고, 조교들 사이에서, 심지어 훈련병들 사이에서도 책을 많이 있는 학식 있는 사람으로(?) 소문이 났다.
그렇게 해서 2년 동안 200권의 책을 읽었다. 그렇게 해서 내 인생에 변화가 있었는가? 변하기는 했다. 제대하고 약 1년 간, 슬럼프를 겪었다. 우울증, 대인 기피증, 강박 증상 등 온갖 안 좋은 심리 증상이란 증상은 다 겪었고 매일 같이 자살 충동을 느꼈다. 꼭 독서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군대 시절의 독서가 내 슬럼프에 영향을 끼친 것만은 확실하다.
그렇다. 군 시절의 나의 독서는 실패했다. 실패한 걸 넘어서 그냥 폭망했다. 진짜 자칫했으면 지금 내가 이 세상에 없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독서가 무조건 나쁘다고 말하려고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좋은 독서는 우리에게 이롭다. 난 나쁜 독서를 했을 뿐이다. 독서를 처음 하시는 분들이 나처럼 함정에 빠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왜 내가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지 알리고자 한다.
어릴 적부터 '독서는 좋다. 독서는 마음의 양식이다.' 이런 류의 얘기를 하도 많이 들어와서, 그냥 책을 많이 읽으면 좋은 건 줄 알았다. 무분별하게 책을 읽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책 선정에 편향이 생겼고 내가 보고 싶은 책들만, 나와 생각이 비슷한 책들만 읽게 되었다.
많은 유명한 독서가들이 독서로 인생이 바뀌지 않는 이유를 '실천력의 부재'로 꼽지만, 나 같은 경우는 실천을 잘했다. 너무 실천력이 강했던 것이 화근이 되었다. 당시 난 '시크릿' 같은 뉴에이지 사상에 빠져 있었고, 시크릿 관련 카페에서 활동을 하기도 했다.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진다.'라는 시크릿의 대전제를 믿고 깃털 시크릿, 로또 시크릿, 여자 친구 시크릿 등 안 해본 것이 없다. ETF, 호오포노포노에도 빠져 하루 종일 미용감사(미안합니다. 용서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를 중얼거리기도 했고, 시크릿 관련 유명 유튜버한테 상담을 받기도 했다.
또 한 번은 '화장품이 피부를 망친다.'라는 책을 읽고, '그래! 인공적인 것보다는 자연적인 것이 좋은 거야. 역시 나의 여드름의 원인은 화장품이었어!'하고 1년 동안 선크림, 로션 등 아무것도 바르지 않고 물세안만(일명 우츠기식) 했다. 결국, 학생 같은 동안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던 나는 30대 후반으로 오해를 받을 만큼 순식간에 삭아버렸고, 1년 동안 외모 콤플렉스로 인한 대인기피증을 가지게 되었다.
어느 정도 감이 오는가? 비판 없는 무조건적인 수용의 무분별한 독서를 하면, 그것들이 쌓이고 쌓여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나의 가장 큰 문제점은 '실천력'이 아니라 '비판력의 부재'였다. 거기다 확증 편향(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도 한 몫했다. 아무런 대가 없이 편안하게 공짜로 무언가를 얻으려고 하는 내 마음이 시크릿과 우츠기식을 끌어들였다.
뭔가 꾸준하게 독서를 하면서 자기 계발하는 나의 이미지가 좋았다. 그리고 그런 나를 바라보고 사람들이 나를 인정해주니 좋았다. 어느 순간부터 보여주기 식의 독서를 하고 있었다. 책의 내용이 1도 눈에 들어오지 않으면서도, 누군가(훈련병, 생활관 동기)의 시선을 느끼면 책을 열심히 읽는 척했다. TV, 노래방, 농구 등을 포기하고 독서실에서 책을 읽고 있으면 동기들은 항상 '역시 00형! 대단해! 존경스러워!'하고 나를 추켜세워주었다.
긍정적으로 변한 건 미미함에도 불구하고, 난 책을 읽으며 자기 계발을 한다는 내 이미지에 취해서 흑역사를 많이 만들었다. 맞후임에게 '시크릿'을 추천해주기도 하고, 후임들을 모아 놓고 자기 계발에 대해서 훈수를 두기도 했다. 심지어 훈련병을 모아놓고서도 책에 있는 좋은 말들을 마치 '내 것'인 양 온갖 멋있는 척을 하면서 얘기했다. 부끄러운 과거다.
당장 내 인생을 바꾸기 위해 독서에 집중을 해도 모자랄 판에, 보여주는 데에 본인의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다면 과거의 나처럼 될 확률이 높을 것이다. (농담^^)
그 당시의 나는 대부분의 책들을 딱 한 번만 읽었다. 상대적인 기준에서, 나쁜 책들도 많이 읽었지만, 좋은 책들도 꽤 읽었다. 하지만 독서를 '몇 권' 읽었다는 그 '몇 권'에 취해서 재독은 절대 하지 않았다. 모 작가가 1일 1독을 하면 인생이 바뀐다고 한 말을, 내가 듣고 싶은 대로만 듣고 책을 날림으로 읽으면서 1일 1독 했다.
2년 동안 200권이 넘는 책을 읽었지만, 내 머릿속에는 남은 게 거의 없다. 책의 '권'과 '쪽수'에 집착한 결과다. 기억나는 건 '시크릿'과 '우츠기식'정도... 하... 그 시간들의 기회비용들을 생각하면 너무 안타깝다. 타임머신이 있다면 과거의 나에게 돌아가서 올바른 책을 고르는 방법과 독서법을 전수해주고 싶다.
진짜 좋은 책을 만났다면, 최소 2번, 3번은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아니, 그냥 읽어보는 걸 넘어서(input), 타인에게 설명하기, 글쓰기, 발표, 동영상 제작(output) 등을 통해서,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을 추천한다. 나쁜 책 200권으로 보여주기 식 독서를 하는 것보다 좋은 책 한 권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훨씬 좋다.
사실 거시적으로 보면, 나쁜 독서가 나를 슬럼프에 빠지게 했고 위와 같은 일련의 교훈들을 얻게 했기에 결국엔 나의 성장에 도움이 되었다 할 수 있지만, 타인에게 권하고 싶지는 않다. 진짜 위의 세 가지에 해당되는 독서는 안했으면 좋겠다. 골로 간다.
요즈음은 보통 이주일에 한 권 정도 책을 읽는다. 정말로 지금 나에게 필요한 책이다 싶은 경우는 최소 2번 이상 읽는다. 그리고 우리 반 아이들과 공유한다. 어떻게 보면 우리 반 아이들을 통해서 output을 하고 있는 셈이다.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이지만 아이들에게서 배우는 사람이기도 하다. 아이들과 함께 daily report를 쓰는 습관을 만들었고, '최고의 자아'와 '반 자아'로 나누어 인생을 좀 더 풍요롭게 살아가는 방법을 배웠다. 함께 성장하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다음 주 월요일에 드디어 6학년 개학이다! 얼른 많은 것들을 아이들과 공유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