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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남 Jul 29. 2020

대기업을 퇴사하고 교대에 입학한 이유

내 나이 30살. 나에게는 잘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작년에 교육대학교에 입학한, 현재 대학교 2학년생인 친구가 있다. 오늘은 이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이 친구가 왜 이런 무모한(?) 선택을 했는지, 그리고 직장인에서 다시 대학생으로 돌아간 지금의 삶은 행복한 지, 궁금하지 않은가?




2018년 초, 갑자기 재수친구 정환(가명)이가 연락이 와서, 1년 동안 잘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둔다고 했다. 각종 자격증 취득, 해외인턴까지 하는 등 몇 년 간 스펙을 쌓으면서 어떻게 들어간 기업인데 갑자기 퇴사라니... 이유를 물어보았다.


첫째, 자율성을 박탈당한 느낌이 계속 든다고 했다. 누군가 시키는 일만 하고 있는 자신이 거대한 기계 안의 하나의 부품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그리고 부품이 제 기능을 못하면 바로 바꿔 끼우면 되는 것처럼, 자신도 언제든지 교체당할 수 있는 부품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회사에 다니면서 점점 영혼이 죽어가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둘째, 그 기업의 조직문화가 싫다고 했다. 기업 안에 대학 동문끼리 뭉친 2~3개의 파벌이 있다고 한다. 정환이도 해당 대학을 나왔기에, 매 번 술자리마다 대학 및 직장 선배들에게 불려 나갔다고 한다. '자기만 믿으라고 라인만 잘 타면 된다고' 하면서 거들먹거리는 선배들과 어떻게든 잘 보이려고 아등바등 거리는 동기들을 보면서, 직장생활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고 한다.

셋째, 무엇보다 일이 재미없다고 했다. 이 재미없는 일을 평생 할 생각을 하니 끔찍하다고 했다. 자신은 돈 많이 못 벌어도 좋으니,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단다...


친구의 말이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갔지만, 친구가 너무 섣부르게 판단을 내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환아, 그래도 퇴사는 좀 아닌 거 같은데... 직장 생활하면서 자율적인 직장인이 얼마나 되겠어? 게다가 말단 직원이면 일단 시키는 것부터 해야지. 나중에 네가 승진을 해서 직위가 높아지고 하면, 좀 더 자율적일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일이 재미있는 직장인이 대한민국에 몇 명이나 되겠어? 대부분 재미없지만, 꾹 참고 하는 거야. 그리고 너 연봉 세잖아. 그만큼 대가를 받고 있잖아."


"야, 네가 잘 몰라서 그런다. 돈이 문제가 아니다. 뭔가 일을 하면서, 내가 내가 아닌 듯한 느낌이 들어. 내 생명력이 계속 깎여나가는 듯한 느낌. 이렇게 계속 살면 안 될 거 같은 그 느낌... 그냥 그만두련다."


그렇게 정환이는 힘들게 들어간 직장을 돌연 퇴사했다.


당분간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지, 자신의 우선 가치가 뭔지 그리고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고민해본다고 했다.




6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정환이는 게임도 하고, 책도 읽고, 여행도 다니는 등 백수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지난 1년 간 모았던 돈은 거의 떨어져 간다고 했다. 친구인 내가 보기에는 정말 대책이 없어 보였다. 정말 이 친구가 앞으로 어떻게 먹고

살건 지 너무 걱정이 되었다.


8월 중순, 갑자기 정환이에게서 연락이 왔다. 교대에 들어가겠단다.

"교대? 너 미쳤어? 대학생활을 또 하겠다고?"


"어. 현재 내 가치관에 가장 근접한 직업이 교사인 거 같아서 이번에 수능 한 번 쳐보려고."


"진짜 미쳤다... 그래, 6개월 동안 고민한 네 가치관이 뭔지 한 번 들어보자."


"일단 첫 번째는 자율성. 난 누가 나한테 일을 시키는 게 너무 싫어. 그리고 일을 하면, 직장 상사들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하고 조언을 해주는 데 그게 맞는 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상하게 짜증이 나더라고.  너도 알잖아. 나 성격 더러운 거 ㅋㅋㅋ 근데 선생님은 좀 다르잖아. 적어도 교실 안에서 수업하는 만큼은 자율성을 존중받잖아. 내가 원하는 수업을 그 안에서 자유롭게 창조해낼 수 있잖아. 두 번째는 워라밸. 난 돈이나 명예보다는 일과 삶의 균형이 더 중요하다고 봐. 물론 교사를 하면 내 연봉은 반토막이 나겠지. 그래도 일찍 퇴근해서 내가 좋아하는 헬스하고 책 읽고, 고양이랑 보내는 그런 균형 있는 삶이 나한테는 더 잘 맞다고 생각해. 세 번째는 흥미. 내가 여태까지 살면서 가장 재미있다고 생각한 게 가르치는 거야. 학습 봉사를 가거나 과외를 했을 때, 애들이 변하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더라고... 솔직히 회사 다닐 때는 재미를 느낀 적이 단 1도 없다..."


"음... 네 말이 어느 정도는 이해는 간다. 근데 아무리 그래도 현실적인 부분들을 고려를 해야지. 서울권 경영대학 나와서 해외 인턴도 갔다 오고 각종 자격증들 취득한다고 개고생 했던 8년 동안의 그 세월이 안 아깝냐? 교대에 들어가면 사실상 그 노력들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건데... 친구야, 진짜 이건 아닌 거 같다. 차라리 공기업에 들어가는 건 어때?"


"공기업도 생각해 봤는데, 내 가치관을 총체적으로 따져봤을 때는 아닌 거 같다. 그래서 일단 수능 한 번 쳐보려고. 만약에 내가 최선을 다했는데, 이번에 교대에 합격 못 하면 다시 일자리 알아봐야지... 어차피 수능 이제 70일 정도밖에 안 남았잖아. 나중에 지금의 나를 되돌아보면서 후회가 없도록, 딱 70일만 노력해볼게."


그렇게 정환이는 수능 원서 접수를 하고 수능 공부를 시작했다.



'지난 6개월 간 한량처럼 지내던 친구가 과연 공부를 할 수 있을까?'하고 걱정을 많이 했는데, 그건 나의 기우였다. 가치관과 목표가 확실히 설정된 정환이는 마치 부스터를 단 불도저 같았다.


당시 정환이의 공부 루틴은 다음과 같다.

새벽 4시 기상~밤 10시: 공부 (중간에 삼시세끼 포함)

그냥 하루 종일 미친 듯이 공부만 했다고 한다.

 



수능이 끝났다. 그날 저녁, 정환이에게 연락을 해보니 목소리가 밝았다. 가채점해보니 점수가 나쁘지 않다고 했다. 그리고 자기는 최선을 다해서 노력했기 때문에 후회가 전혀 없다고 했다.


몇 달 뒤, 대학 발표가 났다.

"친구야! 교대 합격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와... 축하한다. 근데 미친 거 같다. 진짜... 하... 너는 진짜 미친놈이다... 인정.... 핵인정..."


난 친구의 도전의식과 깡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직 정환이에게는 현실적인 문제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정환이는 이제 막 첫 관문을 통과했을 뿐이었다.


"정환아. 근데 너 생활비나 학비는 어떻게 할 건데? 그건 생각해봤어?"


"어, 일단 학비는 장학금 받을 거 같고, 생활비는 과외하거나 근로장학생 하면서 충당하려고."


"넌 진짜 대단한 놈이다.ㅋㅋ"




그렇게 1년 반이 흘렀다. 생각보다 정환이는 교대 생활에 빠르게 적응을 했다. 학교 성적도 잘 받았고, 9살 차이 나는 동기들과도 잘 어울렸다. 가끔씩 여초의 교대 분위기에 적응을 못해, 나에게 하소연을 했지만 최근에는 이마저도 적응한 듯하다. ㅎㅎ


어제 오후 오랜만에 정환이와 통화를 했다.


"야, 30살 대학생활 어떠냐? 할 만하냐? ㅋㅋㅋㅋㅋ"


"어, 좋다.ㅎㅎ 애들도 다들 착하고, 학교생활도 할만한 거 같다."


"대기업 그만두고 교대 간 거 후회는 안 되냐?"


"단 1의 후회도 없다. 진짜. 나는 진짜 그때보다 연봉을 두 배로 준다고 해도, 그때로 돌아가지는 않을 거 같다."


"그 말인 즉, 지금 생활이 훨씬 만족스럽다는 거지?"


"어. 저번에도 말했다시피, 돈이나 명예는 내 가치의 우선순위가 아니야. 난 연봉을 많이 받던 대기업 시절보다 돈은 많이 못 벌고 있지만 가치를 따르고 있는 지금이 훨씬 행복해."


친구가 행복하다는 말에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정환이는 '자율성', '워라밸', '재미'라는 자신의 가치관을 따라서 잘 다니던 직장을 포기하고 교대를 선택했다. 그리고 자신의 가치를 따르고 있는 지금이 행복하다고 했다.


지금 나는 '돈이나 명예보다 워라밸이 중요하다.' 같은 류의 어떤 가치의 옳고 그름의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내가 아는 09학번 교대 선배는 1년 직장 생활을 하다가 도저히 자신의 가치관과 맞지 않아, 교사를 그만두고 수능을 다시 쳐서 경영대학에 다시 입학을 했다. 정환이와 정반대의 선택을 한 것이다.




자신의 가치를 따르는 삶을 살며 행복한 정환이의 모습을 보며, 나 자신에게도 하나의 질문을 던져본다.


난 내 가치를 따르는 삶을 살고 있는 걸까?





#가치를따르는삶 #가치관 #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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