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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남 Jul 11. 2020

술자리에 안 가면 직장에서 소외되지 않을까?

2015년 생애 첫 발령을 받았다. 드디어 내가 꿈에 그리던 직장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대학교 1학년 막내시절을 거쳐 대학교 4학년 시절 선배로 군림하던 나는 직장에 들어가서 다시 막내가 되었다. 하지만 다시 막내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0선생. 얼마 전에 반찬한 거 남았는데, 자취방 들고 가서 먹어!
0선생만 보면 우리 아들이 생각난다니깐! 항상 보면 챙겨주고 싶어.

나는 선배님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으면서 즐겁게 직장생활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직장생활이 행복했던 나에게 부담스러운 자리가 있었으니 바로 술자리다.


막내가 술자리에 빠지면 안 되지! 원래 술은 배우면서 느는 거야! 가자!

그 당시 막내는 술자리에 항상 필참이었다. 혹여나 피치 못할 사정이 되어 술자리에 빠지게 되면, 선배님들의 눈초리를 받아야 했다.


직장에서 소외되기는 싫었기에 사랑받는 후배가 되고 싶었기에, 선배님들이 부르는 술자리면 웬만하면 다 참여했다. 선배님들이 주시는 술도 잘 받아 마셨다.

와... 00아. 생각보다 술 정말 잘 마시는데! 멋지다! 사회생활 잘하고 있다!

이상하게 이런 류의 칭찬을 받으면 기분이 좋아졌다.


이렇게 나는 술자리를 통해 싹싹하고 사회성이 좋다는 이미지를 얻었고, 단체회식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술자리에도 정말 많이 다녔다.


일주일에 3~4번은 술자리를 가졌던 것 같다. 직장동료들과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다음날 학교에 출근을 하면 해장을 위해 컵라면을 먹었다. 머리가 깨질 것만 같았다. 반 아이들이 나의 창백한 얼굴을 보면서, '선생님 괜찮아요? 어디 아파요?'하고 걱정스럽게 물어본 적이 많았다.


'다음날 수업이 있는데, 이렇게까지 술을 마시는 게 맞는 걸까?'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제 술을 좀 자제하자'라고 다짐을 했다. 하지만 저녁에 선배님들이 호출하면 술자리에 나갈 수밖에 없었다. 혹여나 빠지려고 하면 나는 의리 없는 놈이 돼버렸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술자리 분위기에 동화가 되었고, 술을 마시는 것을 즐기고 있었다. 직장에서는 선생님 혹은 상사였지만, 술자리에서는 형, 누나라고 불렀다. 이상하게 사람들과 술자리를 가지면 뭔가 친근함과 끈끈한 우정이 느껴졌다. 가끔씩 잘 나가는 교감 선생님이나 선배님들을 만나서 같이 술자리를 하면 내가 뭐라고 된 느낌이 들었다.


1년 동안 술을 정말 많이 마셨다. 일주일에 3~4번 정도, 술자리 한 번에 최소 소주 1병 반은 마셨으니깐, 1.5(병)*3(번)*52(주)=234(병). 난 1년 동안 234병의 술을 마셨다. 234병의 술을 마시는 동안 건강도 많이 안 좋아졌다. 6kg의 살이 쪘고 시력이 나빠졌고 배도 항상 아팠다.


지금은 저 수치를 보고 경악하지만 그때의 나는 아마 저 수치를 보고 자랑스러워했을 거다. 실제로 나는 여러 선배님들이 나를 술자리에 불러주시는 것을 인싸의 상징이라고 생각했고, 술을 많이 마시는 것을 사회생활을 잘하고 있는 것이라고 착각했다. 그리고 나는 아직 젊다고 생각했기에 건강은 내 우선순위 밖이었다.


그렇게 1년을 술과 함께 보내고 나는 군대에 갔다.




군대 복무 2년을 마치고 복직을 했다. 그 사이 학교의 분위기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예전에는 전체 회식을 최소 2주에 1번은 했다면, 이제는 분기에 1번 할까, 말까였다. 더 이상 술을 강요하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예전에는 술을 못 마시겠다고 하면 '어디서 감히!'라는 눈총을 주었지만, 이제는 굳이 술을 강권하지 않았다.


하지만 전체 회식자리만 '조심하자!'라는 분위기로 바뀌었을 뿐이지, 나머지 부분들은 군대 가기 전과 똑같았다. 여전히 소규모 회식은 많았다. 오히려 전체 회식 분위기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따로 술자리를 더 많이 만들었다.


그들은 직장 내 인싸였다. 직장 내 생활을 잘하려면 그들과 술자리를 함께 하면서 친해질 필요가 있었다. 군대 가기 전처럼 다시 한번 인싸의 기분을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학기초에는 그들이 부르는 술자리라면 어디든지 참여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갑자기 나에게 슬럼프가 찾아온 것이다. 당시 나는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https://brunch.co.kr/@lk4471/9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뭘 해도 재미가 없었다. 예전처럼 선배들과 어울려 술자리를 가져도, 여자 친구를 사귀어도, 하루 종일 게임을 해도 내 공허함은 채워지지 않았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는 '나는 굳이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으로 바뀌었다. 부정적인 생각은 더 부정적인 생각을 몰고 와서, 나 자신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죽느냐, 사느냐.'를 고민하고 있는데 술자리가 중요할 턱이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선배들이 술자리에 불러도 참여하지 않았다. '직장 내에서 소외될까?'라는 생각이 살짝 떠올랐지만, 더 큰 두려움이 당장 눈 앞에 있었기 때문에 무시했다.




그렇게 몇 달이 흘렀다. 나는 대부분의 술자리에 참여하지 않았다. 설사 참여하더라도 집에 일찍 들어갔다. 슬럼프로 인해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나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이 내 귀에까지 들려왔다.

00이는 사회성이 좀 떨어지는 거 같아.
00이는 일처리도 잘 못하던데, 얘한테 굳이 일을 맡겨야겠어?
00이가 뒤에서 누구 험담하던데...


누군가 헛소문을 퍼트리기도 했다. 누군가 이간질을 시키기도 했다. 심지어 이간질당한 선배는 1년 동안 나를 힘들게 했다. 그들은 나를 빼고 다른 카톡방을 만들었다. 누군가 '카톡방에 단체 사진 올렸으니까, 확인해봐.' 했을 때, 내 카톡에는 아무것도 뜨지 않았을 때의 자괴감이란...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워낙 내가 학교생활에 신경을 잘 못썼기 때문에 욕을 들을만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타인과의 관계에 신경을 쓸 여유는 없었다. 아직 나는 나 자신과의 문제도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렀다.


나는 끝이 없어 보이던 방황을 끝내고, 내 인생의 의미를 찾았다.

https://brunch.co.kr/@lk4471/35


내 인생의 의미를 찾고 난 뒤부터는 더 이상 술자리에 내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로 했다. 그동안 술자리에서 허비한 시간들이 너무 아까웠다.


난 그동안 누군가의 비위를 맞춰주기 위해, 인싸가 되기 위해, 여러 사람들과 함께하며 내가 뭐라도 된 듯한 느낌을 가지기 위해, 순간적인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 술자리를 가지고 있었다. 술을 마시는 동안 내 정신과 신체건강은 피폐해지고 있었다. '나 자신'을 위해서 술자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술자리는 '나 자신'을 죽이고 있었다.


더 이상 '나 자신'을 희생자로 만들지 않기로 했다. 앞으로 남은 인생을 온전하게 '나 자신'을 위한 시간으로 채우기로 했다.




술자리에 안 간 지 벌써 1년 반이 넘어간다.


처음에는 '내가 직장에서 소외되지 않을까' 두려웠다. 기존에 같이 놀던 사람들이 나를 싫어할까 봐 두려웠다. 직장 선배의 눈 밖에 날까 봐 두려웠다.


실제로 두려워하던 일들이 몇 달간 생겼으나, 그것도 잠시 뿐이었다. 나에 대한 안 좋은 얘기들은 시간이 지나자 다 사라졌다. 술자리에 나가지 않으면, 정말 큰일이라도 날 것 같았으나, 실제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술자리에 안 간 지 1년 반인 지금은 너무나 평온하다.

 

이제는 아무도 나에게 술 먹자는 연락이 오지 않는다. 하도 거절을 많이 해서, 이제는 내가 술을 안 먹는다는 것을 다들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분들도 이제는 나의 의사를 존중하고 배려해 주신다.


술자리에 안 가니 나는 그 시간을 온전하게 나를 위한 시간으로 쓸 수 있었다. 운동, 독서, 명상, 수업준비, 뮤지컬 등으로 그동안 공허했던 빈자리들을 채웠다. 심지어 뮤지컬을 하면서 지금의 아내도 만났다.  


술자리에 안 가니 주변 인간관계도 바뀌었다. 예전에는 친구관계에서 술친구가 주였다면, 이제 내 주변에는 술을 즐겨 먹는 친구가 거의 없다. 이들은 술을 마시는 대신에, 그 시간을 온전하게 자기 자신과 자신의 꿈을 위해 사용한다. 예전에 한참 친구들이나 선배들과 술 마실 때의 대화 주제가 대부분 '연애, 험담, 승진, 교육, 게임' 등이 주였다면, 요즘 친구들과의 대화 주제는 '꿈, 좋은 책, 시간관리, 교육, 자기계발, 인생관'이다.


얼마 전에 학교에 한 선생님께서 나에게 이렇게 물으신 적이 있다.

0선생. 술도 안 마시고 그렇게 빡빡하게 살면 인생 무슨 재미로 사나? 재미없을 거 같은데...


나는 자신 있게 이렇게 대답했다.

선생님. 예전보다 지금이 훨씬 행복하답니다 ㅎㅎ 선생님도 같이 술자리 끊어요. 신세계가 열린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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