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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남 May 01. 2020

최악의 슬럼프를 탈출하는 방법#1

Feat. 나의 슬럼프 극복기

최근에 주식을 시작하면서 끊임없이 걱정을 하고 기대를 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이 되어 내 인생 책인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written by 에크하르트 톨레)'를 재독 했다. 이 책이 나에게 주는 의미는 상당히 크다. 2년 전, 매일 같이 자살 충동을 느끼던 슬럼프 시절의 나에게 한줄기 빛이 되어준 책이다. 먼저 책 소개에 앞서, 당시 힘들었던 내 상황을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작년에 썼던 글을 통해 소개하고자 한다. 




2019. 10. 8

작년 한 해는 내 인생 최악의 시기였다. 그동안 오만, 비교, 교만, 게으름, 완벽주의, 선민의식 등으로 뿌리가 썩을 대로 썩은 나는 그대로 무너져버렸다. '나는 왜 사는가?'라는 질문을 파고들다 못해 심연의 바닥 끝까지 가버리고 말았다.


현실도피를 위해 하루 10시간씩 게임을 했고 친구들을 만나지 않았다. 사람들 만나는 게 무서워서 친한 친구 결혼식도 가지 않고 게임을 했다. 직장동료들과 주변 인간관계는 엉망이었고 친구들은 내가 혹여나 자살은 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아이들은 내 불안한 마음을 귀신 같이 알아채고 나를 멀리했다. 당시 인생의 모든 것이 의미가 없어 보였다. 가족들도 친구들도 여자 친구도 의미가 없어 보였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작년에 하루에 수십 번도 넘게 자살을 고민했던 것 같다. 지금은 극소수의 사람 빼고는 대부분 믿지 못한다. 다들 이런 반응이다. '00 네가 설마???? 말도 안 돼~~~' 하긴... 당시의 나도 내가 이런 슬럼프를 겪게 되리란 걸 몰랐고 지금의 나도 당시의 기억들이 마치 전생의 기억처럼 느껴진다.


종교나 뉴에이지 서적에 나오는 것처럼 메시아나 누군가가 나와서 나를 구제해주길 바랐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몇 달 동안 죽느냐 사느냐 고민을 하다가 지치다 지친 상태로 나 자신과 마주하게 되었다. 힘이 빠진 채 오만, 탐욕, 슬픔, 분노 등 여러 가지 감정들과 과거에 갇혀있는 나를 마주했다.


비: 비참해지거나

교: 교만해지거나


끊임없이 나보다 잘나 보이는 사람들과 비교하며 열등감에 절어있었던 나. 나보다 못해 보이는 이들을 보며 우쭐거리며 자위했던 나.


비교는 더 이상 내 인생에 쓸모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깨달은 것. 내 모든 고통의 근원은 아무런 대가 없이 공짜로 무엇을 얻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을 알았다. 지금의 나에게 생긴 문제들은 방금 생긴 문제가 아니라 아주 오랜 기간 동안 뿌리가 서서히 썩어 생긴 문제들이다. 때문에 해결을 하는데도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하루 이틀 노력하고 무언가가 해결되길 바라는 것은 주제넘은 욕심이다.


올해 1월. 나 자신을 바꿔보기로 다짐했다. 3개월 이상 노력해도 하나도 바뀌는 게 없으면 그때 생을 마감하자고 결심했다. 먼저 그동안 나의 인생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했던 술과 게임을 과감히 끊기로 했다. 그동안 피하기만 했던 친구들에게도 도움을 요청했다. 친구들은 피폐해진 내 모습을 보며 깜짝 놀라면서도 성심성의껏 다시 세상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리고 3개월 뒤. 더 이상 자살 생각은 나지 않았다. 내가 바뀌니 주변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업무능력이 항상 되고 많은 기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바뀌니 세상이 달라졌다! 고정형 사고방식에서 성장형 사고방식으로 전환이 되는 순간이었다.


자존심에 온갖 방어기제로 무장했던 나는 모든 것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내 특유의 재수 없음. 이기적임. 완벽주의. 오만. 그리고 이들을 흘려버리고 좀 더 타인을 위한 세상을 위한 가치관들을 내 정체성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다시 살아보기로 결심한 지 9개월이 지났다. 많은 것들이 변했다. 버스킹, 뮤지컬, 영상, 독서모임, 교내 하모니카 동아리, 독서토론 동아리, 기타 동아리 운영 등 생전 시도해보지 못했던 다양한 것들에 도전했고 그 과정에서 나는 이전과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다.


여전히 술도 안 마시고 게임도 하지 않는다.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나처럼 슬럼프에 빠졌거나 고정형 사고방식에 빠져 성장의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을 돕고 싶다. 베푸는 즐거움이 이렇게 행복한지 전에는 몰랐다.


사진은 불조심 어린이마당대회를 창원시에서 2등 한 사진이다. 상금 20만원! 개인이 잘해서 받은 상이 아니라 학급 전체가 잘해서 받은 상이기에 더 기쁘다�


작년 같으면 아이들이 어차피 안되니깐 아무것도 하지 말고 했을 텐데(나 또한) 요즘은 대회에 나가자 공모전에 나가자 뮤직비디오 찍자 등 난리다. 지난 1학기 동안 아이들의 사고방식을 고정형 사고방식에서 성장형 사고방식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했는데 이제 서서히 그 결실을 맺는 것 같아서 기분이 너무너무 좋다.


여전히 나는 부족하다. 글도 잘 못쓰고 아는 것도 별로 없고 여전히 좀 오만하기도 한 것 같다. 하지만 내일은 오늘보다 나 자신이 좀 더 성장해있을 것을, 충분히 바뀔 수 있음을 알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다.



저 당시의 슬럼프는 갑자기 생겨난 게 아니다. 28년이라는 세월 동안 두려움, 질투, 편견, 오만, 선민의식 등을 먹고 자란 에고(=거짓된 자아)가 더 이상 먹이가 주어지지 않자 죽지 않기 위해 발버둥을 치면서 일어난 일이다.


당시 나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 민감했다. 공부를 잘하는 이미지, 잘생기고 어린 이미지, 사교적인 이미지, 리더 이미지, 개구쟁이 이미지, 참 교사 이미지, 완벽한 이미지 등, 나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서 애를 많이 썼다. 사교성 있는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술자리란 술자리는 다 참석했고, 주변 사람들과 모두 친해지기 위해서 억지로 그들의 바람을 들어주기도 했다. 옷차림이나 피부 등 외모에도 엄청난 에너지를 쏟았다. 항상 누구보다 잘나야 했고 어디를 가면 시선집중을 받아야 했다. 난 그게 멋진 건 줄 알았고 그게 '진정한 나'라고 생각했다.


내가 믿어왔던 '진정한 나'의 이미지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2016년도 군대에 입대하고부터였다. 당시 여자친구와의 이별에 대한 충격, 스트레스로 인해 날이 갈수록 노화되어가는 내 외모, 모래성처럼 무너져버린 그동안 쌓은 친구관계, 빨간모자(=조교모자)를 쓰냐 안 쓰냐에 따라 달라지는 나의 이미지, 그동안 믿어 왔던 모든 믿음체계에 대한 흔들림...


멘탈이 나간 상태로 전역을 했지만, 그래도 내 나름대로 학교 복직에 대한 기대를 많이 했다. 군입대하기 전 선생님들이 나를 많이 귀여워해 주셨고, 아이들도 나를 아이돌처럼 좋아해 주었기 때문이다. 군입대 전의 즐거웠던 기억들을 곱씹으며, 그와 같은 상황을 기대하며 복직을 했으나, 내 기대는 첫날부터 산산조각 났다. 첫날 복직을 하자마자 들은 말이 '00아. 왜 이렇게 얼굴이 삭았냐?'였다. 당시 외모를 아주 중요시하던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항상 고등학생 같다는 얘기를 들어오던 내가 '선생님, 애기는 몇 살이에요? 선생님은 30 중반이시죠? 선생님 못생겼어요.'라는 얘기를 들으니 정말 미칠 것만 같았다. 매일 같이 난 과거의 나 자신과 비교를 했고, 인스타, 페북에 잘 나가는 친구들을(예전엔 나보다 못나다고 생각했던 친구들) 보며 부러워하고 질투했다. 내 변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고 마음의 상처를 또 받고 싶지 않아 더 이상 사람들을 만나지 않았다. 자연스레 직장 내에서도 왕따를 당하게 되었고, 거의 1년 동안을 집에 박혀 있었다. 


그렇다고 망연자실한 채로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억지로 회식에 참여하려고도 해보고, 요가도 해보고, 피부 숍도 등록하고, 중국어 학원도 등록해보고, 진짜 무슨 저주라도 걸린가 싶어 무당도 찾아가 봤다. 유명 명상 유튜버, 스님한테도 상담을 받아봤다. 여자 친구를 사귀면 좀 나아질까 싶어 여자 친구도 여러 번 사귀었다.


아무것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기존의 내 이미지를 되찾기 위해, 끊임없이 바깥에서 무언가를 찾는 행위는 내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수십 번, 수백 번의 자살 충동을 겪고 나서야 내 내부로 시선을 돌렸다.

 '나는 누구인가?', '기존에 잘나고 인기 많던 나는 진짜 나일까?', '그럼, 지금의 못나 보이는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이 모든 걸 인식하고 관찰하는 나는 누구인가?'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일련의 고통들을 겪은 뒤, 난 기존의 거짓된 자아의 일부분이 떨어져 나갔음을 느꼈다. 자유. 묘한 해방감이랄까. 기존에 '나'라고 생각하던 '나'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그냥 '나'다. 그냥 '나'라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평온함을 느끼게 되었다.


다음 글에서는 구체적으로 내가 어떤 방법으로 슬럼프에서 벗어났는지, 그리고 어떤 부분이 바뀌었는지 얘기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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