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호 훈련병

할 수 있다.

by 교실남
조교(나): 훈련병!
장호: 네!?
조교(나): 네에?! 훈련벼엉!!! 지금 뭐하자는 겁니까!(호통)
장호: ...(???)
조교(나): 관등성명 모르나! 엎드려!

이렇게 이장호 훈련병과의 첫 만남이 시작되었다. 내 살다 살다 이렇게 어리바리하고 약골인 훈련병은 처음 봤다.


훈련병들이 훈련소에 머무는 기간은 총 6주다. 1주는 신체검사, 나머지 5주는 훈련으로 구성된다. 훈련 첫날, 아침 뜀걸음을 시작하자마자 낙오한 훈련병이 있었다. 이장호(가명) 훈련병이었다. 이 훈련병은 당장 죽을 것처럼 바닥에 토를 하고 있었다. 뛰기 시작한 지 3분, 아직 500m도 뛰지 않은 상황이었다. 어이가 없었다.


이장호 훈련병의 활약(?)으로 첫날부터 우리 소대의 사기는 바닥이었다. 포기하는 분위기는 전염이 되어, 소대원 모두에게 영향을 미쳤다. 우리 소대가 망가지는 것을 가만히 지켜볼 수 없었다.


훈련 2주 차 주말에 이장호 훈련병을 따로 불렀다.

조교(나): 훈련병
장호: 네! 이! 장! 호! 훈련병!
조교(나): 많이 힘듭니까?
장호: 아닙니다.
조교(나): 많이 힘듭니까?
장호: 아닙니다!
조교(나): 많이 힘들지?
장호: 아닙니다...(눈물)

이장호 훈련병과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본인은 살아오면서 이렇게 오래 뛰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 나에게 쉬워 보였던 500m가 이장호 훈련병에게는 두려움 그 자체였던 것이다.


도와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뜀걸음이 무서운 게 아니라고,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고 했다.

조교(나): 훈련병. 그 정도 뛰었다고 절대 죽지 않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날 3중대 1소대원 전부를 소집했다.

조교(나): 훈련병
훈련병들: 네! 000 훈련병!
조교(나): 전우들 낙오할 때, 훈련병들은 뭐하고 있었습니까?
훈련병들: ...
조교(나): 우리는 하나입니다. 완주해도 같이 완주하고 낙오해도 같이 낙오하는 겁니다. 혼자 가는 게 아니라 같이 가는 겁니다. 알겠습니까?
훈련병들: 네!


그날부터 이장호 훈련병 전투 뜀걸음 완주시키기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다른 소대들이 먼저 생활관으로 들어갈 때, 우리는 플랭크, 스쿼트를 10분 더 하면서 체력을 길렀다. 아침 뜀걸음 때, 이장호 훈련병의 속도에 맞추기 위해 기수(기 드는 훈련병)가 속도를 늦춰주기도 했다. 난 나의 근무 시간이 아님에도, 저녁에 훈련병 생활관을 찾아가서 체력훈련을 시켰다. 이장호 훈련병은 따로 줄넘기도 하도록 했다.


이렇게 3주가 흘렀다.


그동안 우리 소대는 강해져 있었다. 1,2차 전투 뜀걸음은 단 한 명의 낙오도 없었고, 유격 훈련도 다리 환자를 제외하고는 낙오가 없었다. 이장호 훈련병이 토를 하는 모습은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근데 마지막 관문이 남아 있었다. 3차 전투 뜀걸음! 전투복 단독 군장(헬멧+탄띠)에 총기까지 지참해서 3km 이상을 뛰어야 했다. 군필자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총기가 생각보다 무겁다. 거기다가 앞에 총 자세(팔을 들어 총기를 직각으로 세운 자세)를 유지하고 뛰어야 했기 때문에 상체와 하체 온몸이 고통스러운 뜀걸음이다. 사실 걱정이 많이 됐다. '우리 소대가 전부 완주할 수 있을까? 이장호 훈련병이 해낼 수 있을까?'


3차 전투 뜀걸음 당일이 되었다.

조교(나): 훈련병
훈련병들: 네! 000 훈련병!
조교(나): 복명복창합니다. 나는 할 수 있다!
훈련병들: 나는 할 수 있다!
조교(나): 낙오는 없다!!!
훈련병들: 낙오는 없다!!!
조교(나): 3중대 1소대!!! 전체 뛰어
훈련병들: 어이!
조교(나): 뛰어!
훈련병들: 어이!
조교(나): 갓! (훈련병들 뛰기 시작한다.)


전투 뜀걸음은 대대에서 출발해서 훈련장을 크게 2바퀴 돌고 다시 대대로 돌아오는 코스로 짜여있었다. 첫 번째 바퀴는 무난했다. 문제는 두 번째 바퀴였다.


이장호 훈련병이 고통스러워 보였다. 내가 가서 도와주려는 찰나에 소대 훈련병들이 소리쳤다.

전우님 힘내십시오.
장호야 힘내라. 할 수 있다.
조금만 견디면 됩니다!


7월 중순의 그 날은 아주 더운 날이었다. 땡볕이 피부를 쪼이고 목은 타들어갔다. 조교인 나도 힘들었다. 구령 넣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서로가 서로를 응원하고 북돋아주었다.

조금만 버티자!
질 수 없다. 할 수 있다아아아!!!!


조교(나): 훈련병!
훈련병들: 네! 000 훈련병!
조교(나): 목소리가 작습니다! 훈련병!!!
훈련병들: 네! 000 훈련병!!!!
조교(나): 우리가 지금 여기까지 어떻게 노력해서 왔는지 생각해봅니다. 이대로 포기하면 평생 후회할 겁니다. 절대 포기하지 않습니다. 알겠습니까?
훈련병들: 네!
조교(나): 뜀걸음 간에 군가한다. 군가 제목 대대가!
훈련병들: 3대대~ 전우의~ 땀방울을 모아~ 저 높은 하늘 위로 날아갈 우리들!


이장호 훈련병은 본인과의 사투를 벌이고 있었기에 군가를 따라 부르지는 못했다. 하지만 동료들의 군가에 힘을 받는 듯했다. 왼손으로 총기를 들고, 오른손으로 본인의 가슴을 계속 치면서 울면서, 고함을 지르면서 뛰었다.


드. 디. 어 3차 전투 뜀걸음이 끝났다. 그 날 유독 낙오자가 많은 날이었다. 우리 소대에 낙오는 없었다. 이장호 훈련병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훈련병들은 서로를 격려하고 축하해주었다. 그때 나는 똑똑히 보았다. 고정형 사고방식에서 성장형 사고방식으로 집단의식이 전환되는 광경을! 어떤 훈련병은 진짜 포기하고 싶고 낙오하고 싶었는데, 이장호 훈련병이 뛰는 것을 보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3중대 1소대원이 이장호 훈련병에게 도움을 주었고, 이장호 훈련병이 3중대 1소대에게 힘을 주었다. 우리는 하나였다.



교사 생활을 하면서, 문제아로 낙인이 찍혀 있는 학생, 공부를 포기한 학생, 친구관계로 힘들어하는 학생 등 많은 학생들을 만난다. 그리고 그 학생들 속에서 이장호 훈련병을 발견한다.

너희들도 충분히 할 수 있어! 충분히 변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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