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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남 Aug 09. 2020

컴퓨터 던진 엄마, TV 박살 낸 아빠

첫 번째 사건은 2003년 여름에 일어났다.


당시 6학년이었던 난 얼마 전에 새로 산 컴퓨터로 거실에서 신나게 게임을 하고 있었다. 당시 하던 게임의 이름도 기억난다. '씰 온라인'. 화려한 3D 화면과 다양한 콤보기술들, 성장하는 느낌이 들게 하는 흥미진진한 퀘스트가 주특징인 게임이었다. 전에 사용하던 컴퓨터 사양으로는 잘 돌아가지 않던 게임이었기에, 새로 산 컴퓨터의 속도와 화질에 감탄하면서 게임을 하고 있었다. 


게임을 열심히 하는 도중 여동생이 고함을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엄마와 동생은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여동생이 무슨 잘못을 해서 엄마가 야단을 쳤는데, 당시 사춘기였던 여동생이 거세게 반항하고 있었다. 엄마와 여동생의 전쟁은 30분 이상 이어졌다. 이 와중에 나는 눈치 없게도 게임 삼매경에 빠져있었다. 게임 캐릭터들의 화려한 움직임에 감탄하며, 열심히 키보드와 마우스를 놀렸다. 가끔씩 내가 원하는 게임 아이템을 얻으면 '오예, 아싸'하는 감탄사도 냈던 것 같다.


그렇게 열심히 게임을 즐기고 있는 찰나, 갑자기 뒤에서 불호령이 떨어졌다.

"너는 지금 동생이 이렇게 혼나고 있는데, 너는 오빠가 되어서 지금 뭘 하고 있는거야! 지금 게임을 할 상황이야?"


엄마는 화를 내며, 나의 보물인 새 모니터를 들어서 바닥에 내동댕이 쳤다. 새로 산 모니터는 산산조각이 났다. 지금까지 열심히 지은 집이 갑작스런 재난으로 무너지는 것을 바라보는 비버처럼, 망연자실한 채 서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 뒤로 나는 2년 반 동안 집에서 컴퓨터 게임을 할 수 없었다. 나 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 전체가 컴퓨터를 쓸 수 없었다. 엄마가 모니터를 새로 구입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학교 숙제를 핑계로 모니터를 다시 구입해 줄 것을 강력히 요청했지만 소용 없었다. 컴퓨터가 필요한 학교 숙제가 있는 날이면, 위층에 가서 잠시 컴퓨터를 빌려 썼던 기억이 난다. 




두 번째 사건은 2005년 여름, 내가 중2가 되던 해에 일어났다. 난 집에서 컴퓨터 게임을 할 수 없었기에, 게임을 대체할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건 바로 TV! 그 당시 유행하던 예능이나 드라마는 다 챙겨 봤던 기억이 난다. 부모님이 몇 번이나 경고했지만, 동생과 나는 부모님의 경고를 무시한 채 TV시청을 하곤 했다.


중2 1학기 기말 시험기간이었다. 시험 범위가 상당히 많았기에, 1분, 1초가 소중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생과 나는 TV 드라마를 시청했다. 당시 우리가 보던 드라마의 제목은 '내 이름은 김삼순'이었다. 당시 떠오르던 신예 현빈과 김선아 주연의 드라마였다. 


둘이서 입을 '헤~' 벌리고 아이스크림과 과자를 먹으면서 즐겁게 TV를 시청하고 있을 때였다. 아빠가 오셨다. TV를 끄고 얼른 공부하라고 하셨다. '엄마, 아빠도 TV를 보면서 왜 우리한테 뭐라하냐'며 우리도 TV를 볼 권리가 있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한참 실랑이를 벌이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 했는지, 갑자기 아빠가 피아노 의자로 TV의 화면을 부쉈다. 동생과 내가 울면서 거칠게 항의했지만 소용 없었다. 그 뒤로 우리는 2년 동안 TV를 볼 수 없었다. 물론 부모님도 TV 시청을 할 수 없었다.

 


집에서 TV가 사라진 뒤, 컴퓨터 게임의 대체재로 TV 시청을 찾았던 것처럼, TV를 대체할 새로운 대체재를 찾기 시작했다. 첫 번째 대체재는 독서였다. 찾고 찾다보니 울며 겨자먹기로 독서를 하게 되었고, 어느 순간부터 독서가 너무 재미있어서 독서광이 되었다. 책이 너무 재미있어서 새벽까지 독서를 했던 기억도 난다. 두 번째 대체재는 농구였다. 집에서는 책읽기 말고는 재미있는 것들이 별로 없었기에, 밖에서 친구들과 운동을 하기로 결정했다. 매일 학교 마치고 2~3시간은 친구들과 농구를 했다. 주말에도 농구장에 나가서 하루종일 미친 듯이 운동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 농구는 나의 인생 스포츠가 되었고 지금까지도 동아리도 하고 농구대회도 나가는 등 농구를 즐기고 있다. 




당시 엄마가 모니터를 던지고, 아빠가 TV를 깨부쉈을 때 부모님을 참 원망을 많이 했던 것 같다.(심지어 우리는 공부에 집중해야 한다는 이유로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폰도 없었음) '친구들 부모님을 보면 게임, TV시청 마음대로 하게 해주는데, 왜 동생과 나는 못 하게 하냐, 왜 이렇게 제한하냐' 등 많은 불평들을 했었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 그리고 선생님의 입장에서 그때를 살펴보면, 다소 과격하긴 했지만 부모님의 판단은 '신의 한수'였던 것 같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부모님은 중독을 일으키는 신호(컴퓨터 모니터, TV)들을 차단함으로써, 중독현상이 일어나지 않도록 했다. 당시 동생과 나는 심각한 게임중독, TV중독이었다. 중독을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은 중독을 일으키는 신호를 아예 차단하는 것이다. 부모님의 충격요법(?) 덕분에 우리는 우리를 망치는 중독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둘째, 게임, TV중독에서 벗어나 나에게 도움을 주는 새로운 대체재를 찾을 수 있었다. 게임, TV 대신 선택했던 독서, 농구는 지금까지도 나에게 큰 자산으로 남아 있다. 특히 독서의 경우, 내 평생 독서량의 50%는 중학생 때 채웠다고 할 만큼 중학생 때 많은 독서를 했고, 현재 우리 반 아이들을 가르칠 때도 그때 얻은 배경지식들이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사실 이 모든 것들은 부모님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엄마, 아빠도 우리랑 똑같이 컴퓨터, TV를 사용하지 않으셨다. 특히 아빠는 그 좋아하던 온라인 바둑을, 엄마는 매일 보던 드라마 시청을 끊으셨다. 대신 자식들에게 독서하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직장생활하고 집안일한다고 분명 TV나 컴퓨터로 스트레스를 풀고 싶으셨을텐데, 자식들의 올바른 성장을 위해서 먼저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여주셨던 것 같다. 독서하고 공부하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우리도 컴퓨터, TV와 멀어질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은 부모님의 희생과 헌신 덕분이 아닌가 싶다. 



엄마, 아빠 그때 많이 힘드셨죠?
그때 엄마, 아빠의 희생 덕분에
지금의 제가 있습니다.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기분 좋게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ㅋㅋㅋㅋㅋㅋㅋㅋㅋ)



#TV중독 #컴퓨터게임중독 #부모님의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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