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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남 Aug 10. 2020

아빠 놀리기의 달인

중2 여름이었다. 오랜만에 아빠와 목욕탕을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횡단보도 맞은편에 동네친구 정섭(가명)이가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큰소리로 정섭이를 불렀다.


정섭아~~~! 정섭아~~~!! 정섭아~~~!!!


한참을 부른 끝에, 정섭이가 나를 바라봤다.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노 ㅋㅋ 어디 가는데?"

"나 농구하러~"


옆을 보니 벙찐 채 나를 바라보는 아빠의 시선이 느껴졌다.

"아빠, 왜요?"

"음... 아니다..."


아! 맞다! 생각해보니, 아빠의 이름도 정섭(가명)이었다. 내가 친구를 부를 때 아빠는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줄 착각하셨고, 가끔씩 뉴스에 나오는 아들이 아빠에게 막대하는 하극상이라도 일어나는 줄 알고 깜짝 놀라셨다고 한다. 


집에 가서 엄마에게 이 사건을 얘기해주니, 빵 터지셨다.

"정섭이가 잘못했네~ 정섭이가 잘못했어~~"


그때부터 나의 아빠 놀리기는 시작되었다.




정섭이는 동네 친구였기 때문에 자주 마주쳤다. 그날도 아빠와 집으로 돌아가던 도중에 횡단보도 맞은편에 있는 정섭이를 발견했다. 이번엔 아빠를 좀 의식하면서 일부러 더 큰 목소리로 정섭이를 불렀다.


정섭아~~~! 정섭아~~~!! 정섭아~~~!!!!!


"정섭이 이 시키 마! 이 형님이 부르는데 대답도 제대로 안 하고 말이야. 빨리빨리 대답하란 말이야!"

"야, 니 갑자기 왜 이라노 ㅋㅋㅋ"


정섭이와 대화를 가만히 옆에서 듣고 있던 아빠는 의심의 눈초리로 나를 바라봤다.

"니 일부러 그랬제?"


난 시치미를 떼며 말했다.

"아닌데요? 전 그냥 정섭이를 너무 오랜만에 봐서 반가워서 그랬는데요? 아, 오랜만에 정섭이랑 농구 한 판 해야 하는데... 정섭이 또 한 번 이겨줘야 하는데...(속으로 엄청 웃음ㅋㅋ)"




가끔씩 아빠가 나를 섭섭하게 하는 일이 있으면, 난 저녁 식사시간을 이용해서 소심하게 복수했다.


"엄마, 정섭이 그마 있잖아요. 오늘 너무 나를 짜증나게 해서, 한 대 쥐어박고 싶었어요. 진짜"


내 얘기를 듣고 아빠가 깜짝 놀라서 나를 쳐다봤다.

"아니, 걔 있잖아요. 동네친구 정섭이~ 농구하다가 너무 치사하게 플레이를 해서 짜증나더라고요. 아 정섭이 짜증나!!!"


친구 이름이라니 뭐라고 할 수도 없고, 그냥 가만히 듣고 있자니 기분은 나쁜 거 같은 아빠의 표정을 보면서 묘한 쾌감(?)을 느꼈다. ㅋㅋ



공교롭게도 정섭이와 나는 같은 교대에 입학을 했고, 지금까지도 2주에 한 번은 서로 연락을 할 만큼 친하다. 요새도 가끔씩 부모님 집에 놀러 가면 정섭이 얘기를 꺼내며 아빠를 놀린다. 이번엔 와이프도 있는데서 정섭이 얘기를 꺼내보았다.(와이프도 정섭이를 안다. ㅋㅋ) 아내는 움찔움찔 놀라는 아버님의 모습이 귀엽다(?)고 한다. 정섭이 덕분에 집안 분위기가 한층 더 화기애애해지는 느낌이다. 


마음만 먹으면 아빠를 놀릴 수 있는 기회를 준, 그리고 집안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어준 나의 절친 정섭이에게 감사하다.(물론 본인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ㅎㅎ) 다음에 밥이라도 한 끼 사줘야겠다.


그리고 나의 아빠 놀리기는 아마 평생 계속될 것 같다.

아빠 쏘리~ 너무 재미있는 걸 어떡해 ㅋㅋㅋ



#아빠놀리기 #화목한가정 #화기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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