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8시 12분. 지각이다! 8시까지 메이크업샵에 오라고 했는데... 아침부터 정신이 없다... 샵에 도착하니, 직원들을 포함해서 모든 사람들이 마스크를 끼고 있다. 바로 짐을 풀고 메이크업을 받았다. 11시 30분, 약 3시간 뒤면 결혼식이다! 하... 일주일 전만 했어도 이렇게 떨릴지 몰랐는데, 미치도록 떨린다.
메이크업을 받은 뒤에도 할 일이 많다. 신랑 턱시도 환복, 스태프들과 신랑, 신부 동선 체크, 셀프 축가 연습, 유튜브 라이브 방송 점검(촬영하는 친구 교육) 등등...
턱시도로 갈아입자마자, 식장으로 향했다. 식장 입구에는 직원들이 출입자에게 QR코드를 찍도록 하고 있었다. QR코드를 찍고 들어가니 아직 홀 내부는 방역 중이다. 홀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오늘 유튜브 라이브 방송 촬영을 도와주기로 한 친구가 도착했다. 혹시 몰라 한 번 더 라이브 방송 기능들이 잘 작동하는지 같이 점검을 했다. 실시간 채팅도 잘 되고, 중간에 동영상도 재생이 잘된다. 실제 현장과 4~5초 정도 시간차가 있긴 하지만 이 정도면 방송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심지어 화질도 full HD로 좋다! 어제 급하게 유튜브 라이브 실행 어플을 바꿨는데 잘한 거 같다!
몇 분 뒤, 내 5년 전 첫 제자 지안(가명)이가 바이올린을 들고 도착했다. 지안이는 오늘 내 결혼식의 두 번째 축가를 같이 도와주기로 했다. 그때쯤 방역이 완료되어, 식장 안으로 들어가 마이크 음향 조절을 했다. 생각보다 바이올린 소리가 크다. 두 번째 축가 말고도, 첫 번째, 세 번째 축가의 MR들도 체크를 해보았다. 모두 완벽하다!
식장 스태프들과 처음에 신랑, 신부 입장할 때 동선, 신랑이 신부에게 부케를 건네는 위치, 입장하자마자 노래 부르는 타이밍 등을 의논했다. 스태프와도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다.
10시 50분. 신랑, 신부 사진 촬영이 있다고 한다. 식장에는 나와 신부, 사진기사만이 있다. 촬영은 생각보다 길지 않았다. 촬영을 하면서도 결혼식이 40분밖에 안 남았다는 생각에 온 몸이 긴장된다. 머릿속에는 좀 있다 부를 축가의 가사들이 맴돌았다.
11시 10분. 신부는 신부대기실로 들어갔고 나는 홀 로비에서 하객들을 맞았다.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시행으로 인해, 하객들은 45명만 초대했다. 하객수는 적어도, 띄엄띄엄 앉다 보니 제법 식장이 꽉 차 보인다.
11시 18분. 프리즘 라이브 어플을 실행해,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켰다. 방송을 켜자마자, 온라인 하객들이 라이브 방송에 참여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올~ 친구야. 오늘 좀 멋있네."
"울 반 담임쌤이다!"
실시간으로 댓글들이 왕창 달린다. 신기하다. 이 참에 아예 유튜버 컨셉으로 가기로 했다.
"유하~~ 자~ 이제 식이 12분 정도밖에 남지 않았는데요. 먼저 사회자 분 소개부터 해드리겠습니다. (중략) 우리 신부대기실도 한 번 가볼까요? 신부님 결혼식 전 느낌은 어떠신지요? ㅎㅎ 신부 친구님들~ 신부 친구님들은 처음에 친구가 온라인 결혼식을 한다고 했을 때 어떤 기분이 드셨나요?"
사람들 반응이 좋다. 재미있다. 신나게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다 보니 식이 3분밖에 남지 않았다.
"여러분. 이제 식이 3분 남았습니다. 와... 진짜 긴장되네요. 제 앞에 어머님 두 분 보이시죠? 엄마와 장모님이 입장해서 화촉점화를 하면 그다음에는 제가 입장을 합니다! 저는 이만 친구에게 카메라를 넘기도록 하겠습니다."
신랑 입장!
와... 엄청 떨린다. 모든 오프라인, 온라인 하객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집중되어 있다. 머릿속에 곧 있을 오프닝 축가 가사를 계속 되뇐다.
신부 입장!
아름다운 나의 신부님의 입장!
아름다운 나의 신부님이 입장하신다. ㅎㅎ 신부 입장할 때, 중간에 내가 부케를 프로포즈하듯 무릎 끓고 바치기로(?) 했다. 하객들의 환호성이 들린다. 무대 앞으로 도착하자마자, 결혼식 오프닝 축가 반주가 나온다. 우리들이 부를 노래의 제목은 겨울왕국의 사랑은 열린 문!
다행히 가사 실수는 하지 않았다. 너무 긴장한 탓에 목이 타서 노래 부르는 중간에 목소리가 살짝 갈라지긴 했으나, 이 정도면 만족한다. 하객들의 반응도 좋다. 사회자의 진행을 들어보니, 온라인 하객들의 반응도 뜨겁다고 한다. 시작이 좋다. ㅎㅎ
이런저런 순서들이 끝나고 다음은 혼인서약 및 셀프주례!
우리는 좀 더 특별한 결혼식을 위해 주례를 없애고 우리들만의 이야기를 담은 식중 영상을 만들었다. 식중 영상을 통해, 혼인서약도 하고 셀프주례도 하기로 했다.
오프라인 모습(좌), 온라인 생중계 모습(우)
"미래의 000에게 묻겠다. 00군은 000양을 아내로 맞아, 어떠한 경우에도 항상 사랑하고 존중하며, 어른을 공경하며 진실한 남편으로서의 도리를 다하여 행복한 가정을 이룰 것을 맹세합니까?"
"맹세합니다!"
"미래의 000에게 묻겠다. 000양은 00군을 남편으로 맞아, 어떠한 경우에도 항상 사랑하고 존중하며, 어른을 공경하며 진실한 남편으로서의 도리를 다하여 행복한 가정을 이룰 것을 맹세합니까?"
"네!"
셀프주례를 마치고 바로 축가 순서!
이번에는 나와 5년 전 제자 지안이가 준비를 했다. 나는 노래를 부르고 지안이는 바이올린을 켰다.
"너를 만나~ 그 이후로~ 사소한 변화들에 행복했어."
축가를 부르는 나와 바이올린 연주를 하는 지안이(가명)
중간에 아내의 얼굴을 보고 울컥해서, 노래를 못 부를 뻔했다. 제자의 바이올린 연주가 너무 아름다우면서 감동적이었다.
그다음 순서는 아내와 나의 듀엣 무대!
노래 제목은 김동률, 이소은의 욕심쟁이!
"매일 아침에 젤 먼저 날 깨워주기, 내가 해 준 음식은 맛있게 다 먹어주기~"
아내와 결혼식 듀엣(Feat. 김동률, 이소은 욕심쟁이)
아내와 같이 마주 보고 차근차근 노래를 불렀다. 이제 긴장이 풀렸는지, 평소 연습했던 것보다 잘 된다. 화음도 잘 맞다. 만족스러운 셀프축가 무대였다!
이제 마지막 식순,
신랑, 신부 행진!
오프라인 모습(좌), 온라인 생중계 모습(우)
눈 앞에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고 있는 카메라가 보인다.
"온라인 하객분들 안녕~~~~~~ 감사합니다!"
지금 이 자리에는 없지만, 멀리서 온라인을 통해 우리를 축복하고 있는 분들의 마음이 느껴진다. 가슴이 벅차오른다.
신랑, 신부 행진이 끝나고 온라인 하객들과 소통하는 모습
신랑, 신부 행진이 끝나고 하객들과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다.
"신랑, 신부님 멋집니다."
"오늘 결혼식 너무 멋졌어요. 두 분 다 노래 너무 잘하시네요."
"와... 시간가는 줄 모르고 결혼식 시청했네요. 너무 재미있네요."
"행복하세요!"
우리의 결혼을 축복하는 댓글들이 실시간으로 달렸다.
"와, 온라인 하객 여러분들 오늘 저희 결혼식에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결혼식이 마무리되고 폰을 켜보니, 카톡이 왕창 와있다.
휴대폰, TV, 노트북 등 다양한 전자기기를 이용해 온라인 결혼식을 시청한 하객들
집에서 TV로 유튜브 라이브 결혼식을 시청했다는 친구도 있었고, 노트북을 통해 온라인 결혼식을 봤다는 친구도 있었다.
유튜브 영상을 캡쳐해서 보내준 하객들
보통 결혼식에 참여한 하객들은 신랑, 신부의 사진을 찍어서 보내준다. 우리의 결혼식은 특이하게도 온라인 하객들이 유튜브 라이브 동영상을 캡쳐한 사진을 보내주었다.우리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들이 느껴졌다. 같이 결혼식을 함께한 모두에게 고맙고 감사하다.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우리의 특별한 결혼식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홀가분하다. 그동안의 고생을 생각하니, 속이 후련하다. 무사히 결혼식을 마친 우리 스스로가 너무 대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