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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남 Jun 14. 2020

저는 기대하지 않습니다.

며칠 전, 와이프랑 크게 싸울 뻔한 적이 있다.


가끔씩 지나가는 말로 나는 와이프에게 이런 말을 자주 했었다.

나는 기대를 잘하지 않아. 난 다른 사람한테도 기대를 하지 않고, 너한테도 특별하게 기대를 하지 않아. 그냥 지금 있는 그대로도 좋아.


그날 저녁에 같이 산책을 하면서도 이런 류의 말을 했던 것 같다. 갑자기 와이프가 눈물을 흘렸다. 그동안 참아왔었는데, 이건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마치 기대를 하지 않는다는 말이, '나도 너에게 기대를 하지 않으니, 너도 나에게 기대를 하지 마라. 난 너에게 앞으로 잘해줄 마음이 없다.'처럼 들린다고 했다.


오해를 풀기 위해, 나의 스토리를 들려주었다.




7년 전, 5월 3일은 나의 23번째 생일이었다. 그날따라 생일 축하 메시지를 많이 받았던 걸로 기억한다. 거의 100명이 넘는 사람들의 축하를 받았다. 오늘 행복한 생일을 보낼 것이라는 온갖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더군다나 내 생일 2주 전에, 같은 과동기 친구의 생일을 내가 주도적으로 챙겨준 적이 있었다. 깜짝 생일파티를 하기 위해서, 몇 날 며칠을 과동기들과 준비했던 기억이 난다. 


'나도 해줬으니, 너도 해줘야지!' 하는 마음으로, 나도 그런 생일파티를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전화가 걸려왔다. 과동기였다. 저녁 7시에 치킨집에서 만나자고 했다.


짜식들, 역시 의리는 있어가지고~~ㅎㅎ


잔뜩 기대를 품고 약속 장소로 갔다. 2명의 과동기가 와있었다. 다들 다른 약속들이 있어서 못 왔다고 한다. 난 그 와중에도 이렇게 생각을 했다.

짜식들, 몰래카메라인 거 너무 티 내는 거 아니야?? 명색이 내가 학회장인데, 그런 것도 눈치 못 챌까봐??


그러나 1시간이 지나도, 2시간이 지나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케이크도 없었다. 심지어 내가 2주 전에 생일을 챙겨준 동기는 오지도 않았다. 내 앞에는 한참 전에 시킨 식은 후라이드 치킨 한 마리가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마지막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폰 게임을 하면서 기다렸다.


옆 테이블에 있던 다른 과 학회장이 나를 비웃으며 말했다.

형~~ 학회장이나 되가지고 생일 때 이게 뭡니까? ㅋㅋ 생일 때, 케이크도 없이 쿠키런이라니... 


너무 부끄러웠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나를 비웃고 있는 것만 같았다. 너무 화가 나서, 나와준 동기들한테 고맙다는 말도 안 하고 그냥 집으로 갔다.


일주일 뒤, 내 생일파티는 다른 동기와 함께 하게 되었다. 연달아서 생일파티를 하기가 너무 부담스러워서 한꺼번에 하는 걸로 미리 그렇게 얘기가 됐다고 한다. 미안하다고 했다. 그래도 내 화는 풀리지 않았다.




5년 뒤, 2018년 5월 3일, 내 28번째 생일이 되었다. 당시 나는 직장 내 왕따, 시들어가는 외모, 우울증 등으로 최악의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그날은 딱 1명의 친구와 가족을 빼고는 아무에게도 생일 축하를 받지 못했다. 학교에서 갑자기 오후 3시쯤에 급하게 전담실로 내려오라고 해서 내심 기대를 했지만, 그냥 일하라고 부른 거였다. 분명히 카톡에 내 생일이라고 뜰 텐데도, 난 그날 60명이 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단 한 번도 생일 축하한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슬펐다. 너무 힘들었다. 그날 자취방에서 이불속에서 펑펑 울었던 걸로 기억한다.


내가 그렇게 잘못 살았나? 내가 그동안 허상의 인간관계만 쫒은 건 아닌가? 난 살아갈 가치가 있는 존재일까? 


과거의 나 자신과도 비교를 많이 했다.

예전엔 하루에 생일 축하 메시지 100개도 넘게 받았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축하해주었었는데...


그렇게 몇 달을 과거의 나 자신과 비교를 하고 나 자신과 타인을 원망하면서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타인이 나에게 무언가 해주길 원하는 만큼 타인에게 베풀고 있었나? 1년에 내가 먼저 연락을 하거나 챙기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손에 꼽을 정도였다... 슬럼프 이전을 생각해봐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베풀지도 않고 그냥 받기만을 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나를 잊지 않고 아무런 대가 없이 나를 챙겨준 사람들이 떠올랐다.


생일 축하한다고 아침부터 전화를 준 규태, 매 번 내 생일을 챙겨주는 사랑하는 가족들, 내가 혹시나 자살할까 봐 수시로 연락을 한 지수, 주성이, 광표 등등...


과거 학회장 때, 이미 있는 것에 감사하지 않고 주변 친구들을 원망만 한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축하 메시지를 보내준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었다. 내 생일날에 나와준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었다. 뒤에 내 생일을 챙겨준 것도 모두 감사한 일이었다.


나는 이미 다 가졌는데, 계속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무언가 더 큰 것, 남들보다 더 좋아 보이는 것을 찾고 있었다. 기대를 한다는 행위 자체현재 상황에 불만족함을 의미했다.


그날부터 나는 기대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가진 것에 감사하기로 했다.


힘들 때 연락할 친구들이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가족들이 아프지 않고 건강한 것에 감사했다. 아이들이 내 수업에 열심히 참여하는 것에 감사했다. 내가 직장동료들을 도울 수 있음에 감사했다. 지금 이 순간 살아있음에 감사했다.


내 주변 모든 것들이 감사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자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게 되었다. 퇴근 후에 그동안 연락이 뜸했던, 아니면 요새 힘들어하는 친구들에게 연락을 하는 습관을 길들였다. 과거에 힘들었던 내 모습을 떠올리며, 누군가 도움을 요청하면 아무런 대가 없이 도왔다.


신기하게도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에 감사하며 남에게 먼저 베푸니, 나의 삶이 바뀌었다.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더 큰 풍요가 나에게 다가왔다.



내가 이야기를 모두 마치자, 아내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잠시 후, 내 손을 꽉 잡으며 말했다.

오해해서 미안해... 그동안 내가 기대를 하면서 우리에게 부족한 면만 찾으려고 했던 거 같아... 우린 이미 행복한 요소를 다 갖추고 있는데 말이지. 너랑 지금 손잡고 산책하는 것, 같이 치맥 하면서 영화 보는 것, 둘이 취미가 잘 맞다는 것, 대화가 잘 통한다는 것 등 감사할 요소가 너무 많네. 갑자기 행복하다는 느낌이 드네~~ㅋㅋ


무언가를 얻기 위해 미친 듯이 찾아 헤맬 필요 없다. 행복은 우리 안에 있다. 우린 이미 온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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