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에는 슬럼프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온다. 자살 충동, 직장 내 왕따, 우울증 등의 심각한 얘기들이 나온다. 아마 독자 여러분들이나 속사정을 잘 모르시는 분들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아니, 군대도 다녀오고, 직장도 안정적이고, 몸도 건강한 거 같은데 자살을 생각할 정도의 슬럼프라니... 좀 오버하는 거 아니야??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간접적으로는 그동안 쌓인 타인에 대한 의식, 강박, 삶에 대한 회의감 등이 있었지만, 직접적인 원인은 따로 있었다. 그 원인에 대해 얘기하면 혹시나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생각할까봐 그동안 굳이 글에 언급을 하지 않았다.
그냥 그때의 무서웠던 기억을 덮을 수도 있지만, 오늘 과감하게 과거의 기억을 펼쳐보려고 한다. 이 글을 읽고 누군가는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미 슬럼프를 겪은, 지금 슬럼프를 겪고 있는, 미래에 슬럼프를 겪을 '또 다른 나'들을 위해 이 글을 쓴다.
2017년 10월, 나는 무엇이든 두려울 것이 없는 말년 병장이었다. 거기에다 으뜸 병사(병사를 대표하는 직책) 버프까지 받아 내 '근자감'은 하늘을 찌를 듯했다.
당시 썸을 타던 여자사람 친구가 있었다. 이 친구를 만나러 5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성남에 갔다. 말년 병장의 자신감으로, 당장 사귈 기세로 성남으로 달려갔지만, 이상하게 케미가 맞지 않아서 잘 되지 않았다.
그 친구와 작별인사를 하고 시계를 보니 밤 11시였다. '어떻게 집에 가지?' 고민을 하며 낯선 거리를 돌아다니는데 갑자기 어떤 아주머니 한 명이 말을 걸어왔다.
허름한 옷차림에 마치 단체로 협찬을 받은 듯한 크로스백 차림, 영혼이 맑아 보인다는 전형적인 멘트! '도를 아십니까'였다.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겠지만, 그날따라 이상하게 궁금했다. 여러분들도 가끔씩 살아가다가, 어느 순간에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그런 충동을 갑자기 느끼는 때가 있지 않은가? 그날이 바로 그런 충동이 온 날이었다.
당시 군대에서 즐겨보던 드라마가 있었는데, OCN에 '구해줘'라는 드라마였다. '도를 아십니까' 아줌마를 본 순간, 마치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사이비 집단에 잠입을 해서, 이들을 비리를 적발하는 되지도 않는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근자감 넘치는 말년 병장 상태였으니 이해 주시기 바란다...하하)
한 번 따라가 보기로 했다.너무 궁금했다.이들은 어떻게 생활하는지, 이들의 직업은 무엇인지, 이들은 무엇을 믿는지, 이들은 정말 진심으로 이 종교를 믿고 있는 건지, 진짜 영적인 존재가 보여서 나에게 그런 소리를 하는 건지.
역시 예상대로 나에게 제사비를 요구했다. 지금 내가 과거에 한을 품은 조상님의 영혼 때문에 내 뜻을 마음껏 펼치지 못하는데, 천문을 뚫기만 하면 이 조상님들이 다 승천할 수 있다 했다. 그리고 만사형통이 된다고 했다. 제사비는 본인이 낼 수 있는 만큼 내라고 했다.
나: 아, 그럼 만원 내겠습니다.
도를 아십니까: 만원은 좀...
나: 아까 낼 수 있는 만큼만 내라고 하시지 않았나요? 저 한 달 월급 15만원 밖에 안 되는 불쌍한 군인이에요ㅠㅠ
도를 아십니까: (...) 그럼 3만원으로 하죠.
3만원을 내고, 그들의 본거지로 출발했다. 버스로 30분 거리였다. 혹시나 내 신변이 위협당할 가능성이 있었기에, 썸 타던 여자친구에게 주변 건물 사진을 보낸 뒤, 계속 연락이 없으면 경찰에 신고해달라고 했다.(지금 생각해도 그때는 정말 미쳤던 거 같다.)
막상 가보니 그들의 본거지는 내 생각과는 달랐다. 드라마에서 보던 사이비 종교 건물은 약간 어두침침하고 감옥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여기는 그냥 일반 가정집 느낌이었다. 밤 12시인데도 불구하고 내 또래의 20대 청년들이 교리 공부를 하고 있었다. 미친 듯이 제를 지내는 사람들도 보았다.
빈 방으로 들어갔다. 아주머니는 나에게 가족 관계, 한자 이름 등을 물어봤다. 나에게 지금 조상님들의 영혼이 많이 보인다고 했다. '억울하게 총에 맞아 죽은 조상님, 똑똑한 유생 출신의 조상님'등 여러 조상님들을 언급했다. 그러고 나서 최근 10년 사이에 돌아가신 내 친척들의 사망 시기와 병명을 알아맞혔다. 그리고 내가 고등학교 이후로 계속 두통이 생기고 귀가 아픈 것도 알아맞혔다. 신기하면서도 무서웠다.
천문을 뚫으면, 그동안 이유 없이 아프던 귀도 낫고, 앞으로 일들이 잘 풀릴 거라고 했다. 어떻게 하는지 그 과정이 너무나 궁금했기에 결국 천문을 뚫는 제를 지냈다. 무속인처럼 보이는 분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30분 동안 절을 했다. 드라마에서만 보던 광경이 내 눈 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제가 끝나고 음복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생긴 것이다. 6~7명의 사람들과 음복을 했다. 이들 중에는 중학교 교사도 있었다. 다들 나보고 여기에 들어온 것은 천운이라면서 신에게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거라고 말했다.
뭔 개소리지?
그때부터 그들과 나의 설전이 벌어졌다. 그들은 자신들의 종교를 믿어야만 영혼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자신들의 신을 믿지 않으면, 그 영혼은 계속 고통을 받을 거라고 했다.
나: 그럼 아무리 사회에 봉사를 많이 해서, 덕을 많이 쌓아도 이 종교를 믿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건가요?
사이비A: 네, 맞습니다. 안타깝지만 의미가 없습니다.
나: 아니, 무슨 그딴 신이 다 있습니까? 자신을 믿어야만 구원을 해주는 신이라니... 저는 그런 신이라면 믿지 않겠습니다. 구원 못 받아도 상관없습니다. 그 신을 믿을 시간에 당장 눈 앞에 힘든 사람들을 돕는 게 더 가치로운 일이 아닐까요?
사이비A:... (화제 전환) 지금 00씨한테 귀신이 달라 붙어있네요!
나: 네???
사이비B: 어른 하나랑 애 하나가 양쪽 어깨에 있네! (진짜 TV에서 나오는 귀신 들린 듯한 아기동자 목소리로 말함..)
이 사람의 말과 목소리를 듣고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거기 있는 사람들 모두가 귀신이 보인다고 했다. 무서웠다. 더 이상 여기에 남아 있어서는 안될거 같았다.
그냥 집에 간다고 했다. 구원 안 받아도 좋으니, 그냥 여기서 나가고 싶다고 했다. 갑자기 사이비 아주머니가 아마 앞으로 계속 힘들어질 거라며(아니 천문만 뚫으면 다 괜찮아진다며??), 도움을 주고 싶다며 연락처를 달라고 했다. 싫다고 말하니깐, 그러면 보내줄 수 없다고 했다.(옆에 신도로 보이는 남성 한 명이 계속 지켜보고 있었음.) 어쩔 수 없이 연락처를 주고(사이비 아주머니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서 난 그 번호를 저장함) 거기를 겨우 벗어났다. 시계를 보니 새벽 4시였다. 긴장감에 온몸이 땀범벅이 되어있었다. 호기심에 무작정 들어간 것이 후회가 되었다.
이상하게 그 이후부터 몸이 아팠다. 한동안 안 아팠던 귀와 머리가 아팠다. 피부도 안 좋아지고 얼굴도 핼쑥해지고 살도 5kg나 빠졌다. 보는 사람마다 얼굴이 많이 안 좋아보인다고 했다.
혹시 내가 그곳에서 저주를 받은 것은 아닐까?
운동을 하고 식단을 조절해도 소용이 없었다. 이상하게 몸이 계속 축 쳐졌다. 두려움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다. 무언가 나를 쫒아오는 느낌이 들었다.(예전에 자살 시도했던 훈련병이 나에게 말한 것처럼)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영적인 서적들을 찾아보았다. 인도의 구루들이 쓴 책들도 살펴보고, 유명 스님들이 쓴 책도 봤다. '시크릿'도 이때 빠지게 되었다. 하지만 책을 읽는다고 내 두려움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4개월 뒤, 나는 전역을 했다. 그때의 내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그 상태로 학교에 복직을 했다.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학교니깐 상태가 나아질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내 기대는 첫날부터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첫날 2년 만에 만난 선생님이 나에게 하는 말이 '너 왜 이렇게 삭아버렸냐?'였다. 안 그래도 지난 4개월 동안 변해가는 외모에 스트레스를 받았었는데, 학교에 가자마자 그런 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군대 가기 전 '선생님 잘생겼다고 멋지다.'라고 다가오던 아이들이 우리 선생님 나이 많고 못생겼다고 다가오지 않았다. 급식소에서는 아주머니에게 30대 후반의 자녀까지 있는 교사로 오해받기도 했다. 충격이었다!
고작 외모 가지고 스트레스를 받냐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갑자기 4개월 만에 자신의 얼굴이 10년은 더 나이 들어 보인다고 상상을 해보라.(그 전에는 고등학생 같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 더군다나 나는 이 상황이 모두 그때 사이비 단체에서 저주를 받아서 생긴 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다 사건이 터졌다!
한밤 중에 자취방에서 귀신을 보았다. 그것도 3명이나... 양복 차림을 한 3명의 남자 귀신이 빨간 눈으로 나를 쳐다보면서 비웃고 있었다. 귀신을 본 시간은 10초 정도였지만, 족히 1시간을 그들과 대면한 거 같았다. 내 몸 세포 하나하나가 공포로 물들었다.
예전에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귀신을 보면, 귀신과 친해져서 그쪽 세계는 어떤지 질문도 하고 하는 상상을 많이 했었는데, 친해지긴 개뿔... 진짜 너무 무서워서 미칠 것만 같았다.
잠을 잘 수 없었다. 몸이 벌벌 떨렸다.'내가 저주를 받지 않았을까?'라는 추측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사이비보다는 귀신이 더 무서웠기에, 예전에 받은 사이비 아줌마의 번호에 전화를 했다. 중년의 남성분이 전화를 받으셨다. 자기는 그런 단체에 가입해 있지도 않고, 이 폰 번호는 현재 3년째 쓰고 있다고 했다. 멘붕이 왔다.
분명 그 사이비 아줌마가 자기 폰으로 나에게 전화를 걸어서 그 번호를 내가 저장했는데?
통신사에 찾아가서, 한 번호를 두 사람이 쓸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이제 저주를 풀 수 있는 실마리도 사라졌다.
그때부터 나는 미친 듯이 저주를 풀기 위해서 인터넷을 뒤졌다. 유명 스님에게도 전화를 해보았다. '전화의 내 목소리만으로도 안 좋은 기운이 느껴진다'라고 했다. '왜 그런 곳에 가서 제까지 지내고 오냐고, 제정신이냐'라고 말했다. 내 안에 있는 안 좋은 기운을 빼내는데 적어도 3천만원의 제사비용이 든다고 했다.
각종 공중파에 출연한 유명 무당도 찾아가보았다. 안 좋은 기운을 가진 귀신이 나에게 붙어 있다고 했다. 떼어내는데 500만원을 달라고 했다.
그런데 아직 신규교사인 내가 그런 돈이 있을 턱이 있나? 그리고 뭔가 그들의 말을 신뢰할 수가 없었다. 이번엔 박수무당도 찾아가 보았다.
00씨에게 귀신이 보인 것은 진짜 귀신이 아니라 본인 자신의 영혼입니다. 00씨가 계속 외모나 남들의 인정에만 계속 신경을 쓰고 있으니 정신 좀 차리라고 영혼이 귀신의 모습을 띄고 나타난 것입니다. 00씨는 사실 지구인이 아닙니다. 00씨는 사실 다른 행성에서 지구를 체험하러 온 외계인입니다.
그래도 이 사람은 그나마 나았다. 제사비도 요구하지 않았고, 복채비도 주고 싶은 대로 달라고 했다.
그다음은 신의 형상을 봤다는 봉쇄 수도원 출신의 시크릿 믿는 수도사도 만났다.
00씨는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지 될 수 있습니다. 물고기도 될 수 있고, 바로 하늘도 날 수 있고, 외모도 젊어질 수 있습니다. 다만 세상은 이원적이지 않고 일원적인 것이라는 깨달음이 있은 뒤에 그런 일들을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 안에 신이 있습니다!
서울에 이 사람의 강의도 들으러 갔다. 나 같은 사람 50명이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강의를 듣고 회식자리에 따라갔다. 나보다 심각해 보이는 사람이 있었다. 딱 봐도 학교에서 왕따나 괴롭힘을 당한 친구인 것 같았다. 그 친구의 품에는 시크릿 관련 책 3권(무슨 매일 자신이 원하는 문장을 적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류의 책도 있었다.)이 있었다. 그 친구는 나와 눈도 제대로 못 마주쳤다. 그때 그 친구를 보며 문득 드는 생각이 '어휴, 저런 책 읽는다고 문제가 해결이 되겠어? 나 같으면 당장 상담소 가서 상담도 받고 사람도 많이 만나볼텐데...'였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는깜짝 놀랐다.
나는 여기서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아무리 상담을 받고, 책을 읽고, 외부에서 무언가 해답을 얻으려고 해도 나아질 것이 없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 날 당장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나 자신을, 지난 순간들을 되돌아보았다. 차근차근 논리적으로 따져가면서 사실과 의견을 구분했다.
-사실: 귀신을 봄, 사이비의 연락처가 감쪽 같이 다른 사람으로 바뀜, 현재는 직장동료들과 아이들이 나를 부담스러워함.
-의견: 내가 저주받았을 거라는 생각, 무조건 내가 안 좋아질 거라는 생각, 내 인생은 이제 망했다는 생각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100번 양보해서 귀신이 존재할 수도 있다. 불가사의한 상황들이 내 주변에서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굳이 내 인생의 시간을 그런 통제 불가능한 일들을 밝히는 데 사용할 필요가 있을까? 나는 퇴마사가 될 것도 아니고, 영적 지도자가 될 것도 아닌데, 굳이 통제 불가능한 일에 집착할 필요가 있을까?
그냥 지금 현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뭐, 또 귀신 나타나면 더 어때? 죽기보다 더하겠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때부터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은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통제할 수 있는 부분들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사소한 것부터 시작했다. 당장 눈 앞에 있는 이불을 개었다. 설거지를 했다. 밥을 다시 차려 먹었다. 잠을 일찍 잤고, 운동도 꾸준하게 했다. 좋은 책들도 많이 읽었다. (뉴에이지 관련 서적들은 다 버렸다.)
그 이후로 몇 달이 지났다.
작은 성취들이 쌓이고 또 쌓이니, 자존감이 조금씩 회복되었다. 현재에 집중을 하니, 부정적인 생각들도 많이 사라졌다. 귀신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누군가 쫓아온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이번엔 학교 생활도 바꿔보기로 결심했다.
그때가 작년 3월이었다. 첫날부터 우리 반 아이들에게 진심을 담아서 솔직하게 얘기했다.
얘들아! 너희들도 알다시피 선생님이 작년에 이 학교에 복직해서 매일 학교도 지각하고, 수업도 제대로 안 하고, 매일 화만 내고... 작년에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한테는 정말 미안하다. 하지만 올해는 달라지려고 해. 선생님이 너희들에게 약속할게. 앞으로 지각도 안 하고 수업 준비도 철저하게 할게. 너희들이 믿을 수 있는 그런 멋진 선생님이 되도록 노력할게!
그 이후로, 8시 40분까지 출근이었지만 매일 8시까지 학교에 출근했다. 수업 준비도 철저하게 했다. 두 달간, 내가 아이들에게 약속했던 내용들을 실천했고, 드디어 아이들과의 신뢰도 회복했다.
이번엔 새로운 도전도 해봐야겠다!
4월에 교육 뮤지컬 단체에 오디션을 봐서 합격했다. 거기서 연기, 춤, 노래를 배웠다. 1000명이 넘는 관객 앞에서 공연도 했다. 거기서 지금의 아내도 만났다.
아이들과 학생 영화도 찍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유튜브 채널도 만들었다. 방송부 아이들과 영상 공모전에 나가서 상도 탔다.
매일매일이 행복했다. 2018년에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지금도 나는 여전히 행복하다. 2018년에 있었던 일들이 마치 전생의 기억처럼 느껴진다. 귀신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이제 더 이상 나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부분들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는다.
많은 것들이 변했다. 주변 인간관계는 전보다 더 풍요로워졌고, 평생을 함께할 배우자도 만났다. 학교에 가면 나를 반겨주는 아이들이 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노화했던 외모가 다시 돌아왔다. 딱히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그냥 자연스럽게, 어느 순간부터 나도 모르게 외모가 회복이 되었다.
나를 옆에서 지켜보던 주변 사람들은 한 번씩 그때의 얘기를 한다.
00아. 난 그때 네가 진짜 자살하는 줄 알았다. 그때 네 얼굴을 보면 거의 반 송장이나 다름없었는데... 와... 진짜 마음의 힘이란 게 엄청나다는 걸 느낀다!
가끔씩 그때의 일들을 회상한다. 만약 내가 슬럼프를 겪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이 성장할 수 있었을까? 지금과 같이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마음이 아픈 친구들에게 공감해줄 수 있었을까? 브런치나 유튜브 같은 새로운 것들에 도전할 수 있었을까? 모든 일에는 부정과 긍정의 양면성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최악인 줄 알았지만, 생각을 바꾸고 행동을 하니, 축복이 되어 나에게 돌아왔다.
주변에 힘들어하는 학생이나 어른을 보면, 그때의 내가 떠오른다. 마음이 아프다. 그냥 도와주고 싶다. 하루 종일 골방에 틀어박혀서 벌벌 떨고 있었던 과거의 나를 회상하며 나는 기꺼이 그들을 도운다. 그들을 도우면서 나는 엄청난 행복감을 얻는다. 그리고 그들이 슬럼프를 극복하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봤을 때 내 행복감은 두 배가 된다.
글을 쓰다보니 글이 너무 길어졌다. ㅎㅎ 이 글이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길 바라며 이만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