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게임을 접한 건 7살 때부터다. 그때는 운영체제가 '도스'였다. 동네 친구가 복잡한 명령어를 직접 입력해서 게임을 실행하여 즐기는 모습은 어린 나에게 거의 '혁명'처럼 보였다. 당시 내가 하던 게임은 '고인돌'이었다. 우리 집에는 컴퓨터가 없었기 때문에, 컴퓨터가 있는 친구 집으로 매일 놀러 갔던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우리 집에 컴퓨터가 처음 생겼다. 그때 내가 빠져 있던 게임은 '포켓몬스터'였다. 친구가 생일선물로 플로피 디스크에 포켓몬스터 게임을 담아줬다. 학교와 학원을 갔다 오면, 매일 1~2시간은 게임을 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고부터는 좀 더 다양한 게임을 시도해 보았다. 프린세스메이커, 드래곤볼, 삼국지 시리즈 같은 혼자 하는 CD게임에서부터 씰 온라인, 아이파이터, 조이시티, 스타크래프트 같은 온라인 게임까지 다양하게 섭렵했다. 6학년 때 게임을 너무 많이 하자, 엄마가 화가 나서 컴퓨터 모니터를 부쉈다. 하지만 나는 굴하지 않고, 친구들과 PC방을 전전했다. 결국 엄마는 다시 모니터를 구입해주셨다.
중학생이 되어서도 나의 게임 사랑은 여전했다. 당시 내가 제일 좋아하던 게임은 '거상'이었다. 우리가 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낮에 게임머니가 잘 벌린다는 것을 알고, 학교 점심시간에 친구와 몰래 학교에서 집으로 탈출했던 적도 있다.(당시 집과 학교 거리가 2분 거리였음.)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난 게임을 절대 안 할 줄 알았다. 부모님께 중학교 때까지만 하겠다고 약속도 했다. 하지만 결국 게임의 유혹에 굴복하고 말았다. 당시 기숙사 생활을 했던 나는 야간 자습이 끝나면 항상 친구들과 노트북으로 스타 2~3판을 했다. 심지어 수능 1주일 전에도 스타를 했다...
대학교 1학년 때는 거의 게임을 하지 않았다. 동기모임 하랴, 연애하랴, 선배들과 대면식하랴 엄청 바쁘기도 했고, 무엇보다 과동기 중에서는 게임을 좋아하는 친구가 거의 없었다.
대학교 2학년 때, 술을 마시고 과동기들과 PC방을 가게 되었고 과동기 중 한 명이 요새 유행하는 재미있는 게임을 소개해주었다. '롤'(리그오브레전드)였다. '되게 유치한 이름이네. 재미없을 것 같다.'라고 생각하고 게임을 시작하는 순간 그냥 푹 빠져버렸다. 이 게임은 한 판을 하면 40~50분을 순삭 시켜 버리는 마성의 게임이었다. 덕분에 남자 과동기들 전체가 롤에 빠져버렸다.(아직도 하고 있는 동기들도 있다...) 롤 때문에 당시 여자친구와 많이 싸웠던 기억이 난다. 내 동기는 롤 때문에 여자친구와 헤어지기도 했다. 하루 종일 게임만 하다 학고를 받은 후배도 있다.
임용에 합격해, 선생님이 되어서도 하루에 1시간 반 이상은 롤을 했다. 일에 지친 몸을 이끌고 컴퓨터 책상 앞에서 맥주 한 캔을 마시면서 게임을 하면, 그날의 스트레스가 확 풀렸다.
군대에 가면 정말 게임을 안 할 줄 알았다. 어차피 군대에서는 게임을 할 수 없을 테니, 군대에서 게임을 끊어보자 다짐했다.는 개뿔... ㅋㅋㅋㅋㅋ 군대에는 싸이버정보지식방(일명 싸지방)이 있었다. 군대 선임 중에 한 명이 내가 스타를 좀 한다는 것을 알고, 매일 일과가 끝나면 싸지방으로 나를 불렀다. 사회에 있을 때보다 군대에서 게임을 더 많이 했다. 휴가나 외출을 나가면, 군대 동기들과 롤을 했다.
2018년, 전역을 하고 학교에 복직을 하고 나서도 나의 게임사랑은 계속되었고, 슬럼프 시기와 맞물려 '현실도피용'으로 게임을 하게 되었다. 이 시기는 내 인생에서 게임을 가장 많이 했던 시기다. 하루에 기본적으로 6시간 이상은 게임을 했던 것 같다. 주말에는 15시간 이상을 쉬지 않고 게임을 한 적도 있다.
삶이 피폐해졌다. 항상 눈은 충혈되어 있었고, 일상생활 중에서도 게임의 잔상이 남아 머릿속을 돌아다녀 현재의 일에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정상적인 대인관계가 힘들었다. 과동기의 결혼식에도 게임을 한다고 가지 않았다. 심지어, 명절 때 집에도 가지 않았다. 진짜 게임에 미친놈이었다. 그렇게 1년을 낭비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내가 이러한 생활을 10년 이상 지속한다면 내 인생은 어떻게 될까?'
끔찍했다! 상상도 하기 싫었다.
지금 내가 게임을 미친 듯이 하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게임이 정말 재미있어서? 게임을 하면 성취감을 느낄 수 있어서?' 아니었다. 나의 경우, 게임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현실도피'였다.
두렵지만 현재와 미래의 나 자신을 위해, '지금의 나'를 직면하기로 했다. 내 생활을 변화시켜보기로 했다. 우선 게임을 완전히 끊기로 했다. 그때가 2019년 1월이었다.
그 이후, 2019년 1월부터 현재 2020년 7월 6일까지 약 1년 반 동안 난 단 한 번도 게임을 하지 않았다.
몇 번의 위기는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PC방에 가자고 했을 때, 갑자기 친구가 연락이 와서 롤을 하자고 했을 때,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받아서 게임 생각이 났을 때 등 여러 번 게임을 하고 싶은 충동이 올라왔다. 그때마다 게임중독으로 피폐해졌던 내 모습과 앞으로 10년 뒤의 모습을 상상하며, 게임의 유혹을 뿌리쳤다.
게임을 끊으니, 하루 6~7시간 정도의 여유가 생겼다. 그 시간들은 온전히 나를 위해서 쓰기로 했다. 매일 운동, 독서, 명상, 수업 준비를 했다. 매일 운동을 하니 삶의 활기가 생겼다. 충혈되고 흐릿한 모습의 나는 더 이상 없었다. 매일 독서를 하니, 내 삶을 바꾸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독서한 내용들을 내 삶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매일 명상을 하니 혼란했던 마음이 평온해졌다. 수업 준비를 충실히 하니, 학생들에게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 덕분에 나는 빠른 속도로 나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었고, 내 주변 환경들도 점점 나아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시간이 남았다. 그동안 어지간히 게임에 시간을 많이도 허비했다. 남는 시간을 활용하여, 뮤지컬이라는 새로운 장르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뮤지컬을 전문적으로 하는 교육 단체에 오디션을 봤고 합격했다. 1000명이 넘는 관객들 앞에서 뮤지컬 공연도 했다. 거기서 지금의 아내도 만났다. 하루 6~7시간 게임을 할 때는 정말로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아직도 놀랍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했어도 방구석 게임중독자였던 내가 이렇게까지 바뀌다니... 단지 게임을 끊고 그 시간을 나를 위한 시간으로 채웠을 뿐인데, 이렇게 삶이 바뀔 수 있다니!
혹시 예전의 나처럼 게임 중독으로 힘들어하는 분이 있다면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다.
충분히 바뀔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 그 상태에서 벗어나세요! 그럼 신세계가 열릴 겁니다!
다음 편에서는 내가 어떻게 게임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구체적인 방법들을 소개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