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 첫 발령을 받고 나에게 가장 스트레스를 준 것은 다름 아닌 발성이었다. 목소리는 작은 편이 아니었으나, 수업 몇 번에 목이 가버렸다. 심지어 학부모 공개 수업을 할 때에도, 상담을 할 때에도, 반 아이와 학예회에서 노래를 부를 때에도 내 목은 쉬어 있었다.
아무리 수업을 열심히 준비해도, 항상 목이 쉬어 소리가 작아 내용전달이 안되니 수업의 재미는 반감되었다. 목이 너무 아파서 항상 목에 좋다는 약(도라지, 꿀)들을 달고 살았다.
발성을 고치기 위해, 동네 보컬 학원에 다녔으나 소용이 없었다.
"음... 교실남씨는 그렇게 목에 힘을 안 주는 거 같은데, 왜 목이 빨리 쉴까요? 흠... 선천적으로 목이 약한 거 아닐까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터무니없는 헛소리...ㅎㅎ)
인터넷에 떠도는 유명 보컬 강좌를 찾아봐도 딱히 해답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발성으로 인해 잔뜩 스트레스를 받은 상태로 난 군대에 입영하게 되었고,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해결책을 발견했다.
"하나, 두울, 하나 두울, 행진 간에 군가한다. 군가 제목, 전우! (근엄, 위엄)"
"훈련병들 지금 뭐 하는 겁니까? (박력, 샤우팅)"
담당 조교의 지치지 않는 구령과 폭발적인 샤우팅 소리를 들으며, '바로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약 조교가 된다면, 분명 선임들이 저런 발성들을 가르쳐 줄테고, 앞으로 발성 때문에 스트레스받는 일은 없겠지? 헤헤헤헿'
나는 즉시 조교 지원을 했고, 운이 좋게도 합격을 할 수 있었다.
와! 드디어 발성을 배우게 되는 건가! 아싸!
는 개뿔.......
아무도 발성을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럼 조교들의 그 쩌렁쩌렁한 발성은 다 어떻게 나온 걸까? 거의 대부분은 원래 발성이 좋은 케이스였다. 선임들에게 어떻게 하면 발성을 잘할 수 있냐고 물어보았으나, 자기들도 잘 모르겠단다. 대부분 자기네들은 처음부터 잘했거나, 그냥 하다 보니깐 잘 됐다고 한다...(아우 재수 없어... ㅎㅎ)
그때부터 발성을 위한 피나는 나의 노력이 시작되었다. '그래, 꾸준히 열심히 노력하면 언젠가는 발성 실력이 늘겠지!'라는 생각으로, 매일 일과가 끝나고 나서도 생활관 앞에서 발성 연습을 1시간씩 했다. 심지어는 근무가 없는 주말에도, 굳이 대대에 출근을 해서 발성연습을 했다. 마치 조선시대에 판소리꾼이 동굴 속에서 피나는 연습을 한 결과 명창이 되었듯이, 나도 목에 피가 나도록 연습을 하면 발성이 좋아질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효과가 있었을까? NO....
피나는 연습에도 불구하고, 전혀 효과가 없었다... 동기들과 선임들이 어떻게 그렇게 열심히 하는 데도 발성이 안 되냐고 막 놀렸다.
구보를 하면서 열심히 구령을 넣고 있는데, '조교님 소리가 안 들립니다.'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의 자괴감이란... 훈련병들이 말을 안 들어 샤우팅을 질렀는데 아무도 나를 돌아보지 않았을 때 느낀 수치심이란... 아침에 뜀걸음 할 때 조교들끼리 구령을 넣는데, 내 발성이 부끄러워서 혼자 구령을 넣지 못할 때의 슬픔이란... 더군다나 짬은 점점 차가는데(=계급은 점점 오르는데) 발성 실력은 그대로니 후임들을 볼 면목이 없었다.
'예전에 동네 학원의 보컬 선생님이 말하던 대로 내 목이 선천적으로 약한 건 아닐까? 정말 나는 발성에 재능이 없는 걸까?'
그냥 이대로 포기할까 생각해보았다. 조교를 포기하고 강당관리병이나 행정병으로 전환할까 고민해 보았다. 하지만 그것 만은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깟 발성 때문에 조교를 포기한다니,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었다.
'아우, 발성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
정말 마음먹고 죽기 살기로 발성을 파기로 했다. 하지만 이전과 똑같은 방식으로는 절대 개선이 불가능할 것 같았다. 예전처럼 아무런 자기 피드백 없이, 냅따 소리 지르는 방식으로는 실력을 늘릴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냥 목만 아플 뿐이었다.
새로운 방법을 찾기 위해, 발성이 좋은 조교들이나 소대장님들을 유심히 관찰했다. 조교들의 발성은 크게 두 가지 종류로 나뉘었다. 첫 번째는 크고 우렁찬 목소리. 두 번째는 날카롭고 쨍한 목소리. 나는 전자의 발성 방법이 마음에 들었고, 이 발성을 파기로 결정했다. 선임이던 후임이던 상관없이 창피함을 무릅쓰고 해당 발성을 가진 조교들에게 열심히 질문도 하고 관찰도 한 결과, 한 가지 사실을 알아냈다.
하나 같이 이 발성을 쓰는 조교들은 구령을 외칠 때, '하나, 둘'이 아닌, '하나, 두울'이라고 외친다는 것!
'울' 발음에 해답이 있을 것 같았다! '울' 발음을 해보니, 내 목젖이 내려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뭔가 좀 더 울림이 커진 느낌이랄까? '그럼 이 느낌을 가지고 다른 발성도 해본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고, 그대로 실행해보니 확실히 울림이 전보다 좋아졌다.
'두울' 발음에서 힌트를 얻고, 난 죽어라 '두울' 발음만 팠다. 선임들과 심지어 후임들까지도 시끄럽다고 그만 하라고 할 때까지... 계속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대대~~~~ 차렷! 신병 제3훈련대대 아침점호인원보고"
어느덧 나는 병장이 되었고, 대대를 대표하는 으뜸병사(일종의 조교들의 반장 느낌?)가 되었다. 으뜸병사는 1000명에 가까운 훈련병들 앞에서 마이크 없이 쌩목소리로 점호인원보고를 해야 한다. 이때 칼 같은 제식과 쩌렁쩌렁한 발성이 핵심이다.
소대장님: "와... 고생했어. 우리 0조교. 오늘 발성 정말 좋았어!"
후임: "와... 0병장님, 오늘 아침에 발성 장난 아니시던데요... ㅎㅎ"
어느 순간부터 나는 발성이 꽤 좋은 조교가 되어 있었다. 심지어 발성을 아예 못 하는 상태에서 발성 공부를 하며 차근차근 실력을 쌓아 올렸기에, 다른 후임들의 발성을 가르쳐 줄 수 있을 정도의 능력까지 갖추게 되었다.
위 이야기는 단순히 내가 발성이 안 좋았는데 연습해서 발성이 좋아진, 인간승리 사례가 아니다. 나는 저 때의 경험을 통해 몇 가지 큰 교훈을 얻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면, 방법을 바꾸어라!
내가 아무리 노력을 했는데도(분야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적어도 몇 개월 이상) 바뀌지 않는다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방식을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군대에서 난 발성 연습을 6개월이 넘게 피나게 노력했지만, 방법이 잘못된 탓에 실력이 하나도 늘지 않았다. 성대의 노화만 촉진시켰다.
예를 들어,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하는데도 성적이 안 나온다면, 내 공부방법을 바꿔보자. 내가 농구를 아무리 하는데도, 슛이 잘 안 들어간다면 슛폼을 수정해보자. 분명 열심히 생활하는 것 같은데,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내 생활 패턴과 시간 관리 방법을 점검해보자. 다만 이때 유의할 점은 방법을 막 바꾸는 것이 아니라, 양질의 독서와 정보탐색 등을 통해 나름 근거가 있는 방법들로 바꾸어야 한다.
혼자서 힘들면, 고수의 힘을 빌려라!
내 나름대로 방법을 바꾸어 보았는데도, 변화에 한계가 느껴진다면 고수에게 도움을 요청하자! 나의 경우, 군대 전역 후에도 발성에 대한 열정으로 유명 보컬 트레이너에게 지도를 받았다. 확실히 전문가는 다르다. 고수들에게 배우면 비용은 많이 들지만, 그만큼 정확하고 빠르게 배울 수 있기 때문에 나의 시간을 훨씬 단축시킬 수 있다. (보컬레슨을 통해, 내가 군대에서 썼던 발성 방식은 후두를 내리고 연구개를 들어 최대한 공간을 확보한 뒤 낸 발성이라는 것과 주로 소대장님들이 쓰는 날카로운 발성은 트왱(상후두관을 좁혀서 내는 소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동안 내 성대가 약해서 몸이 빨리 쉰 게 아니라, 평소 말할 때 호흡압(=호흡의 압력, 호흡압이 세면 목이 빨리 쉰다.)이 너무 강해서 목이 빨리 쉴 수밖에 없었다는 것도 발성공부를 통해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아무리 공부방법 관련된 책을 읽어도 공부에 대한 감이 오지 않는다면, 공부 고수님들을 찾아 조언을 구하자. 나 혼자 노래실력을 늘리는데 한계가 온다면, 좋은 보컬 트레이너를 알아보자. 내가 마음이 불안정한데 혼자 힘으로 극복하기 힘들다면, 전문 상담사에게 도움을 요청해 보자.
위의 방법으로 나는 발성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빠르게 내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었다.
혹시 예전의 나처럼 아무리 노력해도 잘 안 되는 독자분들은 딱 이 두 가지만 기억하고 실천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