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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남 Oct 09. 2020

철천지 원수와 화해하다.

갓 20살, 성인이 되었을 때였다. 친구들과 저녁에 만나 술 한잔을 하고, 밤새 PC방, 노래방에서 놀다가, 집 방향이 같은 규태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10년 지기, 불알친구인 규태가 내게 진지하게 말했다.

"00아, 혹시 내가 너한테 진지하게 충고 하나 해줘도 될까?"


"뜬금없이 무슨 충고냐? ㅋㅋㅋ 그래 해 봐~"


"너는 평소에 너무 자기합리화가 심한 거 같아. 아까 네가 약속 시간에 늦었을 때에도, 그냥 미안하다고 사과하면 되는데 계속 변명하고, 마치 너는 아무 잘못도 없다는 것처럼... 그리고 아까 게임할 때, 너로 인해 졌을 때도 그냥 실수를 인정하면 되는데, 말도 안 되는 이유 대면서 또 합리화하고... 넌 항상 너만 옳다고 하는 경향이 있어."


"아니, 아까 지각한 거는 어쩔 수 없다고 했잖아. 그리고 방금 아까 한 게임은 왜 나 때문에 진 건데? 그건 아니지."


"또 나왔다. 네가 자주 쓰는 말. '그건 아니지.' 맨날 너는 '그건 아니지.'라고 하면서 네 잘못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지. 지금처럼 말이야. 네가 평소에 자기 합리화만 하지 않는다면 진짜 좋은 친구가 될 거..."


"X발!!!"

친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욕을 하며 우산을 던졌다. 너무 화가 나서 우산을 바닥에 내동댕이 친 채로, 비를 맞으며 분노로 부들부들 떨며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자기 합리화를 한다고? 계속 변명한다고? 무슨!?! 지나 잘하지! 지 주제에 무슨 충고냐?"


집에 돌아와서도 한동안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계속 씩씩거렸던 기억이 난다.

 



이번에는 고등학교 시절의 얘기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중학교 때, 다 한가닥한다는 학생들이 모인 특목고였다. 고2 전체 모의고사를 쳤을 때였다. 모의고사 점수가 나왔다. 전교 순위권에 들만큼 모의고사 점수가 잘 나와 기뻐하는 찰나에, 뒤에서 어떤 대화가 들렸다. 항상 성적이 전교 10등 안에 들던 친구들의 대화였다. 


"아, 이번에 모의고사 왜 이렇게 쉽게 낸 거야?"


그 무리 중 한 명이 나를 흘겨보며 얘기했다.

"그러게. 그러니깐 이번에 쓰레기들이 올라왔잖아? 아, 왜 이렇게 변별력 없게 시험 문제를 내 가지고..."


쓰레기... 쓰레기... 쓰레기... 나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순간 너무 자존심이 상하고 화가 났다. 주먹을 날리고 싶었지만 나는 그런 용기가 없었다. '쓰레기'라는 단어가 내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


대신 그 사건이 있은 뒤로, 나는 그 친구들을 뒤에서 험담하기 시작했다. '성적 좀 잘 나온다고 제 잘난 맛에 사는 선민의식에 찌든 놈들이다.'라며 틈만 나면 그들을 험담했다. 


하지만 험담을 한다고 해서,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무리 갈등을 조장한 탓에, 다른 친구들과도 관계가 안 좋아졌고, 성적도 더 떨어졌다. 결국 수능을 망쳤고, 원하는 대학에도 가지 못했다.


더 큰 문제는 그들이 말했던 '쓰레기'라는 단어가 성인이 되어서도 나를 계속 따라다녔다는 것이었다. SKY 대학에 간 그들과 입시에 실패한 나를 비교했다. SNS에 그들이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이 올라오면, 질투하고 분노했다. 항상 나는 그들과 나를 비교하며, 나 스스로를 낮췄다. 이렇게 비교하는 습관은 20대 중후반까지 이어졌고, 나 스스로를 망치게 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뉴욕 타임즈 베스트셀러인 <베스트 셀프>의 저자 마이크 베이어에 따르면 모든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자아와 반자아가 있다고 한다. 최고의 자아는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다. 반면 반자아는 자신에 대해 마음에 들지 않거나 거북하게 만드는 것들의 집합체이다.


위 두 사례에서 나를 지배했던 것은 최고의 자아가 아닌 반자아였다. 저 때의 나는 반자아 그 자체였다. 첫 번째 사례에서 친구는 나를 위해 용기를 내어 조언을 해주었지만, 나는 도리어 친구에게 화를 내었다. 분명 나 스스로도 잘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상하게 화가 계속 올라왔다. 아마 내 반자아는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었을 것이다.


두 번째 '쓰레기' 사건으로 인해, 나는 비교와 열등감으로 10년 동안 고통을 받았다. 사실 '쓰레기'라는 단어를 듣고 그냥 흘려 넘겼을 수도 있다. '아, 저놈들은 좀 인성이 덜 된 놈들이군.'하고 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수 있었다. 분노와 비난으로 내 에너지를 사용하는 대신에, 성적을 올리는데 현명하게 내 에너지를 쓸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과도하다고 생각이 들만큼 그들을 미워했다.


사람의 마음은 의식과 무의식으로 이루어지며 서로 영향을 끼친다. 이 중 '그림자'는 반자아와 마찬가지로 무의식의 열등한 인격이며 자아의 어두운 면이다. 의식은 그림자를 억압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때 의식은 무의식의 그림자를 자신과 비슷한 부류의 사람에게 투사해서 다른 사람을 욕하거나 비방한다.
-칼 융의 그림자 이론-

   

중학교 3년 내내 1등을 하면서 내 무의식 속에는 '나는 다른 사람보다 나은 존재다.'라는 선민의식이 있었던 것 같다.(실제로 그런 것 같다는 친구들의 조언도 꽤 들었음...) 아이러니하게도 고등학생이 되어, 나와 똑같은 부류의 심지어 학업면에서 나보다 더 뛰어난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고, 나는 나와 비슷한 모습의 그들을 싫어하게 된 것이다. 마치 융의 그림자 이론처럼, 나는 나를 '쓰레기'라고 부르는 그 친구들의 모습에서 나의 그림자(=반자아)를 보았던 것이다.




부정적인 특성은 실제로 자신의 일부가 아니다. 그것은 순식간에 지나가는 덧없는 감정에 불과하다. 근본적으로 우리는 선한 존재다.  (p.45)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자신의 부정적인 면을 부인한다면, 그 부정적인 면에 우리를 지배하는 힘을 부여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분명히 말하지만, 어둠에 감추어진 것은 더욱 무섭게 보인다. 빛을 환히 비추자. (p.74-75)


작년 10월, 나는 <베스트셀프>의 저자 코치 마이크의 조언을 따라 위와 같이 더이상 반자아의 노예로 살지 않기로 했다. 나의 부정적인 면(반자아)을 부인하지 않고, 인정하기로 했다. 어두워서 잘 안 보였던 부분들에까지 의식의 빛을 환히 비추어, 과감하게 드러내기로 했다.


당시 내가 분석한 내 반자아의 특성은 다음과 같았다.

-자기합리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자신의 말은 무조건 옳아야 한다.

-현실도피: 부정적인 현실에 맞서 싸우거나, 개선하려고 하기보다, 피하려고 한다. 주로 술, 게임, 야동, 휴대폰 등에 빠진다.

-집착: 자신의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어떤 성과나 수치에 계속 집착을 한다.

-분노: 나의 부정적인 모습을 다른 사람의 모습에서 봤을 때, 특히 화를 더 많이 낸다.

-잘 삐짐: 부정적인 생각에 한 번 갇히면, 잘 빠져나오지 못한다. 한 번 삐지면 정말 오래간다.


이렇게 내 어두운 면들을 하나하나씩 적다 보니, 내 반자아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자기합리화, 현실도피, 집착, 분노 등 온갖 내가 싫어하는 면들이 가득한 반자아... 충동적인 모습으로 항상 중요한 일들을 망쳐 버렸던 반자아... 비교와 열등감으로 평생 나를 괴롭혔던 반자아...  이 반자아는 나에게 원수나 다름없었다.


내 반자아를 이미지화시켜 한참을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부정적 감정이 올라왔으나 점차 수그러들었다. 어느 순간부터 측은지심이 느껴졌다. 마치 사랑을 못 받고 자라서, 사랑이 필요하다는 도움의 요청을 화로 대신 표출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이러한 내 느낌을 반영하여, 반자아의 이름을 까망이라고 지어줬다. 내 반자아 까망이는 겉으로 봤을 때는 폭력적이고 공포의 대상이지만, 의식을 빛을 비추어 내면을 살펴보면, 알고 보면 귀여운 구석이 있는 사랑과 관심이 필요한 녀석이다. 

우리 반 아이들에게 소개한 내 반자아, 까망이



예전에는 화가 올라오면, 주로 주변의 가족들이나 친구들에게 표출했다. 심지어는 내가 왜 화를 내는지조차 모르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 화가 어디서 왔는지 명확하게 안다.


갑자기 부정적 감정이 내게 느껴질 때면, 나는 분노로 날뛰고 있는 까망이(반자아)를 불러온다. 그리고 아무런 판단 없이 까망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 이렇게 의식을 빛을 비추면, 어느 순간 까망이는 귀엽고 깜찍한 까망이로 다시 돌아온다.


내 얘기가 너무 터무니없이 들리는가? 이해한다. 나도 처음에 이것을 접했을 때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ㅎㅎ


밑져야 본전이니, 한 번 시도해보시라~^^

https://brunch.co.kr/@lk4471/288

https://brunch.co.kr/@lk4471/292


(다음 글에서는 최고의 자아와 반자아를 실제 학교 현장에서 어떻게 사용했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보여주고자 한다.)


#용서 #반자아 #원수



<참고문헌>

「베스트 셀프」- 마이크 베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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