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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남 Jun 19. 2020

저는 승진을 포기했습니다.

30살 초등교사의 고백

내 나이 30살. 군대도 다녀왔고, 안정된 직장에 다니고 있다. 직업은 초등교사다. 30대 전후의 내 나이 즈음의 교사는 선택의 기로에 직면한다.

승진준비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승진에 대한 얘기는 신규 때부터 지겹도록 들어왔다. 선배 교사들과의 술자리에서 항상 주된 화두는 '승진'이었다. 나는 선배들에게 솔직하게 말해서, 왜 사람들이 승진을 하고 싶어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아이들 가르치는 게 훨씬 재미있지 않냐고, 인사관리와 각종 공문처리를 하는 교감과 교장의 일은 별로 재미가 없어보인다고 말했다. 그러자 선배들이 하는 말,

네가 세상 물정을 잘 몰라서 그런다. 역시 미필자는 아직 생각이 어리네ㅋㅋ 군대 한 번 갔다 오면 생각이 달라질거다!


하지만 군대를 다녀와서도 내 생각엔 변함이 없었다. 오히려 군대 내에서 승진을 하려고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던 대대장님의 모습을 보면서, 승진에 대한 안좋은 감정만 쌓였다.


전역을 하고서도 승진에 대한 안좋은 얘기들을 많이 들었다. 어떤 학교에서는 소수만 받을 수 있는 학교폭력가산점 때문에, 서로 욕설이 오가기도 했다고 한다. 또 어떤 학교에서는 서로 승진에 필요한 주요 업무를 맡기 위해서 싸움까지 벌어졌다고 한다. 심지어 내 친구 같은 경우는 열심히 과학상자대회 학생지도를 해서 도대회에 진출했더니, 지도교사가 자신의 이름이 아닌, 승진을 원하는 부장교사의 이름으로 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내가 느낀 바로는 교직 안에서도 승진에 대한 인식이 그렇게 좋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진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았다. 나는 솔직히 그들의 마음이 잘 이해가 안되었다. 승진이 그들에게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승진을 준비하고 있는 혹은 승진을 이미 한 분들에게 왜 승진을 해야하는지 물어보았다. 크게 두 가지 종류의 대답이 나왔다.

만약에 나이가 들어서 나는 평교사인데, 내 동기나 후배가 교감이나 교장이라면 엄청 부끄러울 것 같아. 어떻게 학교를 다닐 수 있겠어?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않니?
요새 나이든 남자 선생님을 누가 좋아하겠어? 학부모들도 나이 든 선생님 진짜 싫어해.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늙어서 서러움 당할 바에는 차라리 교감이나 교장하는게 낫지...


솔직히 좀 충격적이었다. 나는 '학교 문화를 바꾸거나, 우리 교육계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꾸기 위해서 힘써보겠다.' 같은 그런 얘기가 나올 거라고 기대했는데, 그런 이유가 아니었다. 그렇게까지 승진을 열망하는 이유가 고작 남들보다 못나보일까봐 혹은 남들에게 무시당할까봐라니...(물론 모든 선생님이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저런 얘기들을 들으니, 교육자로서 자존심이 상했다. '고작 저런 이유로 승진을 해야한다면 차라리 나는 승진을 안하겠다!'라고 다짐을 했다.


그러던 어느날 다시 한 번 내 생각을 되돌아보게 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우연한 계기로, 초등학교 은사님과 만남을 가졌다. 선생님은 곧 있으면 교감이 된다고 하셨다. 솔직히 실망이었다. 이 선생님은 20년이 지난 아직도, 초등학생 때의 내 사진을 휴대폰 파일에 넣어다닐 정도로 아이들을 사랑하셨다. 그리고 청소년 과학대회 학생지도 부문에서 전국 2위를 할 정도로 능력도 있으신 분이었다. 내가 롤모델로 삼고 있는 분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지 않고 이제 관리자의 길로 가신다니, 너무 섭섭했다.


나: 선생님! 솔직히 실망했습니다. 선생님은 절대 안그러실 줄 알았는데, 퇴직할 때까지 평교사로 남아서 끝까지 아이들과 함께 할 줄 알았는데...
선생님: 나도 몇 년 전까지만 했어도 너와 같은 생각이었는데, 계속 남아 있기가 좀 그렇더라... 애들은 계속 선생님 늙었다고 하지... 내가 기타를 잘 치거나 노래를 좀 잘하면 애들이랑 소통도 하면서 즐길 수도 있을 거 같은데, 그런 재주는 없으니 힘들더라... 이렇게 시간이 지나니깐, 또 생각이 바뀌더라...
나: 선생님 그래도...


난 더이상 말을 이어 갈 수가 없었다. 선생님의 눈빛이 너무 슬퍼보였기 때문이다. 존경하는 은사님이 힘들어하시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아팠다. 마치 나의 미래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승진의 길을 포기하기로 했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관리자(교장, 교감)는 내 스타일에 맞지 않다. 일단 인사관리, 학교관리는 너무 재미가 없을 것 같다. 사실 가르치는 것만큼 재미있는 건 없는 거 같다. 둘째, 나의 귀중한 시간을 승진에 낭비하기가 싫다. 승진을 포기하면 그만큼 많은 시간이 생기고, 온전하게 나의 성장을 위한 시간으로 활용할 수가 있다. 셋째, 같은 교사들과 경쟁하기 싫다. 우리는 교육자다. 교사 각자의 경험과 특징이 다르고 재능 있는 분야들이 다른데, 몇몇 지표들만을 가지고 점수화를 하고 서열화를 시킨다는게 거부감이 든다.    

 

사실 '승진 문제'는 옳고 그름의 당위의 문제는 아닌거 같다. 단치 가치관의 차이이다. 어떤 사람의 가치관에서는 승진을 하는 것이 자신의 인생의 의미를 찾는 중요한 과정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 가치관을 기준으로 삼았을 때, '승진'은 나에게 크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그래서 나는 승진의 길을 포기하고, 나만의 길을 개척하기로 했다. 다른 동료교사들과 경쟁을 해서 승진 점수를 따려고 노력하는 시간에 나 스스로의 능력을 키우기로 했다.


사실 지금의 나는 그냥 '쩌리'이다. 연구대회 수상 기록도 없고, 학생지도 수상 실적도 미미하다. 학교 사람들에게는 나름 인정을 받고 있지만, 유튜브나 SNS에 올라오는 화려하고 멋진 교사들만큼은 아니다.


지금 내 실력이 그렇게 뛰어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기에, 당장 실적에 집착하기 보다는 실력을 키우는데에 집중하기로 했다. 나는 매일 양질의 독서를 한다. 직접 실천해보고 괜찮다 싶은 것들은 바로 학생들에게 적용 시킨다. 매일 글도 쓴다.(사실 글을 쓴지는 얼마되지 않았다. 매일 쓰려고 노력해보려고 한다.) 오랫 동안 내가 좋아하는 일을 지속하기 위해 건강(식단조절, 운동, 명상 등)에도 신경을 쓴다. 아이들의 정서에 맞는 노래를 만들기 위해 매일 발성, 노래연습과 작곡공부를 한다. 내가 혹여나 인생을 낭비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매일 데일리 리포트를 쓴다.(데일리 리포트는 쓴지 1년 반 정도 되었다.)


당장에는 어떤 성과가 나타나지는 않겠지만, 이러한 과정들이 쌓이고 쌓여서 언젠가는 큰 결실을 맺을 수 있을거라 믿는다.


나중에 세월이 지나서, 주변 선생님, 학부모, 학생의 눈치를 보는 나이든 남자교사 선생님이 아닌, 나이가 들었지만 아이들을 여전히 사랑하고 능력이 출중한 선생님이 되고 싶다. 평생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이렇게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고 싶다. 후배교사들에게 '승진 말고 이런 재미 있는 길도 있으니, 한 번 해봐!'하고 또 하나의 삶을 살아가는 예시를 보여주는, 영감을 주는 선배교사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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