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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남 Jul 09. 2020

그날 천국의 교실을 보았습니다.

와튼스쿨의 조직심리학 교수 애덤 그랜트는 그의 저서 '기브 앤 테이크'에서 사람은 '호혜 원칙'에 따라 테이커(taker), 기버(giver), 매처(matcher), 이렇게 세 종류의 사람으로 나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테이커는 자신이 준 것보다 더 많이 받기를 원한다. 세상을 '먼저 잡아먹지 않으면 잡아먹히는' 치열한 경쟁의 장으로 보고, 성공하려면 남들보다 뛰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타인이 꼭 필요한 것보다 자신의 이익을 우선한다.


반면 기버는 상대방에게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은 채 남을 돕는다. 이들은 자신이 들이는 노력이나 비용보다 타인의 이익이 더 클 때 남을 돕는다.


매처는 이 둘의 절충형이다. 매처는 공평함을 원칙으로 삼아, 주고받는 것의 균형을 추구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세 번째 행동유형을 선택한다.


이 세 가지 유형의 사람 중에 누가 성공할 확률이 가장 높을까? 애덤 그랜트는 '기버'가 성공 사다리의 꼭대기를 차지할 확률이 가장 높다고 주장한다.


나는 애덤 그랜트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아니, 그렇다고 믿고 싶다. 나는 이 세상에 기버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세상은 좀 더 인간다워지고 풍요로워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학창 시절의 나를 떠올려 보자. 학창 시절의 나는 기버보다는 매처나 테이커에 가까웠다. 나는 항상 내가 준 만큼 이상을 상대방에게 받아야 했다. 남에게 많이 베풀면 내가 손해를 본다고 생각했다. 학교 선생님들은 나의 이런 성향을 부추겼다. '옆에 있는 친구는 다 너의 경쟁상대이다.', '세상은 냉혹하다. 오로지 1등만 기억하는 세상이니, 끝까지 싸워 이겨야 살아남을 수 있다.', '남들 도와줄 시간에 너 자신이나 신경 써라.' 전부다 고등학교 때, 담임 선생님들에게 들은 얘기다. 교실에는 항상 긴장감이 돌았다. 우리는 항상 서로를 견제했다. 가장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가 나에게 일부러 엉뚱한 시험 범위를 가르쳐주었다.


어른이 되었다. 담임 선생님의 말대로 세상은 냉혹한 측면이 있었지만, 따뜻한 측면도 많았다. 세상은 1등만 기억한다고 했지만, 1등이 아니라도 세상은 살만했다. 나는 굳이 1등을 하지 않아도 나 스스로 만족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테이커도 만나 보았지만, 본인의 일이 아닌데도 마치 자신의 일처럼 타인을 도우는 기버도 많이 만났다. 이들은 타인에게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진심으로 상대방을 도와주었다.


나도 그들을 본받고 싶었다. 그들을 행동양식들을 따라 해 보았다. 그들처럼 정말 아무런 대가 없이 상대방을 도와주었다. 무언가 신비로운 감정들이 올라왔다. 따뜻함, 뿌듯함. 사랑, 기쁨 등 좋은 감정들이 계속 올라왔다. (사실, 아직도 나에게는 테이커나 매처의 성향이 남아 있다. '기버를 지향하는 매처'라고나 할까? ㅎㅎ)




작년 9월, 우리 반 아이들에게도 누군가에게 베푸는 기쁨을 맛보게 하고 싶었다. 마음이 따뜻해지고 사랑이 충만한 그런 감정들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실 내 환경설정이 필요했다. 책을 보다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호혜의 고리'라는 활동이었다. 방법은 간단했다. 학생 한 명이 한 가지 부탁을 하면 나머지 학생들이 자신의 지식과 자원, 인간관계 등을 동원해서 부탁을 들어주는 식이었다.


아이들에게 기버, 테이커, 매처의 개념과 '호혜의 고리' 활동을 시작하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했다.

얘들아! 선생님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마음속에 타인을 도우고자 하는 따뜻한 마음이 있다고 믿어. 우리 모두 기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 '호혜의 고리' 활동을 하면서 반 분위기를 서로 도우는 분위기로 만들어보자!


먼저 학생 한 명씩 필요한 점들을 발표하게 했다. 승현(가명)이가 먼저 손을 들었다.

음... 나는 전학 온 지 얼마 안돼서 친구가 별로 없어. 너희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어...


승현이의 얘기가 끝나자마자, 기민(가명)이가 말했다.

승현아! 점심시간에 같이 축구하러 가자! 나도 너랑 친해지고 싶었는데 잘됐다.


또 다른 학생이 손을 들었다.

음... 나는 피구를 할 때, 공을 잘 못 받겠어... 공을 잘 받는 방법을 누가 알려줬으면 좋겠어.


우리 반에서 제일 피구를 잘하는 경태(가명)가 말했다.

내가 도와줄 수 있을 거 같은데? 선생님 점심시간에 교실 피구공 가지고 운동장에 나가도 돼요?
선생님: 당연하지! 혹시 경태한테 피구 배울 사람?

10명이 넘는 아이들이 손을 들었다. 의외로 평소에 피구를 즐기지 않는 여학생들이 손을 많이 들었다.


영어를 못하는 친구들은 영어를 잘하는 희진(가명)이에게 점심시간에 영어를 배웠다. 그림을 좋아하는 친구들은 미술 선생님이 꿈인 윤서에게 그림 그리는 법을 배웠다. 축구가 잘하고 싶은 아이들은 얼마 전까지 선수 생활을 하다 전학 온 승현이에게 축구를 배웠다. 수학이 잘 안 되는 민아는 수학을 잘하는 기준이에게 수학을 배웠다.




'호혜의 고리' 활동을 시작한 지 3주 정도가 지났다. 점심시간에 반을 들어갔는데 깜짝 놀랐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광경이 내 눈 앞에 펼쳐져 있었다. 교실 앞쪽을 보니, 윤서의 지도하에 8명 정도의 학생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교실 뒤쪽에서는 영어를 잘하는 희진이가 영어가 힘든 친구 2명을 가르치고 있었다. 심지어 본인이 직접 문제까지 만들어 와서 친구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주었다.


운동장으로 나가보니, 아이들이 피구를 하고 있었다. 피구를 잘하는 친구들이 피구를 못하는 친구들도 공을 던질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었다. 휴식 시간에 따로 공던지기 연습을 시키는 모습도 보였다.


'와... '

그냥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마치 천국의 교실을 보는 것 같았다.


사실 이렇게까지 아이들이 '호혜의 고리' 활동에 열광할 줄은 몰랐다. 정말로 의외인 점은 도움을 받는 학생뿐만 아니라 도움을 주는 학생도 만족도가 매우 높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도움을 주는 학생이 친구에게 도움을 주면서 더 행복해했다.


'호혜의 고리' 활동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학기말까지 계속 지속이 되었다. '호혜의 고리' 활동은 작년 2학기 우리 반의 가장 핫한 활동이었다.

작년 우리 반 학생의 일기



작년 우리 반 아이들을 보면서 나는 원래 가지고 있던 내 믿음에 좀 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인간은 본디 선한 존재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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