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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남 Jul 17. 2020

4년 차 초등교사가 생각하는 좋은 선생님이란?

교육대학교에 다닐 적부터 교육경력 4년 차인 지금까지 항상 고민하고 있는 질문이 있다.

어떤 선생님이 좋은 선생님일까?




9년 전, 교대생 1학년인 나는 우리 학교 인기교수님이신 강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있었다. 잘생긴 얼굴, 호탕한 성격, 박학다식한 뇌섹남이셨던 강교수님을 난 존경했다. 그날 수업에서 교수님은 길이 단위인 cm에 대해 설명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 학교 현장에서 선생님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가 cm를 센치미터라고 읽는 거예요. cm는 센치미터가 아니라 센티미터라고 읽는 겁니다. 센치미터라고 말하는 선생님들은 기본이 안 돼있는 선생님들이야. 여러분들은 정확한 용어와 지식을 학생들에게 가르쳐 줄 의무가 있습니다."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존경하는 강교수님의 가르침을 있는 그대로 흡수했다. 이듬해 참관실습을 했고, 실습담당 선생님의 수학 대표수업을 참관했다. 공교롭게도 길이와 관련된 단원의 수업을 하셨다. 이 선생님은 cm를 '센치미터'라고 발음을 하셨다. 이 선생님이 '센치미터'라고 발음한 순간 나는 1학년 때의 교수님의 말씀을 상기하며, '아! 이 선생님은 강교수님이 말씀하신 기본이 안되어 있는 선생님이구나. 이 선생님은 좋은 선생님이 아니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렇다. 대학교 2학년 때까지 나는 좋은 선생님이란 교수님처럼 '전문 지식들을 정확하게 가르쳐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대학교 3학년이 되어 나의 생각은 또 바뀌었다.




2학년 참관 실습의 경우에는 내가 직접 수업을 한 적이 단 한 번 밖에 없었지만, 3학년 실습에서는 수업을 적어도 3번 이상 했다. 수업 첫날부터 멘붕이었다. 참관 실습 때 관찰자의 시점에서 바라본 수업은 쉬워 보였으나, 실제 수업을 해보니 정말 어렵다는 것을 느꼈다. 발문 하나하나, 학습 활동들, 예기치 못한 학생들의 질문들, 수업 모형, 학습과제 등 하나의 수업 안에서도 신경 써야 할 부분들이 많았다.

'어떻게 현직 교사분들은 이렇게 힘든 수업을 매일 하시는 거지?'


정제된 발문과 화려한 교구들, 생동감 넘치는 표정과 수업 흡수력, 수업을 정해진 40분에 초 단위까지 맞추어서 끝내는 센스까지! 수석교사님의 대표수업을 본 나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마치 선생님계의 아이돌을 보는 느낌이었다. 당시에 '수업 잘하는 교사'는 나의 우상이었다. 나도 저렇게 모든 이들의 감탄을 자아내게 만드는 그런 수업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임용에 합격하여 현장에 발령을 받고 나서 내 생각은 또 달라졌다.




임용에 합격하여 바로 현장에 투입이 되었다. 학교에서 배우는 이론과 현장의 실전은 너무나도 달랐다. 얼마 전 원유 레버리지 괴리율만큼이나 괴리가 컸다. 알고 보니, 수석교사님의 공개수업이나 실습 선생님의 공개수업은 충분한 수업 준비시간과 평소 수업태도가 좋은 학생들의 콜라보로 이루어진,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보여주기 식 수업에 가까웠다. 분명 실습 때 봤던 공개수업에서는 선생님이 무슨 말만 해도 아이들이 큰 목소리로 대답도 잘하고 활동도 열심히 했는데, 현장에서는 그냥 수업시간에 딴짓만 안 해도 고마울 지경이었다. 발문에 큰소리로 대답은커녕, 내가 질문을 하고 내가 답을 하는 원맨쇼 수업의 상황도 자주 펼쳐졌다.


수업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수업뿐만 아니라, 학급경영, 학부모상담, 관련 부서 업무 등의 다른 임무들을 수행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실습 때 봤던 그 화려한 교구들을 현장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당장 눈 앞에 있는 업무 그리고 학부모 상담도 하기 바쁜데, 노력 대비 산출이 떨어지는 그런 교구들을 만들 시간이 없었다.


할 일은 많은데, 시간은 한정되어 있었다. 하루 종일 수업 준비만 한다면 실습 때 봤던 그 수업 퀄리티를 보여줄 수도 있겠지만 현장에서는 거의 불가능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부터 '시간 측면에서 효율적이고, 교육적으로 효과적인 교육방법이 없을까?'라는 고민들을 시작했다.


'좀 더 좋은 교육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며 주변 선생님들을 관찰했다. 당시 내 동학년 선생님 중에는 아이들에게 아주 엄격하고 무서운 선생님이 한 분 계셨다. 그 선생님이 앞에 있으면 아이들은 찍소리도 내지 못했다. 그 선생님의 반은 항상 조용했다. 학교폭력이나 친구들 사이의 다툼 같은 문제도 일어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 반 학부모님들의 반응도 좋았다. 오히려 아이들을 통제하니 아이들이 선생님을 존경하는 모습들도 보였다. 당시 그 선생님반의 성적도 6개 반 중에서 제일 높았다.


당시 '친구 같은 선생님'을 추구하던 나에게 그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0선생님, 계속 그런 식으로 학급경영하면 분명 얼마 안 가서 지칠 건데... 한 번 애들 통제하는 방법도 익혀봐요."



자존심이 상했지만, 그 선생님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왕좌의 게임 '폭풍의 대너리스' 같은 카리스마로 아이들을 휘어잡는 그 선생님이 부러웠다. 그때 당시에 나에게 좋은 선생님이란 '아이들을 잘 통제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슬럼프를 겪고 나서 나의 생각은 또 달라졌다.




2018년은 교육에 대하여 정말 많은 고민을 한 해다. 앞으로 나는 어떤 인생을 살아가야 할지, 어떤 선생님이 되어야 할 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다시 학생의 입장으로 돌아가서 '학창시절의 나는 어떤 선생님을 좋아했을까?' 생각해 보았다.


박학다식한 선생님? 수업시간에 잘 가르쳐주는 선생님? 반 분위기를 통제해주는 선생님?

전부 다 아니었다. 특히 고2 때 담임 선생님은 우리 지역에서 수업 잘하기로 유명한 선생님이었지만 내 인생 최악의 선생님 중 한 명이다. 내가 좋아했던 선생님의 공통적인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학생 중심적 사고를 하셨다. 아이들을 통제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고, 항상 학생의 눈높이에서 학생과 소통하려고 하셨다.

 둘째, 학생들에게 하나의 롤모델이 되어주셨다. 내가 존경하는 중학교 때 음악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억지로 악기를 연습하도록 시키지 않고 본인이 직접 음악을 즐기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당시 그 모습에 반한 많은 우리 학교 학생들에 의해 우리 학교에는 '1인 1악기 연주' 열풍이 불었다.

 셋째, 가르치는 일을 사명으로 여기셨다. 중3 때 담임 선생님이셨던 체육 선생님은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단순히 돈을 벌 수 있게 하는 하나의 직업 그 이상으로 생각하셨다. 학생들이 힘들다고 상담을 요청하면 근무시간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상담을 해주셨다. 배드민턴이 배우고 싶다는 반 아이들의 말을 듣고, 나를 포함한 4명과 함께 매일 새벽 5시에 배드민턴을 가르쳐 주시기도 했다.


좋아! 결정했다!

2019년 나는 내가 학창 시절에 좋아했던 선생님들의 모습을 벤치마킹을 하기로 했다. 학생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학생들의 롤모델이 되어주는 '덕업일치'가 된 선생님. 2019부터 현재까지, 내가 생각하는 좋은 선생님의 모습이다.




2019년 나는 내 교육방식을 전면적으로 수정하기로 했다. 첫째, 아이들의 롤모델이 되기로 했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하는 대신 선생님이 직접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매주 1권의 책을 읽고 아이들에게 설명해 주거나 책의 내용을 아이들 수업에 적용시켰다. 독서를 통해 성장해가는 담임 선생님을 보고 아이들도 자발적으로 독서를 했다. 작년의 경우 '선생님 덕분에 책 읽는 즐거움을 알았어요.'라고 고마워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난 그저 독서를 했을 뿐인데 말이다.


내가 뮤지컬이나 작곡을 하는 모습을 보고 예술에 관심을 가지는 친구들도 있었다. 선생님처럼 되고 싶다고 부모님께 음악학원에 보내달라는 학생도 있었다. 그 학생의 부모님은 아이가 여태까지 뭔가를 하고 싶다는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는데, 음악학원에 보내달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며 감사하다고 전화를 주셨다.


현재는 아이들에게 글을 쓰라고 억지로 시키는 대신 선생님이 꾸준하게 글을 쓰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 반 아이들은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안다. 내 글이 다음 메인에도 여러 번 올라갔다는 것도 알고 있다. 글재주가 없던 선생님이 꾸준하게 글을 쓰면서 점점 성장하는 모습을 본 아이들의 글쓰기에 대한 태도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현재 우리 반 아이들의 90% 이상이 자발적으로 글을 써 온다. 그리고 2명의 학생은 브런치 작가가 되기 위해 매일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는 중이다.



어떻게 이런 현상이 생긴 걸까?


아이들은 생존 시스템 작용으로 인해 주변 어른들을 모방함으로써 생존에 필요한 것들을 배운다. 특히 부모님이나 선생님은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들이 많기에 더더욱 행동거지를 조심해야 한다. 아이들은 부모님과 선생님을 닮을 수밖에 없다. 부모님이 욕을 많이 쓰면 아이도 욕을 많이 쓸 수밖에 없다. 부모님이 집에서 TV 보는 걸 좋아하면 아이도 TV 보는 것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 담임 선생님이 책 읽거나 공부하는 것을 싫어하면 아이도 그것들을 싫어할 수밖에 없다.



둘째, 교육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리기로 했다. '평균의 종말'이라는 책을 보면, 애초에 학교가 세워진 목적은 공장에서 일을 할 수 있는 노동자를 양산하거나 선별하는 데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학교종, 교육과정, 지도안, 교과서, 관리자 모두 공장의 시스템을 교육에 적용시키면서 나온 개념들이다. 20~30년 전까지만 했어도 이런 시스템들은 교육현장에 꼭 필요한 시스템이었지만 지금은 흠... 글쎄?


교육의 변화는 코로나 시대를 거치면서 더 가속화될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가 대학교 때 죽어라 배웠던, 진리처럼 알고 있었던 것들 또한 누군가 만든 것이다.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없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다양한 것들을 시도해보고 있다. '학교종 없이 애들 컨디션 좋을 때 3시간 연달아 수업해 보기, 아이들과 함께 매일 데일리 리포트 작성하기, 교육과정에 없는 내용들 가르쳐보기, 과목의 개념 없이 수업해보기, 개별화 수업해보기' 등 이미 여러 가지를 시도해보았다. 아이들과 부모님의 반응은 생각보다 호의적이다.



셋째, 아이들과 함께 성장해 나가기로 했다. 내 글을 읽어 보면 아시겠지만, 난 아직 교육에 대해 쥐뿔도 모르는 풋내기다. 교사로서 부족한 점들이 아주 많다는 것을 인정한다. 아이들에게도 솔직하게 말해준다. '너희들이 보기에는 선생님이 완벽해 보여도 사실 선생님은 진짜 부족한 점이 많은 사람이야.'라고 항상 얘기한다. 대신에 나는 부족한 점들을 보완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선생님이다. 아이들에게는 '우리 부족한 점들을 채우기 위해 서로 도와가며 함께 성장하자!'라고 얘기한다. 우리는 서로 가르치고 배우기로 했다. 선생님인 나도 아이들에게 배울 점이 많다.

 

우리 반 학생의 데일리 리포트

위의 사진은 우리 반 학생의 데일리 리포트이다. 데일리 리포트 쓰는 방법을 가르쳐 준지 1달 반이 지났는데도 포기하지 않고 매일 꾸준하게 쓰고 있다. 이 친구는 선생님인 나의 데일리 리포트를 참고해서 매일 해야 되는 습관 리스트도 만들었다. 2주 전부터 브런치에 글도 매일 1편 이상 쓰고 있다. 항상 이 친구의 데일리 리포트를 보면 선생님으로서, 함께 성장하는 동료로서 자극을 받는다. 그리고 이 친구도 내 데일리 리포트를 통해 자극을 받는다. 그렇다. 우리는 같이 성장하는 동료다.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매일매일이 행복하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어떤 선생님이 좋은 선생님일까?


10년 뒤에 나의 생각은 또 어떻게 바뀔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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