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업 스트레스로 고통받는 학생, 부모님께 알려야 할까?
요즘, 코로나 사태 이후로 우울감을 느끼거나 고민이 많아진 학생들이 부쩍 늘었다. 고민상담이 필요하다는 우리 반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고민상담 우편함을 설치했다.
고민상담 우편함을 설치한 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쪽지 하나가 왔다. 우리 반 지운(가명)이가 보낸 쪽지였다.
지운이는 우리 반의 모범학생이었다. 수업시간에 발표도 곧잘 하고, 공부도 잘하고, 선생님이 시키는 것은 다 잘하는 그런 학생. 허나 수업시간에 항상 표정이 어두워서, 언제 한 번 상담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친구였다.
다음날, 쉬는 시간에 여전히 표정이 어두운 지운이에게 말했다.
"지운아, 학교 마치고 선생님이랑 얘기 좀 할까?"
"네..."
수업이 끝나고, 지운이가 쭈뼛쭈뼛 교실 앞으로 걸어 나왔다.
"음... 지운아. 어떻게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건지 선생님한테 알려줄 수 있어?"
많이 힘든지, 선생님의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친다. 지운이는 시선을 땅바닥을 향한 채로 입을 열었다.
"그냥 요즘에 많이 힘들어요. 세상 사는 게 재미가 없어요. 어제는 집에서 제가 그동안 좋아하던 걸 다 해봤는데, 이제는 하나도 재미가 없어요. 제가 왜 사는지도 모르겠고, 하루 종일 부정적인 생각만 들어요."
"흠... 왜 그런 생각이 들까?"
"엄마랑 많이 안 좋아요. 엄마는 항상 저보고 공부만 하라고 해요. 어제는 학원 5개 갔다 와서 학원 숙제한다고 12시까지 공부했어요... 엄마가 공부 못하면 좋은 대학 못 가고, 취직도 좋은 데 못한다고 무조건 공부는 잘해야 한데요. 근데 저도 나름대로 엄마의 기대에 부흥하려고 열심히 노력하는데, 엄마는 자꾸만 부족하다고만 해요. 엄마가 어릴 때는 저보다 훨씬 공부 많이 했다고 지금 제가 하는 공부는 공부도 아니라고 해요. 계속 주변에 공부 잘하는 애들이랑 비교하고... 어느 순간 저도 다른 애들이랑 비교하게 되면서 계속 스트레스받고... 그리고 시험을 잘 치면 저는 칭찬을 받고 싶은데, 엄마는 잘 친 것은 당연하게 여기고 못 친 것은 예를 들어 하나만 틀려도 왜 이렇게 쉬운 문제를 틀렸냐며 저한테 화를 내요. 저는 공부하는 기계가 아닌데... 엄마가 저를 사랑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엄마는 그냥 저를 엄마의 꿈을 이루는 도구로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아니야, 엄마는 지운이를 너무 사랑하셔서 그러시는 거야... (침묵) 또 다른 문제는 없니?"
지운이는 피상적인 친구관계, SNS 상에서 만난 지인과의 갈등, 외모 콤플렉스로 인한 자존감 하락 등의 여러 가지 문제들을 얘기했다. 지운이의 마지막 말이 충격적이었다.
"선생님, 계속 부정적인 생각이 떠올라서 너무 힘들어요. 요즘 저는 제가 '쓰레기'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대로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공부도 잘 못하고, 얼굴도 못 생기고, 친한 친구도 별로 없고, 엄마도 나를 안 사랑하시고... 저는 쓰레기예요. 가끔씩 제가 세상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지운아, 네가 무슨 쓰레기니... 그리고 세상에서 사라진다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 지운아 너는 지금 부정적 생각의 늪에 빠져있어. 부정적 생각을 계속하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쁜 생각들이 쏟아져 나와. 그 생각들은 네가 아니야. 생각은 생각일 뿐이지... 네가 쓰레기라고 말한 네 모습들 그것도 사실이 아니야. 선생님이 봐서는 넌 사진 편집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고, 반 애들과도 관계가 좋잖아. 엄마도 너를 사랑하셔. 분명 엄마와는 어떤 오해가 있는 거 같아. 생각의 노예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운아."
지운이는 엄마에게는 상담한 사실을 알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유는 엄마에게 말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을 거라는 것이었다. 오히려 혼날 거 같다고, 무섭다고 했다.
지운이의 의사를 존중해서, 지금 당장은 엄마에게 연락을 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지운이에게 숙제를 하나 내줬다.
"지운아, 일단 첫 번째 미션. 네 장점 10가지 이상 일기장에 구체적으로 써오기! 너는 장점이 아주 많은 아이야. 선생님은 네가 그걸 스스로 깨달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두 번째 미션. 매일 아침 거울 보고 '나는 예뻐' 10번 외치기!"
"쌤 그건 좀...ㅋㅋㅋ"
"ㅋㅋㅋ 그럼 '나는 예뻐' 대신 '나는 괜찮아!'는 어때? 괜찮지?"
"네! 그건 할 수 있어요."
이렇게 지운이와의 상담을 마쳤다.
내 생각에 현재 지운이에게 가장 큰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은 '엄마'였다. 지운이 어머니는 지운이가 앞으로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운이가 힘들어하지만 어쩔 수 없이 공부를 시키셨을 것이다. 하지만 주변 친구들과 비교를 하거나, 칭찬에 인색한 부분들은 지운이의 자존감을 갉아먹고 말았다. 그리고 지운이는 엄마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까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두 모녀의 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지운이 어머니에게 현재 상황을 있는 그대로 말씀드리고 선생님으로서 조언을 드리고 싶었다. 바로 전화를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동학년 선생님들에게 먼저 조언을 구해보기로 했다.
연구실에 가서 동학년 선생님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선생님들마다 약간씩 의견이 달랐다.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만약 선생님이 그 학생 엄마한테 얘기를 했는데, '당신이 왜 내 교육방식에 참견이냐?'라고 말할 수도 있어요. 그 학부모님도 본인 나름의 인생철학과 교육방식이 있는데 거기 괜히 뭐라고 하면 오히려 화를 내실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건 학부모님의 인생철학이고 아이의 입장에서는 또 다를 수 있지 않을까요?"
"선생님은 항상 애들 입장에서만 생각을 하더라. 학부모 입장에서는 선생님이 조언을 한다는 게 기분이 나쁠 수가 있어요. 그냥 애가 좀 힘들다 정도만 말씀드리고 그 이상은 신경 안 쓰는 게 좋을 거야. 만약에 상황이 진짜 잘 안 풀리는 경우에는 민원 들어올 수도 있어."
이번엔 다른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내가 봐서는 그냥 사춘기인 거 같은데? 원래 사춘기 때는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해요. 저도 어릴 때 부정적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좀 시간 지나면 괜찮아져요. 그냥 놔둬도 될 거 같아요."
선생님들은 섣불리 학부모님께 조언을 했다가 민원을 받을 수 있다고 조심하라고 나를 걱정해주셨다.
주말 내내 고민을 했다. 지운이 어머니에게 전화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그리고 전화를 한다면 어떻게 말씀을 드릴 건지.
그러다 나의 인생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보고 정신이 번뜩 들었다.
'그래... 민원 좀 받으면 어때. 아무리 부모님들마다 그들의 교육관이 있다지만, 지금 상태는 학생이 너무 힘들어하고 있는 상태잖아? 지운이 어머니도 이 사실을 아셔야 해. 다음 주에 말씀드리자.'
월요일이 되었다. 우리 반 아이들은 등교할 때마다 '데일리 리포트'(자신이 하루 동안 한 일을 기록한 노트)를 제출한다. 지운이의 데일리 리포트를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어떤 하나의 글귀 때문이었는데...
그 글귀는 바로...
두둥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학생상담 #공부스트레스 #사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