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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남 Jul 24. 2020

학생을 바꾼 부모님과 선생님의 진실한 대화

월요일 아침부터 지운이 어머니에게 지운(가명)이의 현재 상태를 말할 지, 말 지 고민했다.


우리 반 아이들은 등교하는 날 아침에  '데일리 리포트'(자신이 하루 동안 한 일을 기록한 노트)를 제출한다. 근데 지운이의 데일리 리포트를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지운이의 데일리 리포트


매일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던 지운이가 하루에 적어도 2~4시간 정도 유튜브와 실시간 라이브 방송을 하고 있었다! 나에게 밤 12시까지 학원 숙제를 해야 한다고 사는 게 너무 힘들다고 말했던 지운이었기에 이 결과는 더 충격이었다. 너무 힘들어 보여서, 그동안 '데일리 리포트'도 면제해준 건데...



쉬는 시간에 지운이를 불렀다. 약간 어이가 없다는 듯이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지운아, 이게 어떻게 된 일이니? 하루 종일 공부한다고 힘들다더니, 유튜브랑 라이브 방송 3시간은 좀 너무한데?"


지운이가 멋쩍은 듯 웃으며 대답했다.

"선생님, 죄송해요. 허허... 저도 데일리 리포트를 작성하면서 알았어요. 제가 이렇게 유튜브랑 라이브 방송에 시간을 많이 낭비하고 있는 줄은 몰랐어요."


뭔가 이상했다. 공부 때문에 그렇게 힘들다는 아이가 유튜브와 라이브 방송이라니... 그동안 지운이와 상담했던 내용 말고도 다른 부분들이 더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라이브 방송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얘기해볼래?"


1년 전부터 인터넷에서 만난 한 언니의 추천으로 라이브 방송을 시작했다고 한다. 지운이처럼 라이브 방송을 하는 아이들이 많다고 한다. 지운이는 거기서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고, 몇 달 전에는 거기서 얼굴도 본 적이 없는 남자 친구도 사귀었다고 한다.(지금은 헤어졌지만) 최근에는 같이 라이브 방송을 하는 언니와 사이가 많이 안 좋아져서 스트레스라고 했다.


"음... 선생님 생각에는 그 라이브 방송 그만두는 게 좋을 거 같은데..."


"(...) 저도 약간은 그렇게 생각은 하고 있었어요."


"지운아, 라이브 방송은 페이스북이나 인스타 같은 또 하나의 가상현실일 뿐이야. 너는 지금 거기서 지금의 너 말고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고 있는 거고... 선생님은 네가 좀 더 현실에 집중을 했으면 좋겠다. 아, 그리고 요즘에 엄마랑 관계는 어떠니?"


"엄마랑 거의 말을 잘 안 해요. 학원 갔다 오면, 그냥 제가 방에 바로 들어가 버려요. 이제는 엄마랑 말하는 게 너무 어색해요. 음... 생각해보니깐 제가 잘못한 것도 있는 거 같아요. 엄마가 무슨 말만 하면 짜증내고 화내고... 그러니깐 대화도 잘 안 하게 되고... 제가 진짜 사춘기인 거 같기도 해요..."


"음... 그럼 지금 네 말은 엄마랑 다시 예전 관계로 돌아가고 싶다는 거지?"


"네... 근데 하도 제가 엄마한테 화를 내는 게 익숙해져서 다시 살갑게 다가가기도 좀 그래요."


"아... 무슨 느낌인 지 알겠다. 흠... 뭔가 어색한 그 느낌... ㅋㅋ 그럼 선생님이 도와줄게. 선생님이 오늘 엄마한테 전화해서, 지금 네 생각을 엄마한테 말씀드려도 되겠니?"


"네. 괜찮아요."


 




지운 어머니께 바로 문자를 보냈다.

지운 어머니, 혹시 오늘 전화 통화 가능하실까요? 요즘 지운이 상태에 대해서 같이 의논하고자 합니다. 되시는 시간 말씀해주세요~ 저녁 시간도 괜찮습니다~^^
 네~ 오늘 1시 30분이나 7시쯤 가능합니다. 혹시 지운이가 학교 생활이 안 좋은지요?
아닙니다. 학교생활 괜찮습니다~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1시 반에 연락드릴게요^^


오후에 지운이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사실 오늘 아침까지만 했어도, 그동안 지운이가 묘사했던 자신의 엄마의 모습을 토대로 상상해 보았을 때 지운 어머니의 모습은 '극성 엄마'였다. 동학년 선생님들의 말처럼 '당신이 내 딸 교육에 무슨 상관이냐?'라고 할까 봐 두려웠다. 하지만 오늘 지운이와 상담을 하고 나니, 내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운이 어머니께서 전화를 받으셨다.

"네~ 선생님. 혹시 지운이한테 무슨 일 있나요?"


지운 어머니께 그동안 지운이가 과도한 공부량으로 인해서 스트레스받은 점들을 말씀드렸다. 그리고 저번에 보낸 쪽지의 내용들, 요즘에 하고 있는 부정적인 생각들('나는 엄마의 꿈을 이루기 위한 도구다. 나는 공부하는 기계다.'), 엄마에 대한 생각들에 대해서 가감 없이 말씀드렸다.


한동안 말이 없으셨다.

"(한숨) 하... 이 부분들은 제가 반성해야겠네요... 애가 제가 시키는 대로 너무 잘 따라 하니깐 저도 욕심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학원도 좀 더 보내고 공부도 더 시킨 건데... 이 정도로까지 스트레스를 받는 줄 몰랐네요. 갑자기 지운이한테 미안해지네요... 지금 다니고 있는 학원들 중에 몇 개를 끊어야겠네요..."


라이브 방송에 대해서도 말씀드렸다.

"혹시 어머니, 지운이가 라이브 방송하시는 거 알고 계셨나요?"


가끔씩 방송을 한다는 것은 알고 계셨지만, 이 정도로까지 심각하게 빠져있는 줄은 몰랐다고 하셨다.


"선생님, 우리 지운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래도 자기가 좋아하는 라이브 방송인데 못 하게 하면 또 난리를 칠 건데..."


"흠... 제 생각에는 아예 못 하게 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계속 거기 빠지면 현실에 그만큼 집중을 못하게 되고 든요... 처음엔 좀 힘들더라도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그게 훨씬 좋을 것 같아요. 일단은 지운이에게 유튜브나 라이브 방송을 보게 하는 신호들을 차단하는 게 우선입니다. 웬만하면 지운이 방에 전자기기들을 놓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특히 휴대폰과 컴퓨터! 일단 이 물건들이 지운이의 뇌 속에 '라이브 방송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는 각인이 되어 있으면, 무의식적으로 몸이 계속 반응을 하거든요."


"아... 네... 오늘 한 번 지운이랑 같이 의논해봐야겠네요. 제가 그동안 애한테 너무 소홀했던 거 같아요. 원래 1년 전까지만 했어도 지운이랑 저랑 매일 같이 잤거든요. 되게 어리광도 많고 저랑 대화도 많이 했었는데... 혼자 방을 쓰게 되면서 상황이 이렇게 까지 돼버린 것 같아요."

 

"제가 보니깐, 지운이는 되게 생각이 많은 스타일이더라고요. 보통 우리가 부정적인 생각에 한 번 빠지면,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쁜 생각들이 계속 몰려오는 경우가 많잖아요. 지운이가 혼자 방 안에 있으니깐, 안 좋은 생각들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방 안에만 있게 하지 말고, 가족들이랑 산책도 가고 같이 TV도 보는 등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늘리면 좋을 거 같아요."


"네, 선생님 말씀이 맞는 것 같아요. 가족들이랑 같이 있는 시간들을 많이 만들어봐야겠어요."


지운 어머니와의 상담을 원활하게 진행이 되었다. 상담을 하면서, '아... 이렇게 학부모님이랑 소통이 잘 되기만 해도 학교에 있는 많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침까지 내가 생각했던 지운 엄마의 이미지는 '극성 엄마'였다. 하지만 상담을 하는 지금은 '선생님에게 협조적이고 자식을 사랑하는 열린 마음의 엄마'였다. 지운이의 말만 듣고 멋대로 판단해버린 나 자신이 반성이 되었다.


"선생님, 지운이 상태를 솔직하게 말씀해주시고 여러 가지 조언도 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저희가 너무 폐를 끼치는 것 같네요... ㅠㅠ 오늘 한 번 지운이랑 잘 얘기해 보겠습니다. 다시 한번 더 감사합니다."






이틀이 지났다. 지운이가 학교에 나오는 날이었다.(우리 학교는 A, B조로 나눠서 월수, 목금에 등교를 한다.)


지운이의 표정은 한결 밝아 보였다.


"지운아, 엄마랑 대화 잘했어? 얼굴 좋아 보인다 ㅎㅎ"


"네. 대화 잘했어요. 제 일기장이랑 데일리 리포트 보시면 아실 거예요~"


지운이의 일기장과 데일리 리포트를 살펴보았다.


변화한 지운이의 일기와 데일리 리포트


인생이 재미없다고, 사는 게 힘들다고 했던 아이가 '기대가 되고 기분이 좋았다.'라는 표현을 썼다. 교실에서 수업할 때 항상 우울한 표정으로 멍 때리고 있던 친구가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새로운 다짐들을 했다. 정말 놀라운 결과였다.


쉬는 시간에 지운이를 따로 불렀다. 도대체 그날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렇게 달라졌냐고 물어보았다.


그날 저녁 엄마가 같이 대화를 하자고 하셨다고 한다. 지운이도 엄마와 얘기를 하고 싶었기에 대화에 순순히 응했고, 그동안 힘들었던 얘기들, 엄마에게 바라는 점들을 전부 얘기했다고 한다. 더 놀라운 점은 라이브 방송을 아예 끊기로 했다는 점이다. 라이브 방송을 끊기 위해, 방 안에 있는 전자기기(아이패드, 컴퓨터, 휴대폰)들을 전부 다 치워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새롭게 환경설정을 하고 싶어서 방 배치도 전부 바꾸었다고 한다. 침대는 '잠자는 곳', 책상은 '공부하는 곳' 이런 식으로 구역마다 역할도 하나씩 정했다고 한다.


"오... 그런 아이디어는 어디서 나온 거니? 엄마?"


"아니요. 제가 냈어요. 선생님이 얼마 전에 가르쳐주셨잖아요. 중독에서 빠져나오려면 무조건 신호를 차단해야 한다고... 그리고 우리의 뇌는 단순해서 한 사물에는 하나의 신호만 주게 하는 게 좋다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신호가 엉켜서 혼란스러워진다고 하셨잖아요. ㅎㅎ"


"헐~~~~ 그때 수업내용을 기억하고 적용까지 하다니.. 와~ 진짜 대단한데 지운이~ 쌤이 진짜 뿌듯하다!"


"쌤, 앞으로 저 진짜 열심히 살 거예요. 라이브 방송이나 유튜브 시청이 아닌 진짜 저를 위해서 시간을 쓰고 싶어요. 그리고 공부도 포기 안 할 거예요. 엄마랑 대화를 하고 나니, 공부가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선생님, 그동안 계속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놀랍다... 부모님과의 진심 어린 대화만으로도 이런 변화가 가능하다니...


이번 사건으로 인해서 많은 것들을 배웠다. 그중에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점은 '선생님과 부모님의 소통'이다. 부모님과의 소통이 중요한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의 파급력을 가지고 있는 줄은 몰랐다. 아이는 선생님에게도 영향을 많이 받지만, 부모에게 받는 영향력이 훨씬 크다. 예전에 본 교육학 책에서도 선생님이 아이에게 끼칠 수 있는 영향력은 10~15% 정도이지만, 부모님이 아이에게 끼칠 수 있는 영향력은 60~70%라고 한다. 따라서 교사인 내가 우리 반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기 위해서는 부모님과의 소통이 필수적이다. 부모님과의 지속적인 소통을 통해 '우리 아이들의 학교생활, 교우관계, 꿈, 수업태도' 등을 공유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해피엔딩으로 끝나서 다행이다. 휴... ㅎㅎ



#학생상담 #부모님상담 #선생님과학부모의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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