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실남 Aug 06. 2020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

4년 차 교사가 되면 바로 받아야 하는 연수가 있다. 바로 '1급 정교사 연수'(일명 1정 연수)이다. 이 연수를 받음으로써, 2급 정교사였던 선생님들은 1급 정교사라는 자격을 취득할 수 있다. 통상적으로 1급 정교사 자격을 취득한 선생님은 나름 '베테랑'으로 인정받아, 각 학교에서 중책을 맡게 된다. (물론 신규에 바로 부장을 다는 경우도 있지만...ㅎㅎ)


4년 차 교사인 나는 이번 주 월요일부터 1급 정교사 연수를 듣고 있는 중이다. 사실 별 기대는 하지 않았다. 몇몇 선배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선배들이 1정이 '노잼'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1정 정말 별 거 없고, 그냥 동기들 만나서 같이 노는 것에 의의를 두라고 했다. 더군다나 이번에는 1정 연수가 승진점수를 위해 줄을 세우는 상대평가가 아닌 Pass or Fail인 절대평가로 바뀌면서 시험 부담이 확 줄었기 때문에, 편하게 즐기다 오라고 했다.


엥? 선배들의 말과는 달리, 강사님의 수업이 재미있었다. 내가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교육적 자극들이 쏟아져 나오니 행복했다. 이번 연수를 통해, 내 수업능력을 업그레이드시키고 우리 반 아이들에게 새로운 수업방식들을 적용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설렜다. 2주라는 짧은 시간 동안 강사님들의 노하우를 최대한 빼먹기 위해,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로 했다.


대부분의 어른들이 강의 시간에 발표를 싫어하듯이, 선생님들도 발표하거나 질문하는 것을 꺼린다. 이유는 일반 사람들과 비슷하다. 첫째, 괜히 나섰다가 '나댄다는 이미지'를 얻을까 봐. 둘째, 혹시나 내가 틀릴까 봐 두려워서. 셋째,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도 선생님들에게 평가당하는 것이 두려워서.


나도 처음에는 나서기가 두려웠다. 근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인 내가 발표를 두려워하는데 그럼 우리 아이들은?'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발표하는 두려움의 벽을 깨라고 매일 같이 주문하는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부끄럽지 않은 선생님이 되기 위해, 난 이 세 가지 두려움의 벽을 전부 깨기로 했다. 아무도 하기 싫어하는 반장을 자발적으로 지원했고 강사님이 질문을 하면 적극적으로 대답했다. 수업 중간에 궁금한 점들이 생기면 바로 손을 들고 질문을 했다. 주변에서 '저 놈 뭐야?'라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한 3일째가 되니, 우리 반 선생님들도 이제 나를 어느 정도 적응(?)한 것 같다. ㅎㅎ




한 강사님이 나의 그런 모습을 보고 정말 신기하셨나 보다. 식사를 하면서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하셨다.

"반장 선생님! 선생님의 끝없이 샘솟는 교육에 대한 열정은 어디서 나오는 건가요? 궁금하네요."


난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바로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교육을 통해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때, '살아있음'을 느껴요. 특히 저희 반 아이들이 저로 인해, 좋은 방향으로 변했을 때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더라고요. 아이들만 생각하면 에너지가 저절로 생겨요. 너무 TMI였나요 ㅎㅎ"


나의 이 대답은 정말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이다.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때, 난 엄청난 무언가를 느낀다. 그 무언가는 딱 한 단어로 설명하기가 애매하다. 살아있음? 행복감? 하나로 연결됨? 교육을 하면서 타인에게 어떠한 영감을 주었을 때, 내 안에 어떤 부분이 내 앞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무언가와 공명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 느낌은 내가 남들보다 우월하다는 느낌,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았을 때의 느낌, 무언가를 성취했을 때의 느낌과는 차원이 다르다.


무언가 연결이 되어 있는 것 같은 이 느낌은 이런 상황에서 잘 발생(?)한다. 교사인 나와 아이가 수업 시간에 함께 성장하며 배워나갈 때, 고정형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던 아이가 어떤 일을 계기로 성장형 사고방식으로 전환하는 모습을 목격할 때, 아이와 교사가 수업에 너무나 집중한 나머지 종 치는 소리도 못 듣고 쉬는 시간 없이 2시간 동안 수업을 즐겼을 때 등등...


이 느낌을 가지고 있을 때, 나의 감각은 매우 예민해진다. 아이들의 눈빛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저절로 감이 온다. '아, 이 친구는 지금 발표를 할까 말까 고민을 하고 있구나! 아, 이 친구는 방금 내가 한 말에 의문을 품고 있구나! 이 친구는 요새 마음속에 걱정들이 많구나!'하고 말이다.


이 학생들에게 다가가서 '너 방금 이런 생각했지?'하고 말하면 아이들이 깜짝 놀라며 말하곤 한다.

"선생님, 어떻게 아셨어요? ㄷㄷ"




주변 친구들이나 선생님들에게 나의 '이 느낌'을 얘기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반응을 보인다.

'역시 너는 교사가 천직이다. 타고난 거 같다. 즐겁게 가르치는 것을 보면 부럽다.'


마치 자신들에게는 없는 것이 나에게는 있는 것처럼 얘기를 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이건 나만이 가진 나만의 느낌이 아니다. 이 느낌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다. 우리의 마음속 깊은 곳에 '누군가를 돕고자 하는, 누군가와 함께 배우고 성장하고 싶다는 열망'이 분명 있다.


다만 아직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이다. 대입 공부하랴, 취업하랴, 직장 생활하랴 하도 세상의 일에 치이다 보니, 우리 내면의 진정한 목소리를 아직 듣지 못했을 뿐이다.


꼭 교육이 아니더라도 괜찮다. 직장에서 적응에 힘들어하는 신규들을 도와준다던지, 나의 고객들에게 진심을 다해 친절하게 대한다던지, 우리 아이와 교감을 한다던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온 정신을 집중한다던지 등등. 우리는 어디서나 '살아있음, 연결되어 있음, 행복함' 같은 느낌들을 경험할 수 있다.


우리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자. 그리고 다음과 같은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보자.


나는 지금 이 순간 '살아있음'을 느끼고 있나?

 


#행복 #연결됨 #살아있음



P.S. 참고로 저는 무교입니다. ㅎㅎ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