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고 기다리던 추석연휴가 왔다. 코로나로 인해 가족, 친척 댁에 가는 일정도 거의 없었기에, 이번에는 꼭 자기계발을 하며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다짐했다.
'이번에는 독서도 하고, 서평도 쓰고, 운동도 좀 하고 알차게 보내야겠다! 특히 책은 최소 두 권 이상은 읽어야지!'
는 개뿔....
지난 30년 동안 추석이라는 기간 동안 행해왔던 습관이라는 관성을 못 깨고, 방탕한 시간을 보내고 말았다. 끝내 '추석에 무슨 자기계발이야. 추석에는 놀아야지!'라는 생각의 벽을 깨지 못했다. 그 덕분에 매일 아침에 쓰던 글도 늦잠 때문에 못 쓰고, 하루 종일 폰과 PC와 함께 침대에서 뒹굴뒹굴 시간을 허비하고 말았다.
저녁이 되자 깊은 후회가 몰려왔다.
'하... 내 소중한 시간들... 안 돼...'
갑자기 우리 반 아이들은 추석을 알차게 잘 보내고 있을지 궁금했다.
'어른인 내가 이렇게나 엉망인데, 애들은 더 심하겠지?'
허나 학급밴드에 들어가자마자 난 내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추석 연휴인데도 불구하고 27명 중 15명이나 되는 학생들이 자신이 작성한 데일리 리포트(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을 반성한 기록)를 밴드에 인증한 것이다. 따로 선생님이 숙제를 내 준 것도 아닌데 말이다. 선생인 나는 추석연휴 기간에 논다고 데일리 리포트 인증도 이틀이나 못했는데, 이 친구들은 자발적으로 추석연휴 동안에도 데일리 리포트 인증을 했다.
부끄러웠다. 정말 부끄러웠다.
그중에 몇몇 친구들의 데일리 리포트는 나에게 선생님으로서 느끼는 부끄러움을 줌과 동시에 같이 성장하는 동료로서 자극도 주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자기계발하는 지후(가명)
지후(가명)는 코로나로 인해 이번에는 할머니댁에 가지 않는다고 한다. 추석이고 학원도 안 가고 하니 쉴 법도 한데, 데일리 리포트를 보니 학교 다닐 때와 별 차이가 없다. 학원 숙제를 하는 시간이 독서시간으로 조금 바뀐 정도? 추석 당일에 3시간이나 독서라니! 놀랍다...!
놀라운 것은 지후의 학습능력과 실천력이다. 최근에 수업시간에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한 적이 있다. 그 날부터 지후의 데일리 리포트에는 하루에 독서하는 시간이 2시간 이상 할애되어 있었다. 좋아하는 분야만 읽지 말고, 네가 부족한 분야의 책도 골고루 그리고 빡세게 공부하듯이 읽으라고 했더니, 그것도 그대로 실천하고 있다. 심지어 감사일기, 체크리스트, 습관 리스트 등은 내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선생님(나)의 데일리 리포트를 참고해서 본인의 것에 적용시켰다. 엄청난 학습능력이다...
5개월 전에 전학 간 지현(가명)이의 데일리 리포트
다음은 지현(가명)이의 데일리 리포트이다. 비록 어제 추석 당일에는 놀았지만, 평소에는 정말 어마무시한(?) 친구다. 무엇보다 지현이는 5개월 전에 전학 간 친구다.(심지어는 학교에서 얼굴을 보지도 못 함...)
얼마 전에 학급밴드로 데일리 리포트 인증을 시작했는데, 갑자기 전학생인 지현이가 데일리 리포트를 올려서 깜짝 놀랐다. 3월에 라이브 방송으로 내 설명을 듣고 꼭 해봐야겠다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자신도 참여하고 싶다고 했다. 감사일기나 시간 나누는 방법이나 체크 리스트는 그때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친구들 것을 보고 익혔는지, 거의 완벽한 데일리 리포트를 인증했다.
전학을 갔음에도, 그리고 숙제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인증에 참여하는 지현이의 모습은 우리 반 아이들의 자기계발 의욕을 자극시켰고, 그 뒤로 참여율이 더 높아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젠 소설까지 쓰는 수한(가명)이
약 3개월 동안 브런치 작가에 도전하고 있는 수한(가명)이는 이번 추석연휴부터 그동안 본인이 써 온 판타지 소설을 학급밴드에 연재하고 있다. 불과 3개월 전만 했어도 맞춤법도 잘 모르는 이제 막 글을 쓰기 시작한 햇병아리였는데, 지금은 적어도 우리 반 안에서는 글을 잘 쓰는 친구로 통한다. 실제로 글 실력도 많이 늘었다.
얼마 전에 100쪽이 넘는 그동안 자신이 쓴 글들을 학교에 들고 왔었는데, 제법 느낌이 있었다. 꾸준함은 정말 위대한 것 같다. 수한이의 데일리 리포트를 보니, 어제도 브런치 글을 한 편 썼다. 정말 대단하다!
우리 반 친구들의 데일리 리포트를 보니 너무 뿌듯하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단순한 지식뿐만 아니라 영감, 습관들도 얻어가는 것 같아서 너무 기쁘다.
선생님으로서 느끼는 보람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같이 성장하는 동료로서 아이들에게 성장의 자극도 받는다.
'얘들아, 선생님이 내일은 부끄럽지 않은 모습 보여줄게. 항상 선생님 말 잘 따라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