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실남 Nov 25. 2020

한밤중 교감 선생님께 보낸 문자

4년 전, 이맘때 있었던 일이다. 당시 난 군 복무 중이었다. 간만에 휴가를 나와서, 친구들과 술을 진탕 마시고 집에 들어가는 길이었다. 아까 친구들이랑 신나게 논다고 오늘 취직한 절친 지환(가명)이와 제대로 통화를 못 한 것이 생각났다.


'음... 전화 통화를 하기에는 밤이 너무 늦었고, 일단 취직 축하 문자라도 보내 놓자."

당시 내가 보낸 문자 <재연>


친한 친구이니만큼 나의 애정을 듬뿍 담은(?) 날 것의 문자를 보냈다. 집에 도착한 뒤, 씻고 나와서 휴대폰을 보니, 아직 답장이 없었다.


'지환이 이놈은 벌써 자는가 보네. 아이고, 나도 피곤한데 일단 자자~'


다음날 이 문자가 끼칠 파장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채, 아주 평화롭게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아이고 머리야...'


전날 과음한 탓에 아픈 머리를 움켜쥐며 카톡을 확인했다. 엥? 어제 보낸 축하 문자에 답장이 안 왔다. 바뀐 거라곤 사라진 숫자 1뿐...


'뭐야, 혹시 나한테 섭섭한 거 있나? 뭐지?'


혹시나 싶어서 프사를 확인해보니, 아재스러운 느낌이 듬뿍 담긴 일몰 사진이다. 뭔가 이상했다. 카톡 친구 화면으로 가보니, 김지환이 두 명이다! 또 한 명의 김지환의 프사는 조던이 덩크 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었다. 


그 순간 갑자기 찾아온 싸한 느낌...


'아... 망했다...'


그렇다. 난 동명이인의 옆 학교 교감 선생님을 친구로 착각하고 문자를 보냈다. 평소 00 선생님이나 00 교감 선생님이 아닌, 이름으로만 저장해놓는 습관이 화근이었다. 당장 수습을 위해 죄송하다고 문자를 보냈다. 밤늦게 새파란 신규에게, 그것도 군대 간 신규에게 그런 문자를 받았으니 얼마나 놀라셨을까?


당시 내가 보낸 문자의 재연


바로 숫자 1이 사라지는 게 보였다. 하지만 1시간을 기다려도 2시간을 기다려도 교감 선생님의 답장은 오지 않았다. 전화를 드렸지만, 받지 않으셨다.


'음... 전화까지 안 받으실 분은 아닌데... 아... 전역하면 힘들겠다...'


난 마음이 찜찜한 채로, 군부대에 복귀했다.




그 뒤로 2년 반 정도가 지났다. 그 사이 난 군대를 제대했고, 학교에 다시 복귀했다.


워낙 오랜 시간이 지났기에, 그때 겪었던 일은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갑자기 옆반 동학년 선생님이 내게 물었다.


"선생님, 혹시 김지환이라고 아세요?"


"네?"


"김지환이요. 김지환."


"(엄청 반가워하며) 헐~~~~ 선생님. 혹시 지환이 아시는 거예요? 걔 제 재수 친구예요. 절친 ㅎㅎ. 근데 선생님은 지환이 어떻게 아세요?"


그러자 선생님이 깔깔 웃으시면서 말씀하셨다.


"제가 선생님 친구 지환이? 지환씨를 아는 게 아니라, 예전에 김지환 교감 선생님이 나중에 선생님 만나면 꼭 이렇게 물어보라고 하셔서... ㅋㅋㅋ 한밤중에 선생님이 교감 선생님께 '새끼야'라고 했다고 하더라고요. 엄청 당황하셨다고...ㅎㅎ 만약에 친구한테 문자 보낸 척하고 일부러 그런 거면 바로 학교 찾아오신다고 하셨어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며 또 한마디 하신다.


"지환이 진짜 친구인 거 맞죠?"


"ㅋㅋㅋㅋ 아, 진짜 친구 맞다니깐요! 저 진짜 결백해요!"


"아닌 거 같은데? ㅎㅎ"


"으아아아아앜. 진짜 결백하다니깐요 ㅎㅎ"


"알겠어요~~ ㅎㅎ 진짜 지환이라는 친구 있다고 나중에 김지환 교감 선생님 만나면 말씀드릴게요."




이렇게 나의 결백함은 증명이 되었다고 한다.


다음에 김지환 교감 선생님을 만나 뵙게 된다면, 그때는 정말 죄송했다고 다시 한번 사과드려야겠다. ㅎㅎ




#교감선생님 #학교생활 #축하문자




매거진의 이전글 졸업한 제자의 인터뷰 요청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