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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남 Nov 27. 2020

선생님에게 사랑받는 초간단 3가지 방법

어릴 적 우리 부모님은 나를 엄하게 키우셨다. 특히 예의와 태도에 대해서 많이 강조하셨다. 부모님 덕분에 나는 3가지의 좋은 습관들을 가질 수 있었다. 첫 번째, 인사. 나는 항상 어른들을 만나면 예의 바르게 90도로 허리 굽혀서 인사를 했다. 아파트 주민들, 관리인 아저씨, 학교 선생님 등 주변 모든 어른들은 나를 정말 예의 바르고 인사성 밝다고 입 모아 칭찬하곤 했다. 두 번째, 자세. 부모님은 나중에 허리가 휘지 않으려면 바른 자세로 허리를 곧게 펴서 앉아야 한다고 하셨다. 부모님의 말씀을 듣고, 난 항상 수업시간에 자세를 바르게 하려고 노력했고, 이상하게 선생님들은 그런 나를 보고 예의 바르다고 하셨다. 세 번째, 아이콘택트. 부모님은 사람들과 얘기를 하거나 수업을 들을 때, 상대방의 눈을 마주 바라보는 게 예의라고 하셨다. 아주 어릴 적 부모님의 가르침은 어느덧 습관이 되어, 학교 수업 시간에 친구들이 다른 곳에 시선이 팔려 있을 때, 내 시선은 항상 선생님의 눈에 가있었다. 이상하게도 선생님들은 항상 아이콘택트를 하는 나를 고마워하셨고, 나를 모범생이라고 부르셨다.


어릴 적 나는 사람들이 나에게 예의 바르다 혹은 착하다고 말하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냥 어릴 적 배운대로, 습관대로 했을 뿐인데 뭐가 착하다는 거지?'


난 딱히 내가 예의가 바르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고, 어른에 대한 공경심 또한 거의 없었다. 그냥 습관대로 행했을 뿐이었다. 근데 웃긴 사실은 이 조그마한 차이가 모범생과 모범생이 아닌 아이, 예의 바른 아이와 예의 바르지 않은 아이를 갈라놓았다. 어른들은 이름 붙이는 것을 좋아한다. 착한 아이, 나쁜 아이, 공부 잘하는 아이, 못 하는 아이, 모범생, 문제아. 운 좋게도, 난 부모님이 물려주신 습관 덕분에 예의 바른 아이, 모범생이라는 이름을 부여받았고, 그 혜택을 톡톡히 누릴 수 있었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딱히 어른에 대한 공경심이 없었는데도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가면서, 어른들의 나에 대한 관심과 기대(00이는 예의 바른 아이, 모범생일 거야!)는 나를 그 믿음대로 행동하게끔 했고, 계속 그렇게 행동하다 보니 어느새 내 정체성은 예의 바른 아이, 모범생이 되어 있었다. 좋은 습관과 그것으로 인한 주변 어른들의 기대 덕분에 내 정체성이 바뀌었다!


반면, 내 주변에는 사소한 습관 차이로 인해, 어른들, 특히 선생님들의 눈 밖에 난 친구들도 있었다. 인사를 제대로 안 했다는 이유로, 수업시간에 자세가 나쁘다는 이유로, 아이콘택트를 안 한다는 이유로 이 친구들에게는 예의 없는 아이, 수업 태도가 나쁜 아이라는 이름표가 붙여졌다. 정말 이 친구들은 예의가 없는 나쁜 아이였을까? 아니다. 선생님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몰랐을 뿐이다. 안타깝게도 한 번 이름표가 붙으면 쉽게 뗄 수 없다. 초1부터 초6까지, 중학생, 고등학생 때까지 그 꼬리표는 계속 따라다닐 확률이 높다. 그리고 낙인효과에 의해, 그 꼬리표는 어느 순간부터 그 아이의 정체성이 된다.



위 사례처럼 난 학창 시절을 보내면서, 낙인효과로 인해 망가지는 친구들을 많이 봐왔다.


하지만 그때의 선생님들을 탓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사람들은  '~는 ~다'라고 일차원적으로 단정 짓는 것을 좋아한다. 우리가 상대방의 마음속에 일일이 다 들어가서 어떤 마음인 지 확인할 수 없기에, 우리는 주로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을 내린다. 선생님의 경우에도 예외는 없다. 선생님도 사람이기 때문이다.(물론 저 위에 글의 사연에 나오는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선생님은 변호하고 싶은 마음이 1도 없다.)




이런 나의 경험들을 지금 나는 우리 반 아이들에게 얘기하고 있다.


잠깐 하던 말을 멈추고 앞에 있는 아이들을 흐뭇하게 바라본다. 외양, 성격, 환경, 성적 등 모든 것이 제각각 다르지만, 내 눈에는 전부 아직 잘 다듬지 않은 원석처럼 보인다. 아이들에게서 무한한 잠재력의 빛이 뿜어져 나온다. 내가 조금만 잘 다듬어준다면, 이 아이들은 언젠가 자신의 색깔을 담은 잠재력의 빛을 세상에 뿜어낼 것이다.


출처: <지상의 별처럼>, 내 최애 영화 중 하나


"그래서 지금 선생님이 너희들에게 가르쳐 줄 내용은 선생님에게 사랑받는 3가지 방법이야."


아이들의 호기심 어린 표정들이 보인다.


"이 방법들만 잘 실천하면, 선생님들이 너희들에게 좋은 인상을 가지게 될 거야. 아주 예의 바르고 모범적인 학생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지. 공부를 못 해도 괜찮아. 선생님들이 꼭 공부를 잘하는 학생만을 좋아하는 건 아니거든. 그리고 이 방법을 꾸준히 실천하면 공부 또한 잘해질 확률이 커."


계속 말을 이어간다.


"자, 그럼 지금부터 설명할게. 첫 번째 방법, 인사를 예의 바르게 한다. 선생님이 복도를 지나다녀보면 인사를 제대로 하는 학생이 정말 손에 꼽을 정도야. 특히 다른 학년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비율로 따지면 인사도 없이 그냥 쳐다보고 가는 학생 50%, 그냥 목만 살짝 까딱하고 가는 학생 40%, 그나마 인사를 어느 정도 예의 바르게 하는 학생은 10% 정도? 근데 진짜 공손하게 인사하는 학생은 한 번도 못 본거 같아."


"선생님, 저 평소에 인사 잘하잖아요? 저 인사왕인데."


정말 평소에 인사를 잘하는 성원(가명)이가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물론, 성원이 인사 잘하지. 근데 인사왕까지는 아닌 거 같아. 딱 차렷 자세에 90도로 공손하게 인사는 아니잖아."


"그렇긴 하죠. ㅎㅎ"


"딱 이렇게 각을 잡고 정중하게 학교 선생님들한테 인사하잖아? 그럼 학교 선생님들이 어떻게 생각하시겠어? '인사도 안 하고, 그냥 얼굴만 보고 지나치는 아이들이 절반 이상인데, 이렇게 예의가 바른 학생이 있다니!'라고 생각하지 않겠어? 그 순간 너희들은 전교에서 가장 인사를 잘하는 예의 바른 학생이 되는 거야."


"오... 좋은데요?"


"자, 이제 두 번째 방법, 수업시간에 자세를 바르게 한다."


책상에 기대어 있거나, 엉덩이를 쭉 빼고 있거나, 다리가 책상 바깥으로 삐져나와있던 자세가 불량했던 아이들이 갑자기 자세를 고쳐 잡는다. 허리와 어깨를 곧게 펴고, 엉덩이를 의자 끝까지 붙인다. 귀엽다. 우리 반 아이들은 나에게 사랑받고 싶은가 보다.


"너희들도 알다시피, 수업시간에 바르게 앉아 있는 사람은 정말 몇 안 돼. 다들 어딘가 몸이 비틀려있지. 다들 자세가 불량한데, 그 속에서 곧게 허리를 편 학생이 선생님의 눈에 보인다면 선생님은 그 학생을 어떻게 생각할까?"


"좋게 보겠죠?"


"당연하지. 일단 그런 학생은 눈에 띌 수밖에 없어. 그리고 이 두 번째 방법과 같이 실천하면 좋은 세 번째 방법, 선생님과 아이콘택트를 한다."


세 번째 방법을 알려주자마자 아이들의 모든 시선이 나에게 쏠린다. 장난꾸러기 재현(가명)이는 흰자위를 드러내면서 나를 째려본다.


"재현아, 그러다 너 무서워서 선생님들 도망가겠다. 째려보지 말고 자연스럽게 눈만 마주치세요."


26명이나 되는 학생들이 전부 내 눈을 바라보고 있으니 살짝 부담스럽다. 괜히 말했나... ㅎㅎ 계속 말을 이어 나간다.


"대부분 수업 시간에 선생님과 아이콘택트를 하는 학생은 드물지. 다들 교과서를 보거나, 앞 친구 뒤통수 보거나, 저 멀리 천장을 보거나, 바깥 풍경을 보거나 쨌든 선생님을 눈을 마주치는 학생은 매우 드물어. 근데 그 와중에 열심히 수업하는 선생님과 눈을 계속 마주친다? 그럼 게임오버. 선생님은 그 학생을 좋아할 수밖에 없어. 그 학생의 표정과 눈빛에 맞추어서 수업을 하는 경우도 많아. 또 한 가지 얻을 수 있는 보너스 효과. 상대방의 눈을 보고 말하면 좀 더 경청이 잘 돼. 즉, 수업 내용에 집중이 더 잘 된다는 뜻이지."


반의 모든 아이들이 눈을 반짝반짝 거리며 나와 아이콘택트를 한다. 이러니 내가 너희들을 안 좋아할 수가 있겠니? ㅎㅎ


"자, 쉽지? 한 2달 정도만 의식해서 행동을 고치면, 그 뒤부터는 습관이 되어서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행동이 나올 거야. 그럼 한 번 더 복습할게요. 선생님께 사랑받는 방법 첫 번째?"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한다."


"두 번째?"


"수업시간에 자세를 바르게 한다."


"세 번째?"


"아이콘택트를 한다."


"이 세 가지 방법만 제대로 습관으로 만들면, 평생 잘 써먹을 수 있어. 심지어 어른들의 세계에서도 통해. 얼마 전에 선생님이 1급 정교사 연수 가서도 써먹어봤는데 효과가 있더라고. ㅎㅎ 선생님은 너희들이 6학년 졸업하고 나서도 다들 선생님에게 사랑받는 학생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때 아이들에게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아이들이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도, 선생님뿐만 아니라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선생님에게사랑받는방법 #모범생 #예의바른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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