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실남 Dec 02. 2020

가라사대를 아십니까?

"선생님, 날씨도 꿀꿀한데 가라사대 한 판해요!"


"선생님, 제티고 사탕이고 다 필요 없고, 제발 가라사대 한 판만 해요!"


"가라사대만 하면 너무 웃겨서 배가 터질 거 같아요."


우리 반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가라사대 게임을 오늘 소개하고자 한다. 사실 이 게임은 워낙 고전 중의 고전, 유명한 게임이어서 대부분 알 것이다. 모르는 분들을 위해 간략하게 설명하겠다. 규칙은 아주 간단하다.


1. 사회자의 말 앞에 '가라사대'가 붙으면 무조건 그 말에 알맞은 행동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2. 말 앞에 '가라사대'가 붙지 않았는데, 해당 행동을 한다면 탈락이다.
3.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사람이 최종 승자가 된다.


이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자의 진행 능력이다. 최대한 빠르게, 박진감 넘치게 변칙적으로 게임을 운영하는 것이 생명이다. 몇 년 간 가라사대만 천 판 넘게 진행한 가라사대 장인으로서 몇 가지 진행 꿀팁들을 알려드리려고 한다. (선생님이 아니신 분들은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릴 겸, 아이들 마음도 이해할 겸, 한 번 읽어보는 걸 추천드립니다! ㅎㅎ)




1. 최대한 빠르게 진행해서 혼란스럽게 만들라.


"(마치 래퍼처럼) 가라사대 손머리, 가라사대 차렷, 가라사대 손머리, 가라사대 차렷, 가라사대 손머리, 가라사대 차렷, 가라사대 손머리, 가라사대 차렷, 손머리" (바삐 움직이는 아이들의 동작)


(이때 가라사대를 안 붙였기 때문에 손머리를 한 학생들은 전부 탈락)


탈락자를 만드는 핵심은 아이들의 머릿속에서 '가라사대'의 규칙이 떠오르지 않을 만큼 혼란을 주는 것이다. 웬만한 가라사대 숙련자들은 평범한 진행속도로는 탈락시키는 것이 힘들다. 최대한 빠르게 행동 문장을 내뱉어서 이들의 정신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것도 나름의 관전 포인트다.


2. 선생님도 같이 행동을 하면서 아이들을 속여라.


"가라사대 점프 한 번(선생님도 같이 점프)"


"가라사대 점프 두 번(선생님도 같이 점프)"


"가라사대 점프 세 번(선생님도 같이 점프)"


"점프 한 번!(선생님, 점프하면서 훼이크)"


이때 꽤 많은 수의 아이들이 선생님을 따라서 점프를 하게 될 것이다. 앞에 나와 같은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무의식적으로 따라 하고픈 심리가 생기기 때문이다. 1번의 빠른 진행 속도와 병행한다면 굉장한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다.


3. 선생님부터 망가져라.


"가라사대 지금부터 선생님을 따라 합니다."


"우우우우웅웅우ㅜ우!!!(괴성을 내면서 고릴라 흉내를 내는 선생님)"


"우우우우웅웅우우우!!!(따라 하는 아이들)"


일단 선생님이 망가지면, 교실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진다.  


'선생님도 저렇게 망가지는데, 나도 이 정도는 망가져도 되지 않을까?'


선생님의 행동이 평소에 조용한 아이들 행동의 마지노선이 되는 경우가 많다. 부끄럽고 민망해서 게임을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하던 아이들도 어느 순간부터는 부끄러움을 잊고 게임에 즐겁게 참여하게 된다. 평소에는 엄청 조용하던 아이들이 이 게임을 통해서, 새로운 면을 친구들에게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의 부끄러움이 어느 정도 사라지면, 이런 것도 가능하다.


(결승전의 모습)


"가라사대 눈을 감으세요. 가라사대 여러분들은 전생에 새였습니다. 지금부터 전생으로 돌아가 볼게요. 저 넓고 푸른 하늘을 열심히 날고 있네요. 여러분은 오늘 먹이도 수월하게 구했고, 날씨도 너무 좋아서 기분이 좋은 상태입니다. 그 기분 좋은 상태를 지금 동작과 소리로 표현해볼게요. 자, 그럼 재현(가명)이부터 하겠습니다. 가라사대 소리 발사!"


"(양팔을 파닥거리며) 끼룩끼룩! 끼룩끼룩!"


(아이들 폭소)


평소에 조용한 재현이가 끼룩끼룩 거리는 모습을 보고 교실 분위기는 한층 업된다.


"자, 이번엔 민경(가명)이 가라사대 소리 발사!"


"(재현이에게 질 수 없다는 듯이) 까악까악, 까악까악"


(또 한 번 폭소)


"자, 그럼 이번에는 하늘을 날다가 두 새가 만났습니다. 가라사대, 서로 대화를 나눠보세요."


"끼룩끼룩!"


"까악까악!"


(웃겨 죽는 아이들)


이미 선생님이 앞에서 여러 번 망가지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부끄러워하는 아이들은 단 한 명도 없다. 재미와 즐거움만 있을 뿐이다.


4. 다른 게임과의 연결


가라사대만큼 다른 게임과의 연결이 자연스러운 놀이도 없다. 이 경우는 생존한 학생이 얼마 없을 때, 그 학생들이 위의 방법을 써도 잘 속지 않을 때 사용한다. 바로 예시를 살펴보자.


"와... 너희들 왜 이렇게 잘하냐... 자, 어쩔 수 없이 승부를 가려야 하기 때문에 선생님이 특단의 조치를 취할게요. 이름하여, 자기 이름으로 삼행시 짓기. 재미없으면 탈락입니다. 재미는 반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판단해 줄 겁니다. 성원(가명)이부터 시작!"


"김"


"김성원은!"


"아... 탈락입니다."


???


"선생님이 아까 가라사대 안 붙였잖아~"


아쉬워하는 성원이...


삼행시 말고도, 서로 칭찬하기, 체력 버티기, 끝말잇기, 눈싸움 등 다양한 게임과 연결이 가능하다. 진행자 하기 나름이다.


5. 그 밖의 속임수


아이들이 게임에 숙련되면 탈락시키기가 정말 힘들다. 요즘에는 위의 4가지 방법을 전부다 동원을 해도 끝까지 살아남는 아이들이 꽤 된다. 게임이 길어지면 루즈해지기 때문에 탈락자들을 만들기 위해서, 나도 머리를 쓸 수밖에 없다.


(예시1)

"자, 지금부터 가라사대 시작하겠습니다."라고 말한 뒤, 10분 정도를 아까 배운 수업내용에 대해서 설명한다. 처음에 의아하던 아이들도 수업내용에 빠져서 가라사대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깜빡 잊는다.


"자, 전부 손머리"


대부분의 아이들이 손머리를 한다.(탈락~) 그러나 그 와중에도 '가라사대'를 붙이지 않았다며, 나의 꼼수에 속지 않는 아이들... ㅎㅎ  


(예시2)

"(가라사대 도중에) 얘들아, 우리 벌써 밥 먹어야 될 시간이 5분밖에 안 남았어. 일단 손부터 씻고 나서 가라사대 승자 결판내자. 손부터 먼저 씻고 오세요."


손 씻으러 가는 아이들(전부 탈락 ㅋㅋㅋ)


근데 그 와중에도 '가라사대'를 붙이지 않았다며, 자리 앉아있는 가라사대 고수들... ㅎㅎ


6. 부작용  


가라사대 게임을 하면 심각한 부작용이 있다.


"자, 얘들아 교과서 펴자."


교과서를 펴지 않는 아이들


"아니, 아까 가라사대 끝났잖아. 얼른 교과서 펴!"


"선생님이 가라사대 안 붙이셨잖아요."


"아니, 아까 가라사대 끝났다고 했잖아. ㅋㅋ (체념한 듯) 가라사대 교과서 펴세요."


그제야 교과서를 펴는 아이들... ㅎㅎ 가라사대가 아니면 움직이지 않는 폐해가... ㅋㅋㅋ




최근 코로나 전파가 심해지는 바람에 이제 아이들이 등교하는 날이 일주일에 1번으로 줄었다. 나머지 4번의 수업은 쌍방향수업과 콘텐츠 중심 수업을 병행하고 있다.


(어제 아침 쌍방향 수업 중)

"아... 가라사대 한 판하고 싶다... 아... 학교 가고 싶다... 아...."


시도 때도 없이 가라사대를 그리워하는 아이들... 코로나가 없었다면 원래는 한창 운동장에서 뛰어놀고, 교실에서 장난치고, 웃고 떠들고 놀 시기인데, 하루 종일 마스크와 줌 속에 갇혀 있는 아이들이 너무 불쌍하다. 심지어 코로나 때문에 졸업여행도 못 가고 학창시절 제일 즐겁다는 6학년을 통째로 날려버린 아이들...


그래, 금요일에 학교 오면 실컷 가라사대 하게 해 줄게, 얘들아. 선생님이 지금 너희들을 즐겁게 해 줄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어서 미안하다. 우리 조금만 더 힘내자!



#가라사대 #교실놀이 #초딩최애놀이

매거진의 이전글 선생님에게 사랑받는 초간단 3가지 방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