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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남 Dec 07. 2020

원래 그런 아이는 없다.

3주 전에 있었던 일이다.


"얘들아, 2학기 학교 신문에 우리 반은 시화로 작품 하나 올리기로 했는데 혹시 참여하고 싶은 사람 있니?"


평소에 그림은 잘 못 그리나 글짓기에는 자신이 있는 진원(가명)이가 질문을 했다.


"선생님, 시화면 그림을 잘 그려야 하는 거 아닌가요? 글만 따로 쓸 수 없을까요? 제가 그림을 잘 못 그려서..."


"흠... 그럼 글짓기 한 명, 그림 한 명 따로 뽑는 건 어때? 한 명만 신문에 올라가는 것보다는 두 명이 올라가는 게 더 나을 것 같네."

"좋아요!"

"글짓기하고 싶은 사람 손!"


글짓기는 아까 질문을 한 진원이가 하기로 했다.


"시화 그리고 싶은 사람 손!"

그때 손을 든 한 명의 학생을 보고 깜짝 놀랐다. 평소에 남들 앞에 잘 나서지 않는 아진(가명)이가 손을 들었기 때문이다.


내 머릿속의 아진이에 대한 이미지는 '조용한 아이, 나서기 싫어하는 아이, 항상 소극적인 아이'였다. 수업 시간에(특히 수학 수업시간에) 멍을 때리는 경우가 많았고, 발표를 시켜도 하지 않으려 했다. 2달 전부터 운영하고 있는 저녁 자습 스터디인 줌터디에도 잘 들어오지 않았다. 2학기 초, 학업성적과 공부습관, 태도 문제 때문에 여러 번 아진이와 상담을 했는데도, 다른 아이들처럼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었다.


워낙 신경 써야 할 다른 아이들도 많았기에 '아... 아진이는 아직 준비가 안 됐구나... 원래 좀 소극적인 아이구나...'하고 넘어갔다.  


그랬던 아진이가 오늘 손을 들었다. 기억으로는 아진이가 올해 무언가를 하겠다고 손을 든 적은 올해 들어 2번째였다. 오늘 손을 든 것은 아진이 나름대로 용기를 내어서 손을 들었음이 분명했다. 이번에는 아진이에게 한 번 기회를 주고 싶었다.


"음... 선생님 생각에는 이번에는 여태까지 한 번도 신문에 작품을 올리지 못했거나, 미술상을 타지 못한 친구가 하는 게 맞는 거 같은데? 어때?"


다행히 아이들이 나의 의견에 동의를 해주었다.


"그럼 이번에는 아진이가 시화를 그리는 걸로 하자! 진원이가 글을 써오면, 아진이 네가 그 시의 분위기에 맞춰서 그림을 그려오면 돼! 물론 안에 들어가는 글도 네가 적어야 해!"


"네..."


솔직히 걱정이 되었다. 혹여나 도중에 못 하겠다고 포기하지는 않을지, 그래도 학급 대표로 나갈 작품인데 대충 해오지는 않을지... 평소 내가 생각하던 아진이의 이미지로는 그럴 가능성이 다분했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곧 기우임이 밝혀졌다.



(주말)


"카톡, 카톡"


(카톡 문자를 확인하는 나)


선생님 완성했어요! 한 번 봐주세요.


헐~~~ 너무 예쁜데? 와...


선생님, 근데 제 마음에 좀 안 드는 게 있어서 조금만 더 수정해서 다시 보여드릴게요!


그 이후로 몇 번을 수정하고 또 수정해서 만든 아진이의 최종 작품!


진원(글)이와 아진(그림)이의 작품


그림뿐만 아니라 글씨도 예쁘다!


이렇게 적극적인 친구가 왜 그동안은 소극적으로 행동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 잘못이 컸다. 그동안 나는 아진이의 장점을 살리기보다는 부족한 점을 채우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아진아, 수학 성적이 왜 이러니? 지금 수학 안 잡으면, 나중에 중학교 가서 진짜 힘들어져...'


'아진아, 사회 시간에 좀 적극적으로 발표해보자!'


'아진아, 줌터디 시간에는 그림 그리지 말고, 네가 부족한 수학 공부하자!'


잘하는 부분에 대한 칭찬 없이, 매일 부족한 점들만 지적을 하니, 아진이의 자존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자존감의 하락은 소극적인 행동으로 이어지고, 소극적인 행동은 선생님의 지적으로, 선생님의 지적은 다시 자존감의 하락으로, 악순환의 반복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진이의 자존감을 무너뜨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깊이 반성을 하고, 이번에는 방법을 바꿔보기로 했다.


부족한 점에만 집중하는 대신, 잘하는 부분에 대해서 칭찬을 먼저 하고 부족한 부분을 언급하는 식으로 방법을 바꿔 보았다.


"와... 아진아. 선생님 이번에 네 그림 보고 깜짝 놀랐잖아! 선생님이 네 그림 좀 있다가 우리 반 애들한테 소개해도 되지?"


"(부끄러워하면서) 네...ㅎㅎ"


"얘들아, 진원이랑 아진이가 만든 시화 봐봐~ 여기 아진이 그림 그린 거랑 글 쓴 거 봐봐!"


"(감탄) 우와.... 그림 진짜 멋지네요. 글씨도 대박! 우리 반 애들 중에서 글씨 제일 잘 쓰는 거 같아요.(사실 지난번 우리 반 글씨 쓰기 대회 1등 함)"


(학교 마치고 아진이를 따로 불러서)


"아진아, 이번에 정말 고생했어! 아진이 너는 그림도 잘 그리고, 글씨도 잘 쓰고~ 선생님은 이번에 네가 이렇게 열심히 작품을 만들어 올 줄은 몰랐어."


(부끄러워하는 아진이)


"근데 선생님 생각에는 그림에서 뿐만 아니라, 수학이나 사회 같은 공부에서도 충분히 네가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 단지 네가 그림에 투자하는 시간만큼 공부에 투자를 하지 않아서라고 생각해. 공부에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지고 선생님이랑 같이 부족한 부분을 채워보자. 앞으로 저녁 줌터디에는 무조건 수학 공부를 하는 건 어때?"


"음... 네! 그렇게 해볼게요."




그 이후로 아진이는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줌터디에 참여했다. 물론 그 시간엔 수학 공부를 했다. 학교를 마치고 교실에 남아서 부족한 공부를 하고 가는 적극성도 보였다. 아직 많이 부족하긴 하지만, 발표도 시키면 이제 전처럼 빼지 않고 곧잘 한다.


이번 아진이의 사례를 겪으면서, 아이들을 상황의 일부분만 보고 단정 짓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진이는 본인이 자신이 없는 공부에서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으나, 본인이 자신이 있는 미술에서는 아주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나는 아진이의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원래 그런 아이라고 단정 지었고, 선생님의 시선에 의해 아진이는 정말로 그런 아이가 될 뻔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매일 성장형 사고방식을 외치면서, 정작 나는 아이들을 고정형 사고방식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은 가변적이다. 다들 아니라고 하겠지만, 어제와 우리와 오늘의 우리는 엄연히 다르다.(심지어 나는 매번 MBTI 검사를 할 때마다 성격 유형이 다르게 나온다.) 어른인 나도 그런데 아이들은 오죽하겠는가? 아이들 같은 경우에는 며칠 간격으로 성격이 확 바뀌는 경우도 있다. 또 아진이와 같이 상황과 맥락에 따라서 태도나 성격이 바뀌는 경우도 있다.


'원래 그런 아이는 없다.'는 것을 명심하면서, 앞으로는 이런 실수를 하지 않도록 다짐해 본다.



#학생 #자존감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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